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나는 기사 쓰는 일을 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릴적엔 영화감독이 되고싶었다. 학창시절을 보내면서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와서보면 나는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좀 더 나아가 그 사람을 깊이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을 알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나는 지금 일이 마음에 들었다. 반면 나를 많이 아끼고 챙겨주시던 부장님께서는 늘 내가 찍는 사진들에 아쉬움을 가지셨다. 글과 표현은 좋아 하지만 기자는 글을 잘 쓸 필요는 없어 하고 말하셨다. 네 글은 지나치게 감성적이야. 기자는 뭘 찍어야하는지 알아? 어느날 부장님이 내게 물었다.
"기자는 카메라로 돈을 찍을 줄 알아야 해. 기자의 사진은 돈을 따라가는 거야. 네가 찍는 사진이 돈이 되어야하는거지. 돈 되는 사진을 찍어오는 기자가 좋은 기자인거야. 이대리 혹시 주식하나?"
"요즘 다들 하길래 저도 좀 사봤습니다"
"기사는 주식같은거야. 가끔 버리는 기사들이 많은데 다 쌓이고쌓이다보면 나중에 다 회수할 때가 분명 와. 내년 상반기 전주에서 국회주최 비공식 행사가 하나 있어. 거기 네가 다녀와봐. 잊지마. 행사장 찍으러 가는거 아니야. 돈 냄새 맡으러 가는거야. 구리다 싶으면 일단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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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에 딱 한 개비의 담배를 폈는데 담배를 핀다는 행위 자체가 건강에 해로울 뿐더러 좋지못한 행동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어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담배를 폈다. 회사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여 불이 충분히 붙도록 한 뒤 담배 한 개비가 딱 맞게 들어가는 홈에 담배를 꽂아넣었다. 연기는 바람을 타고 위로 향했다. 그렇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만을 맡았다. 나는 담배 냄새가 좋았다. 그 연기를 계속 맡고 싶어 담배를 폈기에 이미 충분히 중독된 상태라고 생각했었지만 담배를 직접 입에 물고 피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담배를 좋아하는게 맞나 하는 궁금증이 가끔 찾아올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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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지난 2년동안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다. 부장님을 따라 함께 간 행사장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그냥 좀 어려 보이는 여직원, 그것이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행사장 입구에서만 마주칠 때만해도 그저 스처지나가는 다시 볼 일도 만날 일도 없을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아 최의원님 보자관이시군요? 부장님이 먼저 인사했다. 나도 뒤이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했다.
당시 이제 막 일을 배우고 있던 그녀는 물어보는 질문 마다 아 확인 해보겠습니다 하는 말만 할 뿐 이렇다할 대답을 제대로 주지 못해 그녀를 답답하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다. 늦은 저녁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맡은 일은 해냈고 다양한 질문들에 점차 즉각 답변이 나올 정도로 본인 일에 대한 숙지도 뛰어났다. 그녀를 처음 만나고 2주가 흐른 뒤에서야 뒤늦게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다.
나주영. 그녀의 이름이었다. 국회에서 일하던 그녀는 올해 서른으로 나와 동갑이었다.
어느새 나는 그녀에게 마음이 많이 가있었다. 사석에서 저녁을 함께했고, 주말엔 영화를 봤다.
반차를 내고 함께 오전 산책에 나섰었다. 서로가 피곤할 때면 영양제나 간식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그녀는 이타적이고 말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가끔씩 뱉는 장난을 들어보면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지만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사이라 그런지 아직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서로 점차 친해져갔지만 분명한 선은 존재했다. 그리고 서로 그것을 지켜주었다. 그런면에서 그녀와 나는 꽤나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이 만남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 지방 파견이 잡혔어요. 당분간 주말에 시간이 어려울 것 같아요.
- 요즘 너무 일이 많아서 답장할 틈이 없네요.
만남도 연락도 서서히 멀어졌다. 함께 나눴던 그 반년이라는 시간이 내게는 너무 크게 남아있었고 왜 그 반년동안 나는 좀 더 열심히 다가가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만 남았다. 멀어진 연락과 만남은 이제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 2년 동안 그녀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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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갈 수 있지? 뭐 별일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나름 지방 출장인데. 막상 혼자 보내려니 걱정이 되네"
이전에 말씀하신 지방 출장 답사길에 나서던 나를 부장님이 걱정하셨다.
"괜찮을 겁니다. 그냥 답사인데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나를 걱정해 주시는 부장님을 안심시키며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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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발했어?" 여자친구의 전화였다.
"잠시만, 아 찾았다. KTX 오랜만에 타려니 타는 곳이 헷갈리네" 익산으로 향하는 KTX 탑승구를 찾으며 내가 답했다.
"매일매일 전국 곳곳을 다니다보니 불과 어제는 내가 어딨갔었는지 기억도 안나"
"어제는 오송이었어"
"내가 얘기 했었나?"
"아니! 너가 얘기 안해주니까 내가 검색해봤지. 기사 잘 읽었어요 이기자님! 좋은 후속 기사 부탁해요"
"부끄럽게 그걸 찾아봤어"
"오늘은 갔다가 바로 올라오는 거지? 가면 바쁠 텐데 나한테 바로바로 연락할 필요 없어. 천천히 답장해"
"그래 고마워. 끝나고 올라오는 길에 다시 연락할게"
KTX 안에서 출출할까 봐 샀던 과자와 음료수는 결국 뜯지도 않은 채로 익산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출발해서 그런지 별로 출출하지 않았을뿐더러 생각보다 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익산역에 도착해 군산 부안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창가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숲과 하늘. 빠르게 달리는 버스 창가 너머로는 오직 푸른색과 초록색 이 둘 뿐이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렌즈 너머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것보다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웠다. 내게는 마치 렌즈속으로 비춰지는 바깥 풍경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는 기억을 꺼내어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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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지 않습니까? 나중에 기자분들은 이쪽으로 모실겁니다. 특히 저 구간을 잘 찍어주시면 좋겠어요. 이 멋진 광경을..."
군산에 도착해 행사 현장 운영자의 설명을 들었다.
"아직은 볼 게 많이 없죠? 아 오늘 이곳 답사 오신다고 주최 측에도 말씀드렸더니, 주최 측도 마침 여기 와계시다고 직접 만나 뵙고 설명드린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제 곧 다 오셨다고 방금 연락을 받았는데... 잠시만요 다시 연락드려볼게요" 현장 운영자가 말했다.
답사라는 명목으로 4시간을 달려왔는데 아직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어 조금 당황스럽던 차였다. 서울로 돌아가 회사에서는 뭘 보고 왔다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하고 고민했다. 이러다 매달 여길 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둘러보시고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봐주세요"
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2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지만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렸다. 자연스러운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통 저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통상적었던가? 사고는 멈추었다. 강한 햇빛을 핑계 삼아 당황스럽고 심란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인상을 미간 사이로 찌푸렸다.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크게 내뱉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인연에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만나게 될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만나지고 안 될 인연은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안 풀릴 테니까. 하지만 가끔 이도저도 아닌 인연이 있다.
제 아무리 애써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가만히 있음에도 자꾸 만나지는 그런 답답한 인연이 있다.
그녀를 이곳에서 2년 만에 다시 또 우연히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