미션90. 연구 환경을 개선하라
공익허브는 매주 월요일 ‘미션 100’을 연재합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제도적 변화 10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지난 15일, 삼성전자가 향후 1년간 10조 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건 2017년 이후 7년 만인데요. 그만큼 주가가 많이 하락했고, 급한 상황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 관련주들이 줄줄이 하락하면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위기론까지 거론되고 있는데요. 반도체 위기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치권은 특별법까지 발의했습니다. 그런데 정치권이 발의한 반도체특별법, 조항 하나로 인해 직장인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처한 위기의 원인을 각자 다르게 진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생각하는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미션100과 함께 보시죠.
지난 11일, 여당은 반도체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은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 등 재정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과 주 52시간 근무 제외 조항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반도체 분야 연구 개발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예외로 적용되어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연구진들이 더 많은 시간을 연구에 쏟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주요 경제지 역시 반도체특별법 통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들은 반도체특별법의 근거로 대만의 라이벌 업체인 TSMC와 미국의 IT 기업인 엔비디아를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두 회사가 잘 나가는 이유는 연구자들의 노동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TSMC는 노사 합의 하에 하루 근무를 8~12시간으로 늘릴 수가 있고, 엔비디아는 연구 성과를 뽑아내기 위해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것이 일상이라는 겁니다. 만약 우리나라만 주 52시간 제도에 머물러 있는다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성장 기회 역시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TSMC와 엔비디아를 예시로 들며 ‘주 52시간 제도가 문제다’라고 주장하는 여권과 언론에 대해 많은 직장인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국내 기업은 직원을 부품으로 취급할 뿐, TSMC와 엔비디아만큼 처우를 개선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며, “TSMC와 엔비디아만큼의 대우를 해줬다면 국내 기업 역시 그만큼의 성과를 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직원 평균 연봉이 거의 제자리에 머물렀던 동안(2019년: 1억 1,900만원 → 2023년: 1억 2,000만원), 라이벌 업체인 TSMC는 임직원의 연봉을 대폭 인상(2020년: 7,600만원 → 2022년: 1억 3,100만원)했습니다. TSMC의 급여는 대만의 의사 급여보다 약 4,000만원, 근로자 평균 임금보다 약 4~5배 높은 수준입니다. 엔비디아 역시 ‘스톡 그랜트(회사의 주식을 무상으로 주는 제도. 받은 주식을 바로 현금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의 존재로 매우 낮은 수준의 이직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TSMC와 엔비디아는 파격적인 처우 개선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고,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당연히 좋은 성과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해 주 52시간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포석이 아니냐”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산업 연구개발직은 기존의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하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게 가능한데, 굳이 특별법까지 만들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지금도 특별연장근로 싸인 받고 주 64시간까지 늘린 팀들 있다,” “보상구조는 절대 못 따라가면서 저렴하게 노예는 굴리고 싶고,” “영어 좀 하면 미국 가서 석박사 따고 취업하는 게 백배 낫다”와 같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 위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연구원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못하면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연구원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좋은 연구 성과 역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계에서 경고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연구의 근간인 R&D 예산을 삭감하고, 연구원의 근로 환경을 개악하는 등 조언과 반대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연구원들이 국내에서 연구 활동을 지속하기 더욱 힘든 나라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대로라면 “이공계 기피, 의대선호” 현상은 막을 수 없고, 다른 나라로의 인재 유출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지금이라도 연구자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R&D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연구자들이 연구하기 좋은 나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연구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 연구 최강국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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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경향신문. 24-11-11. [“여 ‘반도체특별법’ 당론 발의… 주 52시간 예외 등 담겨”].
서울신문. 24-08-27. [“주 7일 근무에도 “퇴사 안해”… 회사 ‘황금수갑’에 버티는 직원들”].
매일노동뉴스. 24-11-18. [“일문일답으로 보는 반도체특별법 논란”].
중앙일보. 24-03-22. [“미·일, K반도체 두뇌 쏙 빼간다… 삼성전자 이직률, TSMC 2배 [반도체 인재 쟁탈전]”].
파이낸셜뉴스. 23-04-17. [“TSMC 임금 5% 올렸다… 최악 실적 K반도체도 임플레 위기”].
한경비즈니스. 24-04-01. [“엔비디아·유튜브·야후 창업자가 모두 대만계인 이유[대만의 힘①]”].
헤럴드경제. 24-11-06. [“TSMC·엔비디아 밤샘 연구... K-반도체 ‘52시간’에 발목 [급물살 타는 반도체특별법]”].
※이번주 미션100 레터 업로드가 늦어져 죄송합니다. 독자분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리며, 정상적인 일정으로 발행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