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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익허브 Jun 28. 2022

헌 옷 수거함의 95%는 재활용되지 않는다

성질급한 여름이 눈치를 보며 슬쩍 나왔다가 사라진 어느 봄 날이었다.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충격적인 전화가 걸려왔다. 


“딸, 내가 SNS에 올린 사진을 봤는데 말이야.. 너가 아들도 아니고 딸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좀.. 옷 좀 사 입어라. 넌 내가 봐도.. 좀 그래.”

'..세상에 아부지에게 패션을 지적받다니...'


아버지는 흰색 스포츠 양말에 산악용 샌들을 신는 패션 센스를 가진 사람이었다. 게다가 인내심도 꽤 깊은 편이었다. 이런 아버지가 참다 참다 결국 한 마디 했다는 건 사태가 꽤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그날 곧바로 강남으로 넘어가 쇼핑을 했다. 4년 만의 계절 옷 쇼핑이었다. 그동안은 30년 전에 부모님이 입으셨던 옷들을 물려 입고 있었다. 


그 쇼핑을 한 게 벌써 5월이다. 하지만 7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때 산 옷들 중 일부는 여전히 비닐에서 뜯었을 때 상태 그대로 놓여 있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2달 동안 내가 몇 번 외출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됐다.


옷을 잘 안 사고 오래 입는다고 해서 한 번도 옷을 버려본 적 없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성인이 된 직후에는 나도 옷을 미친 듯이 샀던 거 같다. 좋게 말하면 내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낭비벽이 심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샀던 옷들은 작년 말, 이사를 하며 대부분 버렸던 것 같다. 아니, 나는 ‘재활용’했다고 믿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얼마 전 KBS 환경스페셜,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가 2022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재활용 의류함에 넣은 옷들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으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 한 옷들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다큐멘터리였다.


막연히 “어딘가로 수출되어 판매되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던 내게 이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 주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5번째로 중고 의류를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옷을 많이 버린다는 뜻이다.


재활용 의류함에 들어간 옷은 1차로 헌 옷 수거함 관리 업체나 개인이 수거해간다. 평소에는 6일에 한 번, 이사철에는 3일에 한 번씩 옷을 수거해간다. 수거 기간이 일주일이 넘어가게 되면 의류함 주변이 난리가 날 정도로 매주 많은 옷들이 버려진다고 한다.

‘헌 옷 수거함’이지만 아예 봉지도 안 뜯은 의류들이 들어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도 가끔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옷들이 가격표가 붙어있는 상태 그대로 가지런히 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을 말이다. 아마 그런 옷들이 결국 헌 옷 수거함으로 버려지는 거겠지.


이런 헌 옷들이 하루에 40t씩 들어온다. 그것도 한 업체에만! 이런 업체만 해도 국내에 100개 가까이 존재한다. 이 좁은 대한민국 땅에서 하루에만 4000t 이상의 옷이 버려지고 있다. 


그렇게 수거된 옷들 중 여전히 상품성이 있는 옷인 5%만이 국내에 ‘빈티지샵’, ‘구제 샵’에 유통되어 다시 판매된다. 나머지 95%는 전부 해외로 수출된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에서 이 옷들을 수입해간다.

상품성이 없는 옷들은 어떡하냐고? 간단하다. 전부 소각시켜 버린다. 옷을 만들고 남은 천조각이나 의류 브랜드의 재고상품들은 이렇게 재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진다.


수출된 헌 옷들은 개발도상국에서 다시 상품성을 얻고 판매된다. 주요 수입국 중 하나인 가나는 매주 수입되는 헌 옷의 양이 약 1,500만 개나 된다. 가나의 인구는 약 3,000만 명. 전 국민이 입고도 남을 만큼의 헌 옷이 이 나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남은 헌 옷을 어떻게 처리할까? 이미 가나가 전 세계 헌 옷들의 마지막 종착지인데.


남은 옷들은 전부 강에 버려진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가나의 오다우강은 물이 아니라 옷이 흐르는 중이다. 그것도 시멘트처럼 강 전역을 꽉꽉 채운 채로.

이 강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 한가운데에서 흐르고 있다. 아이들은 썩어 가는 물과 옷들 사이를 거닐며 논다. 먹을 게 부족한 환경이 되자, 짐승들은 바닥에 널려 있는 섬유를 뜯어먹고 산다. 소들은 청바지도 먹고, 면티도 먹고, 니트도 먹는다. 


이런 흐름은 익숙하다. 선진국들이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만들어낸 환경피해를 개발도상국들이 겪는 상황. 기후도 그러했고, 식량도 그러했다. 

‘인건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선진국에서 비싼 값에 판매되는 의류들은 개발도상국에서 만들어진다. 자신이 만드는 옷 한 벌 값도 안 되는 금액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환경오염과 건강악화뿐이다. 

방글라데시는 중국 다음으로 의류를 많이 생산해내는 국가다. 이곳 또한 생산 과정에서 생긴 의류 폐기물로 도시와 자연이 엉망이 된 지 오래다. 강은 오염되어 생명을 잃었고, 사람들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바뀌지 않는 선진국 기업들의 행태에 희망을 잃어간다. 


어릴 때 TV 다큐멘터리에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국민을 본 적이 있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걸 입고 있을까? 저 옷이 어떻게 몇 년이 지나서 아프리카까지 갔을까? 그때 한 번 더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그리고 세상은 변화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정말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방글라데시의 환경단체 BAPA 사무총장 ‘샤리프 자밀’은 “그 옷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입는 옷의 대부분의 재질은 ‘폴리에스테르’ 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청바지 하나를 만들 때마다 자동차가 111km 이동했을 때 나오는 만큼의 탄소가 배출된다.

패션 산업은 전 세계 항공기와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한 계절만 입는 옷’이 환경에게 이렇게나 유해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패션은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스키니 한 옷이 몇 년 전까지, 꽤 오랜 시간 유행을 했었다. 작년까지는 ‘자유’라는 키워드 안에서 움직이기 편안한 펑퍼짐한 옷이 유행이었다. 2022년에는 돌아온 ‘밀레니엄’이란 키워드로 짧은 상의와 하의를 기본으로 하는 ‘로우 라이즈’ 스타일이 유행 중이다.


위의 언급한 세 가지 트렌드는 서로 상호 호환될 수 없는 디자인이다.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의류업체들은 현재 의류산업이 전 세계 환경위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절대 모르지 않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늘도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의 옷을 내놓는다. 셀럽을 이용하여 ‘트렌드’를 만들어 내어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긴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고 있지 않다.

보통 패션업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면 ‘화려하고’, ‘멋있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제는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에 든 내용물을 봐야 할 때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량품인 내용물을 반품시키는 용기이다. 


다큐멘터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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