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을 먹는데 뭔가 이상했다. 혀를 놀려 왼볼을 더듬었지만 거기는 아니다. 곧 오른쪽을 훑었다. 역시나 여기도 아니다. 서너 번 혀놀림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내 쫌 이상하다.”
밥 위에다 반찬을 올려주던 엄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머가?”
“입 안이, 내 입 안이 이상하다, 엄마.”
엄마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앉았다.
“어디 보자. 입 벌려봐라.”
“아아.”
나는 있는 힘껏 입을 벌렸다. 엄마가 갑자기 내 등을 찰싹 때렸다.
“으이그, 이 녀석아. 밥을 삼킨 다음에 입을 벌려야지!”
씨이, 벌리라고 해서 벌렸는데 때리긴 왜 때리노? 억울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혼자서도 야무지게 숟가락질을 하고 있는 여동생의 눈치가 보였다. 참아야 했다. 오물오물 씹어서 얼른 삼키고는 입을 다시 쫘악 벌렸다.
“아아.”
두 손으로 내 볼을 잡은 엄마는 입 속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상하네? 딱히 특별한 건 없는데?”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입가로 침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얼른 입을 다셔서 침을 훔치고 싶었다. 손으로부터 벗어날 생각으로 슬그머니 엉덩이를 뒤로 빼려는 그때, 엄마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하, 이거네, 이거. 앞니가 흔들흔들하네? 곧 빠지겠다.”
무엇이 그리 재미난 지 한가득 웃음이 엄마의 얼굴에 금세 들어찼다.
“뭐라꼬? 이가 빠질라 한다꼬?”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놀란 동생이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밥알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1978년, 내가 여덟 살이던 가을, 평소보다 귀가歸嫁가 늦어지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저녁 밥상에서의 일이었다.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엄마의 손에는 실타래가 들려 있었다. 그것의 용도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를 뽑으려는 것이다. 엄마가 나와 마주 앉았다.
“오빠야, 머하는데? 이빨 뽑나?”
다섯 살배기 여동생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무섭나?”
당연히, 무섭지. 하지만 용감해 보이고 싶었다. 어깨에 잔뜩 힘을 넣었다.
“무섭긴 뭐가 무섭노? 오빠야는 사내대장부 아이가!”
엄마가 대신 답했다. 맞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이까짓 이 하나 뽑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노?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구석 여포呂布의 호언장담에 불과했다. 사실은 엄마가 방에 들어올 때부터 다리가 달달 떨렸다.
엄마는 실을 동그랗게 말아서 고리를 만들었다. 이변이 없다면 저 고리는 분명 내 이빨에 걸릴 것이다. 잠시 후, 고리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아아 해라.”
크게 입을 벌렸다. 재주 좋은 엄마의 손은 고리를 단박에 걸었다. 두 번 되풀이할 깜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에 닿는 실의 감촉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나, 둘, 셋, 그다음에 엄마가 이마를 때릴 거다. 쪼매만 참아라, 알겠제?”
그냥 알았다고 하거나 고개만 끄덕였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참새 발톱만큼 작아진 간肝은 나도 모르게 비굴한 애원을 토하게 만들었다.
“어아, 아아으에 해우에요, 에에?”
“알았다. 안 아프게 해 줄게. 걱정마라.”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앞니를 감은 실이 곧 팽팽하게 당겨졌다. 동시에 엄마의 오른손이 허공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뚝 멈추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저 손은 내 이마를 향해 발사될 것이다. 침을 꼴깍 삼켰다. 별 것 아니다. 금방 끝날 것이다. 어린 여동생이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용기를 내라, 밀림의 용사여!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된 것처럼 엄마의 입술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나아아아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변이 없는 한, 곧 둘과 셋일 것이다. 둘셋이 마저 들릴 때까지 숨을 참기로 했다. 흐읍. 엄마, 꼭 둘셋이에요, 둘셋. 그 전에는 안돼요. 반드시 둘, 셋 다음에 발사하셔야 돼요. 믿어요, 엄마! 우리는 같은 편이잖아요, 그죠? 그때였다.
