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한 짝
“장갑을 길에다 흘렸나봐.”
아침 수영을 다녀온 딸이 말했다. 짝을 잃은 나머지 장갑이 가방 안에 축 쳐져있다. 며칠 전 산책길에 누군가 잃어버린 파란 장갑 하나가 나뭇가지 위에 외롭게 걸려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게 주운 사람의 따듯한 손길이 있으면 좋을 텐데 차가 밟고 지나가기라도 했다면 졸지에 쓰레기가 되어버렸을 잃어버린 장박 한 짝에 가슴 한켠이 뭉클했다.
잃어버리기 쉬운 물건 중 하나가 장갑이다. 내 작은 서랍에도 오래 전부터 짝 없는 장갑 하나가 있다. 운전할 때 장갑을 무릎에 놨다가 차에서 내리면서 바닥에 떨어뜨렸는지 차 바닥에 한 짝만 있었다. 다른 하나는 차 밖에 떨어졌다고 여겼다. 아들이 선물로 준 데다 편하게 잘 맞아서 좋아하던 장갑이어서 안타까웠지만, 한 짝의 쓸모없음은 어쩔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잔뜩 묻은 장갑과 이별의 악수를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차 시트 아래서 없어진 줄 알았던 한 짝을 발견했다. 버리는 데 너무 성급했음을 자책하며 그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두고 있다. 스타킹처럼 쉽게 올이 튀는 양말은 한 번에 여러 켤레를 사서 짝을 바꿔서 신을 수 있지만 겨울 장갑은 짝이 맞을 때만 제대로다.
세상엔 짝을 이루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장갑처럼 짝이 없다고 소용없는 건 아니다. 40대에 아빠를 여읜 우리 엄마가 그렇다. 40년 가가운 세월 동안 혼자 우리 4남매를 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도 보내주셨다.
엄마는 요즘 자주 말씀하신다.
“자식도 짝 맞춰주면 손님이 되고 남는 건 짝뿐이야. 서로 위하면서 잘들 살아”
손님이라니, 자식 입장에서 서운한 말이지만 따로 사는 내가 옛날의 가족이 아님을 인정하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엄마처럼 가슴 한 쪽에 뚫어진 썰렁한 구멍을 쓰다듬으며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작년에 남편을 떠나보낸 친구는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아직 슬픔의 상자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버거움이 체력마저 고갈시켜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그녀의 시간들이 머지않아 현실로 스며들 거라고 믿는다. 오래도록 짝과 손을 맞잡고 시간을 이어가면 좋겠지만 우리는 혼자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엮을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