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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Nov 03. 2021

낭트에 핀 수련

첫사랑을 만난다면

6년 만인가.


낭트의 미술관에도 수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설레기 시작했다. 스물두 살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프랑스 일정은 유독 짧았다. 덕분에 일말의 여유도 없이 랜드마크를 찍으며 분주히 돌아다녔어야 했는데, 바쁜 여행이 그렇듯 사진으로는 남아있지만 기억으로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 내게 파리 여행에서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겨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펠탑도 루브르도 아닌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났던 모네의 수련이었다.

낭트에 오면서 다시 수련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코로나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아 거의 포기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던 참에 낭트의 미술관에도 수련이 전시되어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첫사랑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낭트의 미술관에는 13~19세기 미술 작품과 20~21세기 현대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관 규모가 커서 전시된 작품들을 모두 관람하는데 2시간도 넘게 걸렸는데, 모네, 칸딘스키, 로뎅 등 책에서나 보던 작품들을 의외로 많이 볼 수 있어서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파리의 커다란 미술관에나 가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작품들을 낭트의 미술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박물관에 일반 관람객을 위한 관람 루트와 더불어 휠체어를 타고 관람하기 좋은 루트가 있었는데, 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설계된 디자인을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하지만 세심한 배려에 감탄하며 좋은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높은 천장과 계단, 화려한 장식들이 있는 미술관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느껴졌다. 모네의 수련은 관람을 시작하고 약 1시간 정도 뒤에 만나볼 수 있었는데 멀리에서 수련을 발견하고는 한 걸음에 달려갔다. 역시나 아름다운 그림. 처음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을 봤을 때 가로로 길게 뻗은 그림 앞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모네는 내게 그림에서 소리를 듣고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가이다. 예술은 원래도 어려웠고 앞으로도 어려울 테지만 예술이 가진 힘을 느낄 때면 나도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파리에만 피어있는줄 알았는데 낭트에도 피어있던 수련. 예상치 못해서 더욱 반가웠던 만남이었다.


낭트 미술관
5년 전 파리에서 만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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