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시작된 이브와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차로 한참을 이동하다가 경치 좋은 경광을 발견하여 차를 갓길에 주차하고 접이식 간이 의자와 간식거리를 꺼내 들고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나: 사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마음이 더 편했는데 이렇게 누군가랑 어딘가로 멀리 떠나왔는데도 마음이 편할 줄은 몰랐어요.
이브: 그래 경치도 날씨도 너무 좋구나. 마음껏 즐기려무나.
나: 이브는 누구랑 같이 있든 마음이 항상 편한가요? 음, 질문을 다시 하자면 저는 혼자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쉼이 되는 케이스인데 이브는 어떤가 해서요.
이브: 혼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라. 적당히 혼자 있는 시간도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다 필요하지 않을까 싶구나. 리틀 퍼커, 너는 남들이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한 게냐?
나: 꼭 불편하다,라고 표현할 것 까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누군가와 같이 있게 되면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랄까요? 그러다 보니 매 순간순간 에너지를 계속 쓰게 되는 거 같아요.
이브: 그래 그러면 쉰다라는 느낌이 안들 수도 있겠구나. 왜 타인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하는 게냐?
나: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사람의 감정은 어떠할까? 표정 하나라도 바뀌면 금세 눈치채고 혼자 속으로 '어디 불편한가?'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게 되는 거죠. 내가 뭔가를 해 드려야 하나? 그럼 내가 뭘 해줘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다 보니 제 마음, 감정보다 지금 같이 있는 사람에 온 신경이 다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브: 그래서 항상 상대방의 눈치를 본다고 표현한 거구나.
나: 맞아요. 그냥 그 순간 제가 편하면 편한 대로 있으면 되는데도 말이죠. 그러고 싶은 마음이 크죠 사실.
이브: 그런 네 태도를 나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구나. 리틀 퍼커, 너는 네가 눈치를 본다라고 했지만 내가 아는 너는 그렇게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 아니란다. 방금 네가 말한 사연은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 순간에 편하게 있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주는 건 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 그 사람의 편안함과 행복을 위한 네 배려인 것이지.
나: 전혀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조금 놀랐어요. 제가 눈치를 안 보는 성격이라고 한 것도 놀랐지만 제가 접근 자체를 전혀 다르게 하고 있었네요.
이브: 이렇게 비슷한 감정들이 참 많단다. 배려와 눈치. 자기 자신을 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스스로가 계속 눈치 본다 생각하고 내가 조금 부족하고 떳떳하지 못하고 주눅 들어 있다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거지.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부족하고 낮게 바라보지는 마려무나.
나: 전혀 지금껏 모르고 지내왔어요. 저는 제 감정표현도 잘 못할뿐더러 타인이 내가 표현하는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서 망설이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거든요. 표현을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말이죠.
이브: 그러나 지금은 잘하고 있잖니? 지금 이 순간에 말이야.
나: 지금 제 말에서 감정이 느껴졌나요?
이브: 네 답답한 감정이 아주 잘 묻어났단다. 직장에서는 직급이 있고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보니 그렇게 감정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래서 어쩌면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준 네 배려가 더욱 돋보였던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집에서도 네가 감정을 표현했다가는 네 부모님 성격에 더 크게 받아치려고 하셨을 테니 안 했다기보다는 할 수 없었다가 맞겠지. 그러나 나와 이렇게 대화를 할 때면 항상 네 말에는 네 감정이 잘 묻어 나왔단다.
나: 뭔가 갑자기 시원하네요. 저도 모르는 사이 제 감정이 잘 나오고 있었다니까 너무 다행이에요. 저는 계속 제 감정을 참기만 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느꼈거든요.
이브: 저기 저 산이 화산이라고 가정을 해보자꾸나. 물론 전혀 화산의 모양도 아니고 절대 화산이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저 화산은 오랫동안 용암이 터져 나오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그러나 우리라는 화산은 말이다. 우리 안에 이 용암이 쌓여나가지 않도록 매번 조금씩 잘 흘려주어야 한단다. 이렇게 용암이라는 네 감정을 부끄러워하지도 창피해하지도 않고 잘 흘려준다면 너 자신도 단단해질 게다.
나: 좋은 말이네요. 감정을 담아두고 참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내보내야 한다는 거죠?
이브: 그렇지. 나를 존중한다는 건 내 감정을 존중해준다는 것과도 같단다. 누군가 리틀 퍼커 네게 무례하게 군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니?
나: 화가 나지 않을까요?
이브: 그렇지. 만약 네 감정에 대한 존중이 없고 배려가 아닌 눈치를 본다면 화라는 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지 않겠니?
나: 맞아요.
이브: 쌓이고 쌓인 용암은 언젠가 터지거나 아니면 네 속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단다. 그러니 그 화라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터트리던 아니면 혼자서 글이나 다른 방법으로라도 꼭 표현을 해주어야 한단다. 네 감정을 외면하면 안 되는 거지.
나: 어쩌면 저 이브가 왜 지금 이 말을 해주는 건지 알 것 같아요. 제 말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는 건 제가 제 감정을 잘 표현했다는 의미이고 제가 감정을 잘 표현했다는 건 눈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인 거겠죠?
이브: 그렇지. 네 감정을 존중할 줄 알고 표현할 줄 안다면 네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잘 알게다. 그리고 그렇게 네 감정에 대해 잘 알고 표현할 줄 알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건 네가 눈치 보느라 끙끙 대는 것이 아닌 그 순간 그 사람에 대한 배려이거나 굳이 표현하지 않은 거겠지. 못한 게 아니라 말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면을 덕분에 알게 되네요.
이브: 그러니 매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소중히 다루면 좋겠구나. 지금 이 순간 지금의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네가 되길 바라고, 지금의 감정을 잘 캐치해내는 네가 되길 바란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게 어떤 감정이 찾아오더라도 그 감정을 외면하는게 아닌 존중해줄 수 있는 네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