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워 방 안이 환하게 밝혀졌음에도 햇살을 등지고 누워 핸드폰을 하며 오랫동안 누워있었다. 특별히 하는 것은 없지만 오랫동안 핸드폰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하는 모습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커뮤니티에 들어가기도 하고 카페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동영상을 보며 댓글을 다는 모습 말이다. 어떤 콘텐츠를 보더라도 항상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나의 생각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마땅히 볼 내용이 없자 조금은 적적한 마음에 오늘 누구라도 만날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이럴 때면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끊임없이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언제 한번 다시 나오라는 교회 사역자분들의 연락도 있었지만 그런 연락은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끊어놓았음에도 누군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적적한 마음이 들 때면 여러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다가 이윽고 80세 넘은 노인 이브가 생각나게 된다. 많은 좋은 친구들이 있지만 결국 내 이야기를 가장 그대로 잘 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햇살 가득히 비추는 창가 위에 내려앉는 먼지를 멍하니 더 바라보며 시간을 더 죽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해가 조금 기울 때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양손 가득한 채로 이브에게 갔다.
이브: 뭘 이렇게 가득 사 왔니?
나: 별거 아니에요. 이브에게는 마치 보리차 같은 맥주랑 빵이랑 마요네즈를 사 왔어요.
이브: 빵과 마요네즈는 대체 무슨 조합이지?
나: 계란 샌드위치를 해볼까 해요. 계란만 다 삶아지면 금방 만드니까 기다려봐요. 작게 만들면 맥주 안주로 딱이지 않겠어요?
이브: 계란 샌드위치라,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기대는 되는구나
나: 이브
이브: 껄껄껄 그렇지. 그렇게 낮고 무섭게 나를 부르지 않으면 리틀 퍼커 네가 아니지. 그래 무슨 일이냐?
나: 저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봐요. 그런데 주로 뭘 보는지 아세요? 메일을 보고 메신저를 보고 그다음 카페나 커뮤니티 채널들을 봐요. 딱히 재밌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아니에요. 그냥 제 생각 다른 사람 생각을 남기는 곳들을 봐요. 아마 제가 외로워서겠죠? 그런데 이상한 건 분명 제게 연락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몇몇 친구들도 있고 다니던 교회에서도 계속 연락을 해주는데 그런 연락을 이상하게 반갑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버겁고 지친다는 마음이 크죠. 그럼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내가 기다리고 바라는 연락은 그럼 대체 뭐지? 하는 생각 말이죠.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참 하다가 결국 이브네 집으로 와요(웃음)
이브: 이 집의 3층엔 내 딸과 딸의 남편인 에릭이 살고 있단다. 내 딸은 굉장히 사교적이고 밝고 쾌활하지. 그런데 에릭은 조용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단다. 딸은 주말 이틀 내내 집에만 있는 걸 이해하지 못한단다. 꼭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고 놀아야 하는 거지. 반면에 에릭은 그렇지 않단다. 주말 정도는 혼자 쉬어야 하는 거야. 그렇다고 에릭이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느냐? 그건 또 아녔단다. 토요일 하루쯤은 TV도 인터넷도 하지 않고 쉴 수는 있겠지만 일요일 정도는 소셜 네트워크도 들어가고 본인이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에 올리기도 하더구나. 소통하는 창구의 차이만 있지 내 딸도 에릭도 자신이 선호하는 방법으로 계속 소통을 하는 게야. TV는 너무 일방적이잖니. 아무리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순간이 온단다. 결국 모두가 소통을 원한다는데 있어서 네 고민은 크게 이상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나: 맞아요. 그래서 결국 이브네 집으로 와요. 이브는 마치 제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주고 대답해준다는 느낌을 받아요. 제 생각과 고민을 정말 잘 곱씹어보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해주는 거죠.
이브: 리틀 퍼커 너는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잘 안 하는 게냐?
나: 대화가 아주 없지는 않아요.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대답을 바라고 말을 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그냥 통보할 뿐이죠. 나 오늘 늦어,라고 알리거나 내 책상 위에 있는 짐들은 건들지 마 등의 요청을 하고는 말아요. 서로 주고받거나 제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뭔가 얘기하지는 않는 거 같네요.
이브: 주고받는 소통이 아닌 게로구나
나: 왜 그럴까를 많이 고민해봤어요. 저도 물론 가족들과 편하게 제 이야기를 하고 나눈다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제 부모님은 제 이야기를 그냥 묵묵히 들어준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늘 제가 고민을 이야기할 때면 그렇구나, 그랬겠구나가 아니라 제가 지금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지적하기 바쁘셨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얘기하지 않아요. 그냥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고 대화를 얼른 끝내기 급급하죠. 게다가 늘 감정적으로 제게 대처하시니까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제게는 조금 버겁고 마치 뭐랄까
이브: 부모는 부모지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게 돼버린 거지
나: 맞아요. 기대고 싶고 투정도 부리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부탁도 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요.
이브: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쌓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구나. 다만 어떤 일들로 인해서든 네게 어떤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항상 말하지만 잘못된 마음은 없다는 게다. 네게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상황이기에 외로운 것이고 누군가 네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게지. 절대로 이상한 게 아니란다. 참 부모라는 게 중요한 이유가 말이다. 결국 모든 관계의 시작은 부모 더구나. 연인도 친구도 심지어 우리가 신으로 모시는 하나님도 우리 부모의 모습이 투영되기 마련이란다. 내가 그들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대하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주변을 똑같이 대하고 있는 거지. 부모와 주고받는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그들의 감정표현과 함께 참고 인내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노출되어있었다 보니 그동안의 인연도 버거웠을 테고 부모라는 아이에게 높은 존재가 의지하거나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오히려 계속 네가 무언가 해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보니 하나님 또한 네게 버겁고 힘든 존재로 다가왔을 게야. 그 어떤 마음도 네게 이상하고 잘못된 마음은 없었다는 거다.
나: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거죠?
이브: 그냥 인지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최대한 네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생각과 행동들을 하는 거란다. 어찌 보면 지금 아주 잘하고 있는 걸 수 있지. 너는 영원한 네 편이잖니. 너는 네가 편해질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을 계속해야 해.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선택을 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