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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Oct 27. 2021

코끼리가 사는 섬

쓰레기의 재해석

낭트에는 유명한 코끼리가 있다.


바로 Le Grand Éléphant. 일명 기계 코끼리이다. 80년대 문을 닫은 공장에 남은 부자재들을 이용해 만든 기계 코끼리인데, 낭트를 방문한다면 한 번쯤 꼭 보고 가야 하는 낭트의 명물 중 하나이다. (코끼리 외에도 자이언트 거미 등 기계로 만든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낭트는 18세기 무너졌던 산업을 자연스럽게 예술로 승화시켜 올바른 도시재생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아마도 기계 코끼리는 낭트의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지 않을까.


낭트에 오기 전부터 이 코끼리가 몹시 궁금했던 난 시내로 첫 외출을 하던 날 그 유명한 낭트 코끼리를 보러 낭트의 섬 '일 드 낭트(ile de Nantes)'로 향했다. 낭트 코끼리는 운행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타이밍을 잘 보고 가야 하는데 다행히도 내가 도착했을 때 마침 코끼리가 광장을 활보하고 있었다.

직접 만난 코끼리는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해서 일단 그 크기에 압도되었다. 12m의 높이를 자랑하는 낭트 코끼리는 관절 하나하나 정교하게 설계되어 움직임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섬세했는데, 긴 속눈썹이 달린 눈꺼풀도 껌뻑 껌뻑 움직이고, 귀와 코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표면은 철이 아닌 나무 목재로 마감이 되어 코끼리의 피부와 비슷한 느낌을 냈고, 거기에 울음소리까지 더해져 정말 리얼한 느낌이 들었다.


이 극사실주의 코끼리는 코로 물도 뿜고 심지어 오줌도 쌌다. (정확히는 쐈다..라는 표현이..) 앞다리 쪽에 있는 조종석에서 조종사가 사람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데 왜인지 물을 맞는 사람들보다 조종사가 더 재미있어 보였다. (같이 갔던 대만 친구 웬은 오줌을 쏘는(?) 코끼리를 보며 "Too realistic!"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같은 물이라도 이왕이면 코로 뿜는 물을 맞는 게 더 낫겠다 생각했다.


기계 코끼리에는 사람이 탑승할 수도 있었다. 실제 코끼리보다도 훨씬 거대한 코끼리의 등에 사람들이 타고있는 모습이 재밌었다. 동물들을 전시나 체험 대상으로 만들어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게 하는 관광 상품들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한 해에 이 코끼리를 보러 낭트를 방문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문을 닫은 공장에 남겨진 폐자재들을 재해석해서 멋진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통해 작은 도시이지만 자기만의 유니크함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낭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고, 나도 유행을 쫓기 보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것은 비록 낡고 초라해보일 수 있지만 새 것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능성과 매력이 존재한다. 가치를 알아보는 이에게 비로소 반짝이는 원석처럼 말이다.


낭트섬의 기계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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