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부모에게 느끼는 자식의 죄책감

모든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1)

by 탄고

늦은 밤 무작정 집에서 나와 이브의 집으로 향한건 자정이 다되어서였다.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그 자리로 집에서 뛰쳐나와 밖을 나와보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브의 집으로 향하며 이브에게 연락을 했다. 많이 늦은 시간인건 알지만 혹시 하루 정도만 있어도 될지 물어보았다.


이브의 흔쾌한 답변을 듣고 1시간 되는 거리를 걸었다.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방금 어머니와 다툰 내용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릴적부터 아버지와 사업을 해오시던 어머니는 아침 저녁으로 일하는 탓에 늘 바쁘고 힘들고 아픈 모습을 보이셨다. 내심 어머니가 늘 걱정되어 어머니의 감정을 살피느라 집에서는 늘 눈치를 보게 되었고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어린 마음에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으로 가져와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나 아니어도 충분히 바쁘고 힘드셔 라는 생각으로 참아왔다. 의젓한 첫째 아들의 역할을 충실히 잘 해왔다.


성인이 되어서 어머니의 개인 사정상 부모님 명의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자 내 명의도 빌려드리며 내 이름으로 사업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비록 어머니가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하셨지만 얼떨결에 내가 사업자 대표가 되다보니 어느정도 사업 돌아가는 것과 주요 업무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했다.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부모님을 대하는 내 모습이 내게 나는 없고 오직 타인을 맞춰주고 있는 모습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었다는 것을. 이브의 말처럼 나는 부모의 부모가 되어있었고 오매불망 어린 자식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혹시나 부모님이 힘들지는 않을까 내가 도와주면 좀 나아질까 하는 마음으로 부모님 걱정을 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나 역시 이런 나의 태도와 아무리 신경쓰고 걱정해주어도 나아지지 않는 부모님의 힘듦과 앓는 소리는 나를 지치고 버겁게 하고 있었다.


자취를 결심했다. 몸도 마음도 이제는 부모님 곁을 떠나야 비로소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모님께 요청드렸다. 이제 내 명의를 떠나 부모님일은 부모님께서 맡아 하시면 안되느냐고.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 그럴 수 없어서 조금만 더 내 명의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부탁하셨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안된다는 확고한 답변을 드렸다. 이제는 나가 살고 싶다는 답변도 덧붙였다. 이에 속상해하고 앓는 소리와 함께 한 숨을 쉬고 나가시자 내 마음은 불편해왔다.


저 허탈하고 속상해 하는 표정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 어떤 자식이 부모의 힘든 표정을 보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나는 저 힘들고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 어떤 부탁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게 설령 내게 불이익이 따르고 참고 인내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어머니께 실망을 안겨드리면서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내가 불편하고 마음이 너무 껄끄럽지만 그럼에도 거절했다. 어머니의 일은 어머니께 남겨드리고 이제는 나를 위해서.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이브의 집에 도착해있었다. 도착할 때쯤 이브는 미리 집 앞에 나와있었다.


이브: 이 추운 저녁에 반팔로 나온걸 보니 그냥 무작정 나왔나보구나. 어서 들어가자.


이브의 집에 들어가 담요를 덮고 오늘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이브에게도 들려주었다.


: 그러자 방안에서 어머니의 앓는 소리, 한 숨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그냥 그 집에서 무작정 나와버렸어요. 그 감정을 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더라구요. 사실 하루만 지내다 갈게요 라고 했지만, 내일은 제가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싶어요.


이브: 원한다면 얼마든지 있어도 좋단다. 네 마음 내킬 때 말이다.


: 고마워요 이브


이브: 일단 네 어머니의 힘듦은 절대 너때문이 아니라는것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한 것 또한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너는 너를 위한 선택을 해야해.


: 맞아요. 그래서 거절한거였지만 한편으로 제가 잘 설명했다면 어머니도 납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렇게 끝날 대화가 아니였을지도 모르죠.


