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너울 Jan 09. 2023

정신과가 문을 닫았어요.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나는 요 근래 2주 텀으로 약을 받고 복용 중이다. 그러니까 2주에 한번씩 내원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여러 일이 겹쳐 병원을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거의 3주차 쯤 되어갈 때 나는 병원 갈 짬이 났다. 약속된 면담일이 아니면 병원이 문을 안 열 수도 있다는 걸 이미 경험한 바 있어 외출 전에 병원에 전화를 했다. 오늘 진료 하시나요?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아차,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을 열지 않은 걸까? 그치만 이미 약을 못 먹은지 며칠째인데.. 나는 불안을 안고 버스를 탔다. 진작 병원 좀 갈 걸 후회가 되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임시휴업 정도의 소식이 아니었다. 병원 문 앞에는 폐업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네? 폐업이요?


믿을 수 없어 안내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이 급히 폐업을 했단다. 아무리 그래도 폐업 전에 전화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를 비롯해서 이곳에 내원하던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나는 안내문에 쓰여 있는대로 근처 약국에 갔다. 저, 어디어디 정신과 다니던 사람인데요, 제가 무슨 약을 복용하는지 알고 싶어 왔어요. 원래 정신과 약은 병원 내에서 지어주지만 간혹 대기 중인 사람이 너무 많을 경우 병원 측은 처방전을 주고 근처 약국에서 약을 짓게 하곤 했다. 그래서 약국에 약 조제 기록이 남아 있는 건 다행이었다. 


이 근처에 정신과 또 없을까요?


시간이 많았다면 집에서 병원을 검색하고 평을 보고 문의전화도 해보겠지만 우울증 약을 며칠 먹지 못한 동안 스멀스멀 살아오르는 막연한 불안감에 힘겨웠던 나는 당장 갈 수 있는 병원이 있는지를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지, 하는 황당한 마음은 우선 급한 불을 끈 다음 살펴주기로 했다. 


다행히 근처에 정신과가 몇 곳 더 있어 나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새로 간 정신과의 낯선 대기 공간은 나를 좀 주눅들게 했다. 그래도 그곳이 몇 개월 동안 다녀서 내가 안심하던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분야의 병원도 의사와 잘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정신과는 그 스트레스가 더 크게 오는 것 같다. 당장 그 날도 나는 병원 문턱을 넘기 한참 전부터 여기 의사가 나랑 잘 맞을까 심란해졌다. 잘 안 맞는다면 내게 맞는 병원을 찾아다니는 고생을 해야 되니까.. 어느 병원이든 아프고 약한 상태에서 병원에 가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진료받을 부분이 정신이라는 점에서 새 병원 문을 여는 내가 유난히 여리고 약해지는 것 같다. 그런 심리 상태는 처음 상담실 문을 열 때와 비슷했다.   


새로 만난 의사 선생님에게 가던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은 것과 기존에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있었다는 사정을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고 우울증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저 정말 많이 나아진 건데요? 선생님 저 오늘 처음 보셨잖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전문가가 보기에, 혹은 타인이 보기에 나는 아직도 그렇게 많이 다운되어 있나 걱정이 되었고 스스로 살짝 의심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 간 병원을 계속 다닐지 아니면 또 다른 병원을 찾을지 고민 중이다. 맞는 병원을 찾기까지 여덟 곳을 들렀다던 아는 언니의 얘기가 떠올랐다. 처음에 내원한 정신과와 무난무난하게 잘 맞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는데 이런 일을 겪다니 상당히 당혹스럽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고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병원 문을 급작스럽게 닫았을까 걱정과 궁금함이 일기도 한다. 


그나저나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우울증이 다 낫는다는 건 무리이고 환상일까. 아니, 애초에 우울증에 완치 개념을 두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고 나도 그러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있었는데 '조금' 나아진 것 같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제법 살만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는 남들과 다를까. 의사의 한마디에 생각이 많아진다.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 또다시 말해야 하는 나라는 인간에 대한 백그라운드. 쓸데없이 상처받거나 움츠러들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파악해나갈 의사의 화법.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어느 정도 조성되어야 하는 의사와 나 사이의 신뢰관계.  맞는 정신과를 찾아봐야 하고, 찾은 다음에는 면담실 안에서 또 그런 것들을 구성해나가야 한다. 음, 스트레스 받는다. 


다음에 이 매거진에 글을 쓴다면 병원을 찾는 과정이나 정기적인 내원을 하기로 결정한 병원에 대한 글이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으로 먹어 본 우울증 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