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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슭님 Mar 08. 2023

1. 실리콘은 재활용 쓰레기일까?

쓰레기 종량제 전국 실시





관리실에서 안내말씀드립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6시부터 목요일 아침 9시까지 분리수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분리수거일자에 맞춰 재활용품을 내어 놓으시길 바랍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TV를 보기 위해 거실 소파에 누워있곤 했다. 바깥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베란다 문을 열면 쌀쌀한 바람이 밀려온다. 이내 주황색 불빛이 비치고,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잠시 뒤에 현관문을 열고 말발굽 모양의 도어스토퍼를 내리고는 재활용 박스를 든 엄마를 따라나간다. 그림자도 숨어버린 늦저녁, 맨발의 슬리퍼 아파트단지 앞 주자창 향한다. 이미 여러 명의 사람이 우리와 같은 차림으로 나와있었고, 폐지가 쌓인 곳에는 경비아저씨가 쓰레기 분리를 돕고 있었다. 겨우 이웃의 얼굴을 짐작할 정도의 어둠 속에서 '페트병', '유리', '우유팩', '종이', '캔' 등의 팻말을 확인하여 가지고 온 상자 속을 하나씩 비워낸다. 철근 뼈대에 걸린 마대 자루는 금세 불룩해졌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주거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나서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일상적이고 당연했다. 또한 재활용품을 소재에 따라 각각 다른 자루에 집어넣는 것은 일종의 놀이처럼 흥미로운 일이었다.(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고난 성향에 딱 맞는 눈높이 교육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름의 궁금증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귤, 조개, 달걀 등에서 나오는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가 맞을까? 우유팩과 종이컵은 종이류로 버리면 되는 것일까? 와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기준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였다.

1995년, 아파트 단지 앞에서 분리배출을 하고 있는 주민들 (ⓒ국가기록원)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됐다.



   1995년 1월 1일 전국적으로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됐다. 정식 명칭으로는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 용어 그대로 쓰레기 배출 시 수수료를 발생시켜, 배출자가 직접 처리비용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쓰레기 배출을 억제하려는 제도이다. 쓰레기의 배출량에 따라 차등적인 비용이 부과되고, 이것은 곧 종량제 봉투의 사이즈로 구분되었다. 버리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1960년대는 본격적으로 도시화와 산업화를 이루면서 많은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가서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맞이하였는데, 이때 생활부터 산업까지 전반적인 규모가 훨씬 커지게 되면서 쓰레기는 사회에서 큰 문제로 자리 잡게 된다. 그 결과 방대한 양의 생활폐기물과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 등이 구분 없이 뒤섞인 비위생 매립지가 형성되었다. 명확한 개념이 없었을 때였으므로 농사지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거대한 쓰레기 산이 돼버렸다. 잘 알려진 서울 마포구의 난지도는 당시에 9200만 톤에 육박하는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왼쪽: 쓰레기 종량제 캠페인(ⓒ동아일보) / 오른쪽: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서울시)


  1인 폐기물 배출량이 1.8kg(재활용 7.5%)였던 1992년. 수많은 환경단체의 ‘쓰레기종량제’ 도입 촉구를 바탕으로 1994년에는 지방자치단체 33곳에서 시범사업을 거치게 되었고, 1995년부터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쓰레기종량제는 이후 분리배출과 재활용산업의 시작점이 된다. 특히 다음 해인 1996년도에 해충과 악취의 주요 원인이 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 것을 구체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쓰레기 종량제의 효과는 어땠을까?



  '쓰레기 종량제'는 시범연도였던 1994년 대비 2019년 기준으로, 하루 매립양이 13%가량 줄어들고 재활용률이 62%에 이르는 성과를 이뤘다. 통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재활용에 있어 OECD국가들 중에서 재활용 선진국가로 세계 2위에 등극하기도 했다.(2013년) 하지만 이러한 수적인 결과들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까?


  약 29년이 지난 현재에도 쓰레기 문제에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불법 수출 쓰레기와 불법 투기부터 수도권 매립지 종료 예정 및 소각장 신설까지 다양한 이슈를 심심찮게 접하곤 한다. 서울시에서는 하루평균 3200톤의 쓰레기가 발생되고, 특정 지역으로 이동해 소각과 매립을 거친다. 문제는 소각이 되는 곳이 주민들의 거주지역에 영향을 주며, 쓰레기 매립지는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쓰레기는 지자체 별로 처리 방식이 다르다. 쓰레기를 태우고 매립할지, 그냥 매립할지가 고려된다. 상식적인 시각으로만 본다고 쳐도 그냥 매립하는 경우에는 쓰레기가 썩는 시간보다 매립되는 양이 많아질 것이다. 소각을 한다 해도 그 안에 폐비닐 및 폐플라스틱이 함유되어 있다는 점이 불편한 지점으로 다가온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배달음식, 마스크, 온라인 쇼핑, 일회용품 등의 사용량 증가로 발생한 코로나 트래쉬까지 생각한다면, 통계로 알려진 재활용 비중은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많은 환경 전문가들은 실질 재활용률을 30% 안팎으로 보고 있다. 소형 플라스틱 혹은 플라스틱 잔재물들은 소각과 매립 대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로웨이스트의 영향으로 소형 플라스틱을 활용하여 튜브 짜개 등의 상품을 만드는 사례도 보인다