슈우우우우웅.
계획은 변경되었다. 둘셋을 기다릴 인내가 없었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던지, 하나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손 미사일은 미련 없이 발사되었다. 목표물은 멀리 있지 않았고, 발사체는 과녁 한복판에 적중했다. 처얼썩. 안방을 가득 채우는 폭발음이 났다. 순간, 이마 속 수뇌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 약속이 다르잖아? 둘셋 한 다음에 쏘기로 해놓고, 하나에 냉큼 발사하는 법이 세상에 어딨어?
포격당한 이마는 뒤로 크게 밀려났다. 쿵하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타격의 충격으로 인해 방바닥에 뒤통수를 찧었던 것이다. 분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다. 무조건 전쟁이다. 무엇부터 쏘아댈지 이미 결정했다. 분노에 찬 표정과 적당한 눈물까지, 모든 준비는 끝났다. 반격이다. 몸을 일으키면서 우선 소리부터 지르자. 에이씨, 엄마아아아! 왜 둘도 안 세고...
마더 테레사와 잔다르크, 그리고 나이팅게일을 환상적인 비율로 섞는다면 분명 엄마의 얼굴이 될 것이다. 한 손을 들어올린 채로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 끝에는 실이, 실의 끝에는 고리가. 그리고 고리에는 작은 이 한 개가 대롱대롱거렸다. 이 뿌리에는 빨간 피가 쥐똥만큼 묻어 있었다.
“우와아, 우리 오빠, 안 운다, 안 운다?”
동생이 손뼉을 쳤다. 반격의 순간에 관중의 성원이라니. 낭패다. 작전 변경이다. 이렇게 된 이상, 영원한 밀림의 용사라는 사실부터 우선 재확인시켜야 했다.
“오빠야가 이빨 하나 뽑았다고 울 줄 알았나? 여덟 살 아이가.”
역시나 엄마의 말이었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이를 들여다보다가, 이가 빠진 자리를 혀로 더듬었다. 역시나 뭔가 허전했다. 있던 자리를 벗어난 이를 보는 것, 그것이 좋은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참으로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고운 종이 위에 이를 놓고 정성스럽게 싼 다음, 끈으로 잘 묶었다. 그것을 들고서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옥상에 올랐다.
“진우야, 달님한테 기도해라.”
“뭐라고 해야 되노, 엄마?”
“튼튼하고 예쁜 이, 한 개만 빨리 갖다 주세요, 하믄 된다.”
두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눈을 감았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중얼중얼 빌었다. 눈을 떴다.
“이제 저 쪽으로 던지믄 된다.”
엄마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이가 들어있는 종이를 힘껏 던졌다. 슬레이트 지붕 끝 어디에선가 통 하는 소리가 났다.
“와아아, 우리 오빠, 멀리 던진다아아.”
동생이 또 손뼉을 치며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가 빠진 빈자리를 혀가 자꾸만 더듬었다. 변함없이 허전했다. 앞니 빠진 개우지라고 아이들이 놀리더라도 당분간은 꾹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잘했으니까 새 이를 곧 주시겠지?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새가 내 이빨을 물어가면 안될 텐데. 곱게 뿌려진 별들 한가운데에서 엄마 얼굴처럼 동그란 달이 참 곱게도 빛나고 있었다.
* 어설픈 아재 개그를 시도하려 하였으나 쏟아지는 비난에 힘입어 부랴부랴 글을 고쳤습니다. 원문을 먼저 읽고 댓글을 남겨주신 김준정 작가님, 풍경소리님, 꽃향기님, 글의 내용을 바꾸면서 부득이 댓글을 정리했습니다.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립니다^^
* Image by Vicki Lyn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