이브: 난 그렇게 생각하지않는단다 리틀퍼커. 납득도 설명도 소용없었을게야. 제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거절 당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그러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대답을 들었으니 똑같이 서운하고 실망하고 힘들어했을게다. 그동안 네가 꾸준히 응해주고 따라주었다가 이번엔 완고하게 거절하자 당연히 이번에도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잘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은 하지 않아도 좋단다.


: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집에 돌아가면 또 그 앓는 소리, 힘들어하는 소리를 들어야하고 또 지친 표정과 속상해 하는 표정을 봐야해요. 제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싶어요.


이브: 그동안 네가 계속 도와줘왔고 그 어떤 부탁도 들어주었기 때문에 네게 기대고자 하는 거란다. 이제는 부모님의 일을 부모님에게 남겨드리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단다. 그게 부모를 부모로서 인정해주는 길이기도 하지. 지금은 좀 힘들겠지. 그러나 그 태도를 유지해야한단다. 그래야 부모의 일은 부모가, 네 일은 네가 해결 할 수 있는거란다. 너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 아닌 서로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렴.


이렇게 예시를 들 수 있겠구나.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3개가 있었단다. 3살 된 아이가 그 아이스크림 하나가 먹고싶다고 해서 너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었다. 하나를 금세 다 먹고 하나를 더 달라고 네게 부탁을 했지. 그러나 그 어린 아이에게 2개를 주면 속이 금방 차가워져서 좋지 않은걸 알기에 안돼 라고 대답을 했지. 아이는 어떻게 했을까?


: 울지 않았을까요?


이브: 그렇지. 떼를 썼을게야. 울고 소리지르며 달라고 짜증을 냈지. 그러나 아이가 그런 태도를 보인다고해서 줄 수 있는건 아니란다. 그 아이를 위해서 안돼 라고 단호하게 말을 해야하는거지. 아이에게 단호하게 얘기했을 때 아이의 태도는 어떨 것 같니?


: 금방 그칠 것 같진않아요. 계속 울지 않을까요?


이브: 맞아. 줄 때까지 떼를 쓸거란다. 만약 네가 부모라면 어떻게 할 것 같니?


: 일단 절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안되는 이유를 설명할 것 같아요. 잘 타이르는거죠.


이브: 그러면 좋겠지만 어린 아이에게 다른 이유는 들리지않는단다. 그냥 안주는 부모만 보일 뿐이지. 그저 아이에게는 자신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는 부모가 미울뿐이란다. 머릿속에 아이스크림만 있기 때문이야. 그 어떤 설명도 설득도 소용없는거지. 그냥 안돼 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고 그 아이를 외면하는게 해결방법이란다. 그 아이도 결국 자기가 제 아무리 떼를 쓰고 울어도 소용없구나 라는걸 깨닫는다면 스스로 멈출거야.


지금 너의 상황이 이러지 않을까 싶구나. 너는 아이가 너의 설득을 듣고 잘 이해해주었으면 하겠지만 아이에게 그런건 소용이 없지. 네 어머니도 지금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설득도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게다. 지금 당장 네가 어머니의 일을 그녀의 요구대로 도와주기만을 바랄뿐이지. 그리고 그 부탁에 이미 너는 거절을 했고 너는 서로를 위해 그 태도를 유지해야한단다. 계속해서 어머니가 기댈 공간이 되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언제까지 너를 양보해가며 도와줄 수는 없단다. 이건 서로를 위한게야. 서로의 일은 서로가 감당할 수 있게 두는 것 또한 존중이란다.


남의 마음을 살피고 걱정해주는 좋은 마음이 그렇게 부모를 생각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나 이제는 남을 살피고 애쓰는 마음만큼 네 자신도 살필 수 있는 네가 되었으면 한단다. 부모가 네 마음을 살펴주지 않는데 왜 너는 일방적으로 부모를 살피려고 하는거야? 그건 효도도 사랑도 아니란다. 그건 그냥 아픔만 남는 일이야. 사랑은 결국 서로가 옳은 길로 가야 의미가 있단다. 그 옳은 길은 각자가 각자의 몫을 서로에게 짊어주지 않고 감당할 능력을 갖추는 게 아닐까 싶단다. 오늘 밤 너는 옳은 선택의 시작을 잘 해낸 것이고 앞으로 그 선택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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