왼쪽: 배달로 발생하는 일회용품 쓰레기(ⓒ참여와 혁신) / 오른쪽: 소형플라스틱 '병뚜껑' 수거함(ⓒ슭)


   흔히 사용되는 '분리수거'라는 말은 배출자의 입장에서 적합한 단어가 아니다. 쓰레기를 내놓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분리배출'이고,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지방자치단체는 '분리수거'라고 해야 한다. 배출된 쓰레기는 수거를 거쳐 선별장으로 옮겨지는데, 이곳에서 품목과 재질에 따라 재분류가 되고 각각의 플라스틱은 재활용 및 재강업체로, 유리는 파쇄업체 등으로 보내진다. 여기서 남은 잔재물은 소각과 매립으로 처리된다. 다만 선별장으로 보내진 쓰레기 중에는 분류에 맞지 않거나 재활용할 수 없는 것들이 종종 섞여 나와 30% 이상은 또다시 소각장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처음에 배출하는 과정부터 운반 과정까지 명확한 구분 없이 합쳐지기 때문이다.


쓰레기 선별장(ⓒ한국일보)


  2019년부터는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 시행지침’으로 재생 비닐을 활용한 종량제봉투 사용이 시행되었다. 폐비닐을 재활용해 만든 재생 비닐이 40% 이상 포함된 종량제봉투를 우선적으로 제작·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종량제 봉투는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이다. 그럼에도 일반쓰레기를 담는 탓에 대부분 일반쓰레기로 버려지고 소각 및 매립된다.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썩지도 않고 유해물질을 일으킨다. 게다가 봉투 제작 시 1kg 당 3kg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기까지 한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생분해성 봉투와 재생비닐이 제시되지만 아직까지도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 생분해성 봉투는 생산가격이 일반 비닐보다 3~5배 높고, 재질이 약해 잘 찢어지기 때문이다.


  1995년에 시작된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는 정책적으로는 안정적으로 안착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러 고민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전보다 성숙한 접근이 필요해졌다고 느낀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한 사람의 인식도, 사회와 기업의 영향력도 이전보다 더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버리는 일상: 실리콘은 재활용 쓰레기일까?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와 함께 성장해 왔으면서도 여전히 헷갈리는 것이 있다. 실리콘은 재활용 쓰레기, 즉 분리배출 항목일까? 와 같은 것이다. 일단 실리콘은 분리배출 항목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플라스틱인척 하는 일반쓰레기이다. 비단 실리콘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인척하는 소재는 은근하게 우리의 일상에 함께하고 있다. 이런 의문도 있다. 비닐까지 모아서 버리면 정말로 타당한 처분으로 이어질까? 음료병, 라면, 과자, 택배포장 등에서 나오는 비닐을 떼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이게 진짜로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왼쪽: 비닐류(ⓒblisgo) / 오른쪽: 뽁뽁이도 재활용 가능(ⓒunplash)



  정리정돈을 마음먹을 때면 버리기를 먼저 시작하는 편이다. 생활쓰레기부터 사용하지 않는 물건, 옷장에서 꺼낸 지 오래된 옷가지 등을 분리할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어렵다.
✔️  사면서 따라오는 것들이 많다.
✔️  빨리 소비해서 버려야 한다.

  옷 한 벌을 샀을 뿐인데 상품택(대체로 종이류지만 마그네틱이 심어진 경우도 있다.)이 따라오고, 상품택을 이어주는 소량의 플라스틱과 포장재로 쓰인 비닐과 습자지, 그리고 경우에 따라 쇼핑백까지 생긴다. 무언가 필요하면 획득하고 버려야 할 것들이 상당하다. 필요가 없어진 물건의 경우 분리배출이 가능한 재질이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구청에 신고해서 버리기도 하고(수수료 부과), 적정 물량이 모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중고물품업자에게 팔기도 한다. 소소하게 중고거래플랫폼을 이용하거나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해 기부단체에 보내기도 하지만 앞의 방법보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기에 자주 실행하기는 부담스럽다.  


  결국에는 "차라리 사지 말걸."이라는 후회를 남기고야 만다.(상당히 자주) 개인 폐기물을 잘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출량을 생각해서라도 소비 신중해지는 자세가 필요함을 느꼈다. 소비가 쉬워졌기 때문에 '정리=버리기'가 자연스러운 요즘, '오래 쓴다', '아낀다', '고쳐 쓴다', '소중하다' 등의 말은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 씁쓸진다.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배달용기나 음료컵을 버리실 때에는 깨끗이 헹궈주세요.

  


  언젠가 회사 단체 메시지방에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공유 오피스의 라운지에서 쓰레기를 버릴 때 깨끗하게 헹궈서 버려달라는 당부로, 비치된 분리배출통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청소 여사님들이 고생하시는 것을 목격한 누군가의 관심이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태도이기도 했다. 소비하고 버리는 반복적인 행위에서 '버린다'는 것은 '끝'이 아니다. 분명 새로운 과정의 시작일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순환하여 사용하거나 소멸시킬지에 대한 결정 속에서, 무수한 손들이 일하고 있다. 이른 아침 새벽공기를 가로지르던, 컨베이어벨트에서 종류를 가려내던, 묵묵히 쓰레기통을 비워내던 손들이었다. 이제 막 소비를 끝낸 '나'의 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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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홍수열.『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국가 기록원(theme.archives.go.kr)

한겨레21(h21.hani.co.kr)

한국일보(hankookilbo.com)

인천투데이(www.incheon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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