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혼자 살아요
처음 낭트에 도착해 기숙사에 도착해 짐을 옮겨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가까운 슈퍼마켓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청소 도구부터 시작해서 식기, 주방 도구, 욕실 용품 등등 필요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묵직한 장바구니를 낑낑 옮기며 여행과 타지 생활은 확연히 다름을 깨달았다. 기숙사에 도착하면 자꾸만 잊어버리고 사지 못한 물건들이 떠올라서 첫날에는 마트만 서너 번을 들락거리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기숙사에는 각 층마다 공유할 수 있는 주방이 있었지만 나는 주방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았다. 가끔 전자레인지를 이용하기 위해 가는 정도. 요리가 귀찮기도 했고, 도구도 마땅찮을뿐더러 낯선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어쩌다 타이밍이 잘못 맞으면 서로 전자레인지 타이머를 째려보며 숨 막히는 어색함을 견뎌야 했다.
나는 내 방의 냉장고 위에 단출한 나만의 주방을 마련했다.
최소한의 식기와 작은 전기 쿠커. 쿠커는 한국에서 엄마가 챙겨가라고 할 때 무겁고 자리도 많이 차지한다며 투덜댔었지만 아마 이 전기 쿠커가 없었다면 매일 레토르트 음식만 먹었을 거다. 역시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구나.
낭트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날에는 스웨덴, 독일, 핀란드, 대만 등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학교 투어를 했다. 이제 조금 이곳 생활에 적응하나 했는데, 학교 생활이 시작되니 또 다른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루 종일 영어로 대화하는 것도 진이 빠져서 학교에 다녀온 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이 피곤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한국의 대학 캠퍼스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특이한 점은 301, 503처럼 숫자로 강의실을 표시하지 않고, 강의실마다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들 이름을 붙여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특이하고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강의실을 찾아갈 때 많이 헤맸던 기억이 있다.
투어를 마치고 프랑스의 학식도 먹어봤다. 이 날의 메뉴는 마카로니 파스타. 미식의 나라 프랑스 학식은 어떨지 잔뜩 기대했는데 보기보다 더 맛이 없었다. 아마 수요일이 아니라서 그랬나 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저마다 적응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
적응의 속도가 느린 편인 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긴장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움은 늘 부담으로 다가와 스트레스를 주며 내가 어서 적응하기를 재촉하지만 막상 적응이 되면 다시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처음엔 이런 내게 의문이 생겼지만 적응하는 과정 그 자체에 익숙해지기로 마음먹으니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