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라는 고유감각을 잃은 모든 이에게 바치는 편지
나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해준 가족들에게.
인간에겐 다섯 가지 감각 외에도 '고유감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뭔가 했더니, 손에 무언가 쥐고 있을 때 그 물건이 손을 짓누르고 있는 감각이라나? 고유감각을 잃은 사람은 가방을 손에 들고 있을 때 눈으로 계속 손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대. 그래야 자신이 가방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더라. 참 웃기지 않니? 그런데 있지, 엄마도 그 고유감각이라는 걸 잃어버린 것 같아. 슬프게도 엄마는 살아있다는 고유감각이 없어서 수시로 그 사실을 확인해야만 해.
수명이라는 장작불은 끊임없이 타오르는데, 나는 하루하루를 잘 살고있나? 매일매일을 아름답고 사랑하는 것들로 채우고 있나? 웃기게도 가방을 든 손을 수시로 확인하듯 엄마는 노골적으로 시간의 눈치를 보며 산 지가 꽤 되었단다. 이렇게 안일하게 살다 내 안에서 부르짖는 나의 진짜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비겁하게 남이 불러주는 이름에 맞게 살다가, 내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지 너무나 겁이 나.
제이 드페어란 화가는 <장미>라는 작품을 10년 넘게 그렸대. 화실에서, 창고에서, 심지어 그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 벽 뒤에서까지. 성공을 담보로 그랬을까?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싶었을까? 아니, 나는 아니라고 봐. 그냥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의 고유성을 꺼내야만 살 수 있으니까 그랬을거야. 나는 그 마음을 알아.
오늘부로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어쩌면 허물이 되어버린 것을 벗어버리기로 했어. 내가 살아있다는 고유감각을 되찾기 위해서 말야. 엄마는 너희 곁에 없지만 삶을 찾아 제 힘으로 제 두 발로 굳건히 땅을 디딘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클림트의 그림에 늘 등장하는 금빛 찬란한 백색의 여자들 옆에 시퍼런 날을 세우고 서있는 해골을 본 적 있니? 그 해골이 자꾸만 나에게 서두르라고 하는 것 같아. 너희 또한 그 해골이 언제나 너희 곁에서 낫의 날을 벼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