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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LEE Sep 27. 2021

오랜만에 브런치

지난 여름에, 독립 출판 클래스를 경험하면서 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사실 나는 쓰는 게 일인 사람이라 억지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읽는 것 말고는 '독서'에 그다지 취미를 붙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자질은 부족하지만 그 상태로 뭐든 쓰다 보니 '이걸로 책을 한 번 만들어 볼까' 싶었던 거다. 그래서 덜컥 신청했다.


첫날 내가 느꼈던 건 숙연함 또는 반성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모였는데 강사는 물론이고 다른 참가자 분들도 책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라, 뷰티 유튜버가 1년에 책을 6권 읽었다는 말에 부랴부랴 숙제 해치우듯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내 모습과는 정말 달랐다. 전국의 독립서점에 대해서도 이미 많이 알고 계셨고 템플 스테이밖에 몰랐던 나는 북 스테이가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아무튼 그 정도로 다들 책과 친밀한 사람들이라, 책도 안 읽은 내가 뭘 쓸 수 있을까. 뭐라도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여행 중 틈틈이 일기를 써 놓은 덕분에 분량은 충분히 채울 수 있게 됐다.


내용을 채우고 나니 내지 디자인, 표지 디자인, 사진 보정 작업, 조판 작업이 골치를 썩이게 만들었다. 이미 동기(나와 같은 시기에 함께했던 참가자 분)들은 클래스가 끝날 때쯤 한 권의 책을 뚝딱 만들어서, 벌써 텀블벅 펀딩부터 작은 행사까지 참여한 모양이었다. 좀 뒤처진 느낌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내지부터 표지까지 차근차근 혼자 작업했더니 드디어 샘플북까지 확인할 단계가 됐다.




오늘 처음으로 책을 받아 봤는데 확실히 달랐다. 260p의 두께가 이런 거구나, 처음 샘플북을 뽑았을 땐 시간적으로도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서 거의 팜플렛과 다름 없었는데. 형편 없는 책자에서 다시 그럴싸한 책으로 나온 게 나조차도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책이 나오고 나니까 또 다음 스텝이 보이기 시작했다. 텀블벅 펀딩 준비부터 굿즈 제작이나 포장지들까지 체크해야 한다는 것. 포토샵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걱정 반 설렘 반.


일단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잘 하지도 않는 SNS를 잠깐 만지작거렸다. 덕분에 예전에 알고 지냈던 지인도 책을 한 권 냈던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후로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로 끊어지는 짧은 키워드가 주류의 SNS 감성이라고 할지언정 나는 그가 SNS에 남기는 줄글을 꽤 좋아했다. 그도 출간하기까지 이렇게 힘들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클래스를 듣는 동안 선생님은 우리를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나한테 그런 호칭이 붙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쑥스러운 기분이었는데 언젠가는 그런 호칭이 자연스러워질 만큼 뭔가가 돼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아직도 스스로에게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뭐든 시작해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번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도 이런 맥락인데 어떤 경험이든 결국 나에게 남는 것들이니까 쉬어 가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마냥 쉬는 게 불안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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