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네 스스로를 믿을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렴

굿바이 이브

by 탄고

항상 이브를 찾던 건 나였는데 이번에 찾아온 건 이브였다.


이브: 짐 정리는 잘 되는 거냐?


: 네, 생각보다 짐이 많아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아침 일찍 시작했더니 해지기 전엔 끝날 거 같아요.


이브: 다행이구나


: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풍경인데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눈에 더 담아가야 할 거 같아요.


이브: 그렇지. 봐도 봐도 멋진 마을이야 이곳은.


: 이브에겐 정말 고마워요. 사실 이브를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어쩌면 이브를 의지하고 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마음 한구석엔 저도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실컷 털어두고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나 봐요. 저는 그걸 이브가 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거죠. 그런데 걱정이 밀려와요.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누가 그걸 해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이브: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해주었다니 그것 참 고마운 이야기구나. 그만큼 네게는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었던 건가 보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제는 이렇게 이별할 필요도 없는 영원한 네 편에게 의지해보는 게 어떻겠니?


: 그게 누구인가요?


이브: 누구긴, 너 자신이지 리틀 퍼커.


: 그게 가장 큰 숙제예요. 항상 주변에서나 인터넷에서나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하죠. 스스로를 사랑하라고요. 그런데 제게는 그게 어려워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를 사랑하는 건 뭐죠? 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건가요? 지난주의 저랑 이번 주의 저도 너무 달라요. 그렇게 계획적이고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던 저였는데 이번 주는 그렇게 공허하고 외로울 수가 없어요. 어떻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제 두 발로 서있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브: 공허하고 외로운 건 네가 변하는 과정이라는 증거란다 리틀 퍼커. 너라는 기존의 틀에서 다른 모양이 되었으니 그 공백이 생기는 건 당연하지. 그 빈 공간을 네가 훗날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것들로 채워 넣어보렴. 그것으로 좋은 성적을 내던 못 내던 상관없으니 그냥 잘하고 싶은 것으로 채워보는 거지. 그렇게 잘하고 싶은걸 외로움이라는 공간에 채워 넣는 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것들은 너 자신을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밑거름으로 남게 된단다. 그렇게 채워가는 거지.


: 꼭 직업으로써 할 필요는 없는 건가요?


이브: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그게 직업이 될지 취미로 남을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 다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주고 그것에 대한 실력이 쌓여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걸로 수익을 내던 못 내던 상관없이 말이야. 그리고 장담컨대 그것들은 네게 큰 자신감을 가져다줄 거란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너 자신도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야. 네가 너 자신을 믿는 순간,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도 바뀔 거란다.


: 제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는 순간,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도 바뀐다.


이브: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그 고민에 대한 적당한 답을 얻었다면 그다음 네가 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단다.


: 그건 뭔가요?


이브: 바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것이지. 마치 시험공부할 때 이미 푼 문제는 다시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고민에 대한 답을 마련했다면 그 고민은 다시 생각하지 말고 그 답만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란다. 그렇게 계속 하나둘씩 고민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 아가다 보면 너에겐 네 삶 속에서 얻은 많은 답들만 남아있을 거야. 그걸 믿고 그걸 자신감으로 삼고 나아가면 된단다.


: 그런 의미에서 제가 어떻게 믿을 만한 사람이 될지, 라는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을게요. 적당한 답을 방금 얻었으니까요.


이브: (웃음) 언제고 몇 번이고 두 팔 벌려 환영 하마. 리틀 퍼커. 네가 원할 때면 언제든 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