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목적
두 번째 파티는 같이 수업을 듣던 프랑스 친구 로한이네 집에서 열린 홈파티였다.
지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 교환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음식을 먹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프랑스 친구네 집에서 열린 파티인 만큼 조금 더 프랑스스러운(?) 파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로한이네 집은 낭트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중교통으로는 가기가 힘든 탓에 차가 있는 친구들이 기숙사까지 픽업을 와줬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이 파티는 학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 프랑스 친구들이 작별의 의미로 준비한 파티였는데, 이때쯤 나는 몸도 마음도 조금 지친 상태라 파티에 갈지 말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니까, 좋은 기회로 이곳에 왔으니 되도록 모든 것을 경험하고 가리라는 다짐은 이미 바다 건너 멀리 사라진 뒤였다.
'그리 대단한 추억거리도 아닐 텐데 굳이 힘든 몸을 이끌고 파티에 참석해야 할까?'라며 조금은 까칠한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결국 고민끝에 파티에는 가지만 조금 일찍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고, 로한이네 집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파티에 가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 그때의 나도 이해한다. 하루 종일 영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피로감, 다음 날까지 씻지도 못하고 렌즈도 뺄 수 없을 거라는 아찔한 생각들이 집에서 혼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을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한 것이다.
'후회해도 좋아. 지금은 너무 쉬고 싶어...!'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파티에서 보낸 시간의 가치는 혼자 있는 시간의 그것보다 훨씬 좋았다.
말할까 말까 고민되면 말하지 말고, 살까 말까 고민되면 사지 말고, 할까 말까 고민되면 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선택에 기로에서 이 공식 같은 말을 자주 떠올린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공식에 따라 선택했을 때 후회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이 공식의 성공률보다 더 확신을 갖게 된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한이네 집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집처럼 마당에 넓은 들판이 있었다. 시야를 방해하는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서 넓은 하늘이 더 잘 보였다. 로한이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름은 피또와 따툰이라고 했다. 피또는 식탐이 엄청나서 우리가 먹는 음식을 호시탐탐 노렸고, 따툰이는 잠이 정말 많았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하나 둘 친구들이 로한이네 집에 도착했고, 각자 가져온 맥주와 간단한 간식들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우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인 '라끌렛(Raclette)'을 먹기 위해 로한이네 집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을 있는 대로 꺼내 거실 한가운데에 배치했다.
감자가 한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솥 냄비가 테이블 한 가운데 놓였다. 이제 라끌렛 전용 그릴에 각자 원하는 종류의 치즈를 녹여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먹으면 된다고 했다. 프랑스인들이 평소에도 즐겨먹는 요리라서 마트에 가면 이 라끌렛용 치즈를 따로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추운 날씨에 동그랗게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고, 치즈가 지글지글 녹아가는 것을 보며 즐겁게 대화를 하다 보니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식사를 모두 마친 뒤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도 추고, 한쪽에서는 보드게임도 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자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왜 서양 사람들이 그렇게 파티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파티라는 것은 아마도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