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이야기
가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차라리 옳았던 걸까?
나 나른한 오후, 졸음을 쫓으려고 이어폰을 고쳐 끼던 버스 안이었다. 붐비지는 않았으나 빈자리는 없었다.
다 다른 사람들처럼 창밖을 보거나 아니면 자는 척이라도 할까 싶었다. 마침 그때, 하필이면 그 순간에 그녀가 버스에 올랐다.
라 라면과 과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했고, 출산出産이 머지않아 보이는 배는 그녀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마 마음 같아선 짐이라도 얼른 받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리를 양보하면 임산부에게는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바 바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와 곧 눈이 마주쳤다.
사 사람들이 똑똑히 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너희 가족들이 누군가로부터 도움받기를 원한다면 너희들부터 먼저 양보해라. 그래서였는지 나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아주머니, 여기 앉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자 자리를 가리키며 몇 마디를 더 보탰다. 여기에 앉으시면 됩니다. 저는 곧 내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나를 향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차 차암나, 아저씨. 내가 왜 아주머닌데요? 눈이 있으면 똑바로 보세요. 이게 무슨 소린지... 내 눈은 그녀의 툭 튀어나온 배를 슬쩍 훑었다. 아주머니 맞는데... 당황스러웠다.
카 카드를 대고 뒤이어 오르던 이가 다툼에 끼어들었다. 수경아, 니 뭐하노? 아아... 인근에 있는 여고女高의 교복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타 타격감 이천 퍼센트의 주먹에 제대로 한방 맞은 듯했다. 여기 이상한 아저씨가 나더러 아줌마라고 한다 아이가. 기분 나쁘구로. 가시나야, 그건 니가 뚱뚱하니까 그렇지. 제발 살 좀 빼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더노. 뭐라꼬?
파 파란 것은 하늘만이 아니었다. 무안함과 미안함, 그리고 뻘쭘함이 내 마음을 금세 시퍼렇게 물들였다. 입을 가리고 웃는 몇몇 '무심한' 승객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하 하여튼 그놈의 오지랖은 고질병이며 불치병이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야 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자업자득이란 말이 이때다 하며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 Image by makotochocho from Pixabay
* 가나다라 시리즈를 왜 쓰냐고 묻는 분이 계셨습니다. 서사 위주의 내용을 고집하다 보니 저의 글들은 대체로 '길다'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단점을 고치기 위해 짧게 쓰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다라 시리즈는 그것의 일환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