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에 위치한 주임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 2주 정도 남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얼마 전 회사에서 꽤 친하게 지내던 주임님과 퇴근 후 오랜만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사실 이쯤에서 얘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먼저 운을 떼셨다. 조심스러워 보이는 표정과 머뭇거리는 말투에 그 짧은 찰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사실 다다음주 목요일에 회사 그만두거든요" 앞을 보고 걸어가며 덤덤히 말했다.
많이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보통은 누군가 그만두게 되면 이제 마음이 떠난 게 훤히 보이거나 퇴사 후 전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서 그만두기 마련인데 주임님의 경우 그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고 방금 전 회사에 있을 때만 해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는 급하게 계산에 들어갔다. '다다음주 목요일이면 오늘부터 얼마나 남은 걸까?'
그 뒤로 매일 출근할 때마다 마음속 카운트를 세어갔다. '이제 약 열흘인가', '벌써 모레군'
주임님이 그만두기 일주일 전쯤 그만두시는 당일에 따로 해야 하는 개인 사정이 생겨 그날 회사 월차를 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달력을 보며 그날은 주임님이 그만두시는 날인데 그래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볼 자신이 없어 휴일을 내게 되었다.
그리고 주임님이 그만두시던 날 회사 선배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제 적응될 때 되지 않았어?"
어릴 적부터 한국을 떠나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 친구들과 오랫동안 이별하게 되었고
또 캐나다에 이제 적응했을 무렵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이번엔 캐나다 친구들과 급한 작별을 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삶 속에서 많은 이별과 인사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되는 게 또 작별이었다. 오히려 남들보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힘듦이 조금 더 크다고 보는 편이 맞으리라.
타인으로부터 꾸준하게 들어왔던 칭찬이자 나의 장점으로 거론되었던 건 '원만한 대인관계'였다. 참 주변 사람들 잘 챙긴다. 공감을 정말 잘해줘서 힘들 때 찾게 되는 사람이다 등 정말 감사한 표현들을 많이 들어왔다. 사실 그런 표현들을 할 수밖에 없게끔 뒤에서 노력해왔던 나의 수많은 마음고생이 있었다.
내게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하나의 산이 있었다.
유기 불안.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어릴 적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아왔고 유기 불안을 중심으로 파생된 많은 생각들은 주변의 모든 관계들에 큰 의미를 심겨주었다. 가벼운 관계는 없었다. 그저 잠깐 인사하고 넘어간 사이도 큰 인연으로 받아들여졌고, 친구나 연인은 각별하고 마음을 함께 나누는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많이 베풀어주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렇지만 않다. 주변 관계를 깊이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다 보니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는 내 삶에 나라는 존재는 없다.
나는 나로서 내가 좋아하고 내가 행복한 것을 찾아가며 앞으로 계획을 그려감으로써 나의 삶을 책임감 있게 살아낼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등 나를 중심으로 한 사고가 없다. 항상 나는 지금 누구와 연락해야 하지? 누구와 만나야 하지? 누구를 챙겨야 하지? 지금 누가 나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등의 생각으로 머리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두 번째는 과한 기대와 의미 부여이다.
친구도 동료도 연인도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인연이기에 모두와의 관계가 소중하다. 그렇기에 그들과 중요한 관계가 되려 노력하며 중요한 관계가 되기 위해 그들의 마음과 감정을 그 누구보다 잘 공감해주고 힘들 때 어려울 때 옆에 있어주게 된다. 그리고 옆에서 함께 힘들어해 주고 함께 아파해준다. 마치 부모와 같은 마음을 갖고 그야말로 그들을 품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타인의 마음과 감정을 깊에 공감하는 만큼 그들과 정서적으로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는 쌍방이 아닌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내가 타인을 생각하고 신경 쓰는 것만큼 타인은 내가 쓰는 에너지의 양만큼 내게 돌려주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일방적인 헌신을 그것도 여럿에게 꾸준히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타인과의 관계에 큰 무게를 두며 아무도 실망시키려 하지 않고 모두와 잘 지내야 하며 타인의 힘듦을 나의 힘듦보다 더 크게 느끼며 챙기느라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위 두 가지 문제를 반대로 행해보라고 일러주고 싶다. 먼저 내 삶은 나의 것이기에 나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알아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등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주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봐주고 그대로 행해주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타인 과의 관계에 있어 가벼운 마음을 갖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된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관계는 없다. 내게 해가 되거나 손해를 끼치려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뒀을 때 불필요한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 동료, 연인, 가족에 대한 무게를 좀 낮추고 그저 모두를 하나의 친구로 바라보는 가벼운 마음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