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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jee May 28. 2022

매일을 여행하듯이

에필로그

여행을 하다 보면 다신 없을 순간을 직감하는 때가 있다.

반짝이는 순간들이 마찰하여 빛을 내는 그 찰나, 우리는 쉬이 오지 않을 순간임을 알아채고 그 유일함을 음미한다.

귀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아쉬움만 남을 것 같던 나의 예상과 달리, 몸과 마음이 지친 탓인지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더 컸던 이유는 주변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낭트는 다른 도시를 여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였지만 내가 머물던 때는 코로나로 인해 지역 간 이동에 제약이 있었고, 꼭 가보고 싶던 몽생미셸 여행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그러지는 바람에 돌아가는 날까지 여행에 대한 생각은 단념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이런 나의 아쉬움을 알아챘는지 프랑스 친구들은 귀국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나를 데리고 유럽에서 가장 길고도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힌다는 'La Baule (라 불)해변'으로 향했다.


라 불(La baule)해변

구름이 옅게 깔린 주말 오전.

케이팝이 흘러나오는 조그만 흰색 차에 다섯 명이 꾸깃꾸깃 몸을 접어 넣고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라불해변. 라 불의 수평선은 시선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영원히 펼쳐질 듯 길게 뻗어있었다. 해변이라는 게 다 비슷비슷할 것 같지만 저마다의 특징이 뚜렷해서 언제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당장 한국의 동해바다와 서해바다만 보더라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겨울의 라 불 해변은 회색기가 도는 파도와 모래의 색이 특히 조화로웠다.

우리는 도착해서 짐들을 옮긴 뒤에 연을 날렸다. 아주 어릴 적 학교에서 날려본 이후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연날리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쉽지 않았다. 결국 연이 나무에 걸려버리는 바람에 르디빈이 예신의 목마를 타고 연을 꺼냈어야 했다.

결국 연날리기를 포기하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준비해 온 음식들을 꺼냈다. 해변에서 피크닉은 처음이었는데 마치 유럽 고전 영화나 명화에서 볼 법한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메뉴는 역시 바게트와 치즈, 그리고 그들의 친구 소시송과 꼬니숑. 빠질 수 없는 와인까지. 단연 프랑스스러운(?) 순간이었다.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사진도 찍으며 놀다가 레나가 조개껍질을 모아 모래에 글씨를 새겨주었다.


"Suzy was here."


짧은 글에 많은 것이 담겨있는 듯하여 괜스레 울컥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다신 없을 순간을 직감하는 때가 있다. 반짝이는 순간들이 마찰하여 빛을 내는 그 찰나, 우리는 쉬이 오지 않을 순간임을 알아채고  유일함을 음미한다그리고 아마도 내게는 이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하나의 기억도 허투루 흘러 보내지 않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해변이 아름다워 서였는지, 귀국을 앞두고 마음이 말랑해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커튼처럼 구름을 관통하고 직선으로 내리쬐는 햇빛과 소금기 어린 바람 내음이 나의 긴 머리카락과 낮은 코 끝에 선명히 배어 남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머무는 매 순간이 특별할 수는 없었다. 밀려오는 긴장감과 낯선 자극을 소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바빴고, 새로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특별한 순간을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 있기 때문임을. 나는 이 사실을 먼 땅 낭트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있던 일상에서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나쳐왔을까. 낭트는 내게 매일을 여행하듯 사는 법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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