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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햇살 May 16. 2021

소개팅하다가 스타벅스 골드레벨 된 여자 사람.


“음료 뭐 시켰어?”

“사이다!”


 대학생 때 친구와 나만의 암호가 있었다. 소개팅 나갔을 때, 그린라이트면 오렌지주스, 그 반대면 사이다. 친구의 인생 첫 소개팅 상대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김ㅇㅇ. 이름처럼 진국이라며 꼭 잘해보라던 주선자 언니의 말도 같이 생각난다. 만나자고 하면 어찌 대답할 거냐며 설레발을 치며, 아직 얼굴도 모르는 소개팅남과 친구의 핑크빛 열애까지 상상해보며 얘기를 나눴다. 소개팅 중의 ‘뭐 시켰어?’라는 문자에 친구는 아쉽게도 ‘사이다’라고 답했지만, 그 후로도 오렌지주스와 사이다는 꽤 오랫동안 우리의 소개팅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료가 되었다.


나의 스타벅스 별은 나의 소개팅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타벅스 괜찮으세요?”

 소개팅에서 밥을 먹은 후 카페를 가자고 하면, 스타벅스 얘기를 꺼낸다. 소개팅에서 굳이 다른 카페가 아닌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반경 500미터 내로 어디든 있는 편이니 멀리 가지 않아도 근처 스타벅스를 갈 수 있다. 그리고, 소개팅의 결말은 예측 못하지만, 스타벅스 별은 정직하게 쌓을 수 있다. “스타벅스 좋아하세요?”, “커피 자주 마시나요?”등의 질문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카페에 대한 취향이나 가치관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상대방이 썩 마음에 안 들어도, 최애메뉴인 달달한 바닐라라떼로 날 위로할 수 있다.


 가끔 스타벅스 좋아한다고 하면 경계를 두는 사람도 보았다. “다른 카페에 비해 비싸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며, 은근 자기는 노란 맥심 커피가 최고라는 말로 떠보는 이도 보았다. 알코올에 관심이 없는 나는 카페에서 달달 구리 먹는 것이 소소한 낙이며 몇 안 되는 ‘소확행’인데 지친 하루 끝의 카페인정도도 이해 못하는 상대면 그냥 첫 만남을 끝으로 알아서 도망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24살, 비교적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카페인이 필요했던 날들도 그만큼 쌓여왔는 건 당연한 일일텐데.


그 날의 온도, 그 날의 시선, 그 날의 생각


  그 날의 커피에는 그 날의 온도, 그 날의 기분도 같이 담겨진 채 마시나 보다. 시간이 흘러도 기분의 온도, 나의 시선, 함께 나눴던 대화가 같이 떠오르니 말이다. 오렌지주스를 보면 21살 때의 친구 첫 소개팅이 떠오르는 것 처럼, 시간이 더 많이 흐르고 나이를 더 먹어도, 오늘의 커피가 기억에 꽤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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