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이 계획
첫 반항은 나름의 수확을 가져다주었다.
반항의 수확이었는지,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좀 풀어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고등학생이 된 나는 여느 인문계 고등학생이 그렇듯 11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과 새벽까지 가는 독서실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는 부모님의 적응을 도왔고 이해를 부르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여전히 안 되는 게 하나 있었다.
외박.
12시에 들어오든, 새벽 1시에 들어오든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 때문에 외박만큼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되는 거였다.
중학교때와 비하면 확실히 자유로워졌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에 늘 의문과 갈증을 품고 있었다.
'어차피 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 제재를 딱히 안 하는데, 외박이 아니라 아침 7시에 들어와 놓고 늦게 온 거라고 하면 되는 게 아닐까 '
같은 식으로 머리를 굴려대곤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자유는 싸우고 쟁취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럼 누구와?
부모님과 싸워서 쟁취해 내야 할까
앞서 말했듯이 난 착한 아이였고, 부모님의 고충을 이해하는 장녀였기에 싸우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보자면 중학교 때만큼 크게 불만 같은 건 없었다.
아니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약간 애매한... 불만?
완강하게 날을 세우며 싸우기에는 내게 주어진 자유와 내가 가진 불만은 약간 애매했다.
그럼 어쩌지?
기회는 고등학교 3학년.
면접 준비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고,
재수는 더더욱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였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당연히 전자의 대학을 가라고 할게 뻔했다.
그때 난 아주 멋있는 계획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