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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Nov 03. 2022

가나다라 #4

버스 이야기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차라리 옳았던 걸까?


 나른한 오후, 졸음을 쫓으려고 이어폰을 고쳐 끼던 버스 안이었다. 붐비지는 않았으나 빈자리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창밖을 보거나 아니면 자는 척이라도 할까 싶었다. 마침 그때, 하필이면 그 순간에 그녀가 버스에 올랐다.  


 라면과 과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했고, 출산出産이 머지않아 보이는 배는 그녀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마음 같아선 짐이라도 얼른 받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리를 양보하면 임산부에게는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바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와 곧 눈이 마주쳤다.


 사람들이 똑똑히 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너희 가족들이 누군가로부터 도움받기를 원한다면 너희들부터 먼저 양보해라. 그래서였는지 나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여기 앉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자리를 가리키며 몇 마디를 더 보탰다. 여기에 앉으시면 됩니다. 저는 곧 내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나를 향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차암나, 아저씨. 내가 왜 아주머닌데요? 눈이 있으면 똑바로 보세요. 이게 무슨 소린지... 내 눈은 그녀의 툭 튀어나온 배를 슬쩍 훑었다. 아주머니 맞는데... 당황스러웠다. 


 카드를 대고 뒤이어 오르던 이가 다툼에 끼어들었다. 수경아, 니 뭐하노? 아아... 인근에 있는 여고女高의 교복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타격감 이천 퍼센트의 주먹에 제대로 한방 맞은 듯했다. 여기 이상한 아저씨가 나더러 아줌마라고 한다 아이가. 기분 나쁘구로. 가시나야, 그건 니가 뚱뚱하니까 그렇지. 제발 살 좀 빼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더노. 뭐라꼬?


 파란 것은 하늘만이 아니었다. 무안함과 미안함, 그리고 뻘쭘함이 내 마음을 금세 시퍼렇게 물들였다. 입을 가리고 웃는 몇몇 '무심한' 승객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하여튼 그놈의 오지랖은 고질병이며 불치병이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야 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자업자득이란 말이 이때다 하며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Image by makotochocho from Pixabay

 

* 가나다라 시리즈를 왜 쓰냐고 묻는 분이 계셨습니다. 서사 위주의 내용을 고집하다 보니 저의 글들은 대체로 '길다'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단점을 고치기 위해 짧게 쓰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다라 시리즈는 그것의 일환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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