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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Sep 22. 2021

거기가 어디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루아침에 지구 반대편 혈혈단신이 되고 보니 새벽에도 눈이 번쩍번쩍 떠졌다. 생소하고 낯선 도시 낭트. 그리고 그곳에서의 첫 자취.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그렇다고 오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어떻게든 적응을 해야 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을 때 흔히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을 던진다. 걱정과 불안 속에서 적응을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도 바로 이 낭트라는 도시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었다.

낭트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 지방의 한 도시로, 로마 시대에는 상업의 중심지였지만 프랑스혁명 때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은 뒤 19세기 후반 다시 경제를 회복하며 주요 산업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낭트를 일으킨 주요 사업은 식품산업조선업이었는데, 프랑스의 유명한 과자 회사인 'LU(Lefèvre-Utile)'도 이 즈음에 낭트를 기반으로 시작된 브랜드이다. (LU공장은 낭트의 유명 관광 랜드마크 중 하나이기도 하다.)

LU 비스킷은 프랑스 마트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고 인기도 많은데, 심지어 한 프랑스인 친구는 맛있는 과자를 추천해달라는 나의 부탁에 "LU에서 만든 과자는 모두 믿고 먹어도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LU 공장

LU에서 만드는 대표적인 비스킷은 바로 '작은 버터'라는 이름을 가진 '쁘띠 베르(Petit-Beurre)'인데, 버터의 풍미가 고소하면서도 담백해서 커피나 우유와 함께 먹으면 끊임없이 들어가는 마성의 간식이다. 맛도 좋지만 모양도 예뻐서 낭트의 기념품 가게에 가면 이 쁘띠 베르가 그려진 다양한 소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쁘띠 베르의 네 귀퉁이는 사계절을, 테두리 52개의 톱니 모양은 1년의 52주를, 24개의 구멍은 24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비스킷 하나에 1년이 담겨있는 셈이다.

LU의 Petit-Beurre 비스킷

낭트의 날씨는 대체로 맑고 따뜻한 편이지만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

내가 머물던 때는 겨울이었는데 한국의 겨울을 예상하고 핫팩을 잔뜩 챙겨갔으나 거의 사용하지 않을 만큼 날이 춥지 않았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낭트에 3년 만에 눈이 내려 핫팩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낭트는 하늘이 특히나 맑고 파란데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기 덕에 밤에는 별구경도 실컷 할 수 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파리에 비해 시야를 가리는 고층 빌딩도, 시끄러운 소음도 없는 여유로운 분위기의 낭트는 프랑스인들이 노년에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고.


낭트는 현대 예술의 중심지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산업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랜드마크와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지는 거리 곳곳에서는 여러 예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도시이다. 디자이너인 나는 EDNA(L'Ecole de Design Nantes Atlantique)라는 낭트의 예술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를 했는데, 수업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도시로부터 다양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선 타지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낭트의 이런 자유분방하고 예술적인 분위기에 있다.

EDNA(L'Ecole de Design Nantes Atlantique)


사람들끼리도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친밀함을 느끼듯 장소도 이야기와 역사를 알면 그곳과 더 친해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작은 도시 낭트는 가까워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도시였다. 유명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도시 낭트를 보며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작지만 예쁘게 피어있는 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유니크한 매력에 낭트를 구석구석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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