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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Sep 14. 2021

파리 말고 낭트

프롤로그

"너 파리로 유학 간다며?"


프랑스행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파리가 아니라 낭트라는 곳이고, 6개월 동안 교환학생 다녀오는 거야."


나의 대답에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아...(어딘지 모르겠지만) 몸 건강히 잘 다녀와!"

혹은

"... 낭트가 어디야?"


이런 식의 대화는 낭트를 다녀온 뒤에도 "파리에서 공부는 어땠어?", "파리지앵 다 됐네~"와 같은 형태로 나를 따라다녔지만, 이 대화에서 내가 정확히 어느 도시에 머물렀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이후에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파리가 아닌 바로 낭트이기에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과 낯선 도시에서 혼자 생활하며 생각하고 깨달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픈 마음이 있었고, 그것은 이 기록의 시작이 되었다.

2020년 여름. 방송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나는 알 수 없는 결핍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어디에서 무엇이 새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갈증이 지속되자 무작정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고, 그렇게 저지른(?) 일이 대학원 진학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 날, 학교 게시판에 한 공고가 떴다. 교환학생 모집공고였다.


매력적인 기회였지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코시국'이라 위험하기도 했거니와 회사와 학업을 병행하던 상황에서 반년의 경험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눈앞을 가렸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게시판을 들락거리길 며칠째. 일단 붙고 나서 고민하자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에 있는 학교를 고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먼저 프랑스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비록 5년 전 파리 여행은 실망스러웠지만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은 그대로였기에 낭트라는 도시가 어쩌면 그 아쉬움을 달래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예술로 유명한 도시라고 하니 기대감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 또 다른 이유는 언어였다. 고등학생 시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좋아해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었다. 매 수업시간마다 샹송을 불러주시는 선생님 밑에서 즐겁게 공부를 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모두 잊어버려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내게 프랑스 유학은 다시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스럽게도 합격소식이 들려왔다.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행은 당시 나의 일상에 가장 큰 도전이자 변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움과 변화라면 겁부터 내는 내게 먼 타지로의 유학길은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기로 결심을 한 이유는 아마 눈에 보이는 어려움을 감수할 만큼의 어떤 마음들이 모여 용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새로움에 대한 갈증 따위의 것들 말이다.


그렇게 프랑스행 티켓을 끊었다. 일단 저지르긴 했는데, 파리도 아니고 그 이름도 낯선 낭트에서 혼자 공부를 해야 한다니. 자취의 경험도, 혼자 여행을 떠나본 경험도 없던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비행기를 혼자 타는 일'부터가 걱정이었다. 낭트로 가기 위해서는 파리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경유를 해야 했는데 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블로그에 '비행기 경유하는 법'을 검색해 단계별로 화면을 캡처해두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터미널은 잘 찾아갔지만 불행히도 준비해 온 유심이 갑자기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식은땀을 줄줄 흘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숙사에 도착해 짐을 풀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설렘보다는 긴장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낯선 도시에 혼자가 된 기분은 달랐다. 불편한 감정을 물리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짐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며 일부러 분주히 하루를 보냈다.


퇴사와 대학원 입학, 프랑스 유학까지...꽤 굵직한 변화들 속에서 갖은 고민과 걱정을 이겨내고 마침내 도착한 낭트에서의 첫날밤. 낯선 쿠션감이 몸을 감싸는 좁다란 기숙사 침대에 누워 나는 한 가지 생각만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낭트에 도착한 첫날 기숙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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