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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5호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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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Oct 11. 2021

015B 15호 여는 글 및 목차

편집장 빙봉, 아리

또 다른 코로나 학기의 시작입니다. 백신 접종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확진자는 무서운 기세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자꾸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이번 학기 역시 집 밖으로 나가기는 요원해 보입니다. 2020년까지겠거니 미뤄왔던 게 2021년이 되었고, 이젠 그 끝이 어딘지 까마득합니다. 끝이라는 게 무엇인지, 완전한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와중에, 거리두기 단계는 자꾸만 몸집을 부풀려 우리의 만남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연희관 공일오비 15호는 열아홉 번의 비대면 회의와 화면 너머로 주고받은 원고지 뭉치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단 한 번도 대면하지 않고 만들어내는 교지라니, 듣기만 해도 간편합니다. 동시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래도 공일오비는 여전히 우리가 마음 깊이 품어 왔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가치들을 잊지 않으려 애씁니다. 나는 어떤 이와, 어떤 것과 연결된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나의 일상을 말랑하게 해왔던 것들을 낯설게 보기 위해 눈을 깜박여 봅니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되짚으며 ‘나’를 되돌아보는 것 역시 잊지 않습니다.


첫 번째 카테고리 ‘헤아리기’에서는 나와 얽혀있는 복잡하고 소중한 관계들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수많은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당연한지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의존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것은 퓨입니다. 퓨는 두 권의 책에서 발견한 상호의존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의존과 연대가 우리와 그리 멀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임을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아리와 서로는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투쟁 소식을 듣고 연대의 목소리를 내어봅니다. 지난 8월 공일오비는 학내 언론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여기서 나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강사들의 투쟁에서 우리가 함께 질문해야 하는 것들을 톺아봅니다. 마지막 글인 ‘동물 動物’에선 새로운 시도가 돋보입니다. 연세편집위원회인 『연세』와 함께 지면을 꾸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 발간된 연세지 129호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공동기획을 공일오비 15호에서 이어받아, 네 명의 위원들이 인간 동물로서 비(非)-인간 동물과의 연결을 다채롭게 상상해봅니다.


두 번째 카테고리, ‘헤집기’에서는 내 주변에서 안온하게 존재하던 것들과 큰 고민 없이 쏟아지던 말들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그 속을 파헤쳐봅니다. 아리는 “귀여운 게 최고”라는 말을 의심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아동과 동물을 끝없이 귀여워하려는 시선이 은밀하게 감추어버리는 위계와 차별을 낱낱이 살펴봅니다. 익명의 글쓴이는 2021년을 강타했고 현재까지 미미한 여파를 이어오고 있는 ‘손가락 논란’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해당 논란의 기저를 유쾌한 태도로 훑어냅니다. 마지막으로 곤지는 항상 우리 곁을 맴돌며 끊임없이 낭만화되는 ‘사랑’이 얼마나 좁은 상상의 폭 안에서, 주어진 각본대로 연출되었던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영화 ‘더 랍스터’와 소설 ‘사랑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카테고리인 ‘헤엄치기’에 대해 말해볼까요. ‘헤엄치기’의 글들은 막연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눈을 반짝이는 글들입니다. 힘을 빼고 이리저리 유영하는 자유로운 모습이 그득하게 담겨있습니다. 먼저 물결과 빙봉은 한데 모여 BL/RPS를 좋아해 왔던 ‘우리’에 대해 고백합니다. 자신의 내밀하고 사적인 ‘덕질’이 어떠한 정치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은연중 내포하는 이 좌담은 비엘 혹은 알페스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넌지시 가리킵니다. 서로는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경험을 ‘부캐’라는 사회문화적 키워드에 대입하여 풀어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글로 완성합니다. 만타는 자신을 ‘퀴어 무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홍칼리를 만나 그와의 대화를 빼곡하게 기록했습니다. 인터뷰어인 자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만타는 퀴어 무당 홍칼리가 섹슈얼리티, 퀴어, 비거니즘 등의 굵직한 키워드들과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하고 이를 오롯이 담아냅니다. ‘헤엄치기’의 마지막 글이자 연희관 공일오비 15호를 닫아주는 퓨의 ‘빛 속을 걷는 법’은 ‘미래’라는 막연한 낱말을 적극 사용하여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와 소설 <미래 산책 연습>을 비평합니다. 이를 통해 ‘미래를 기대한다’는, 꽤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실상은 무진장 어려운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봅니다.


이번 15호의 표지에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손과 발이 등장합니다. 로봇, 노인, 아이, 말, 고양이가 내민 손과 발 사이에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실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습니다. 이들 모두의 손과 발이 직접 맞닿을 수는 없겠지만, 길게 늘어진 실들로 인해 이들은 모두 연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비록 그중에는 이따금 엉키고 끊어지는 실도 있지만 말입니다. 교차하는 실들 위에 살포시 놓인 쪽지 속 문구는 지난 학기 세미나에서 함께 읽은 일라이 클레어의 책, <망명과 자긍심>에서 발췌했습니다. <망명과 자긍심>은 저자 일라이 클레어가 자신의 몸과 장애,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면서 “웃고 울고 이야기하자. 도둑맞은 몸과 더 이상은 여기 없는 몸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나누자.(Laugh and cry and tell stories. Sad stories about bodies stolen, bodies no longer here. Bold harsh stories about reclaiming our bodies and changing the world, pp. 278-279)”고 제안하는 글이었습니다. 이것이 15호의 편집위원들이 함께 그려 본 연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15호에서 저희는, 실제 곁에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복잡하고 성긴 가닥으로 조금씩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건넨 이야기의 가닥을 집어들게 될 독자 분들도 15호를 통해 더 많은 것들과 연결되고 있음을 느끼고, 더 많은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고민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하다는 말도 이제는 지겹지만, 지난하다는 말만큼 우리가 건너온 시간을 표현하기에 꼭 들어맞는 단어가 또 있을까요. 그 지난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무럭무럭 자라난 글들이 독자 분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이 되어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쾌청한 가을바람과 옅은 코스모스 향기 속에서, 연희관 공일오비 15호를 시작합니다.




편집장 빙봉 (joliebin98@naver.com), 아리 (ououpp@naver.com)




[015B 15호 목차]


헤아리기

매듭의 상상력 _ 퓨

한국어학당 투쟁 들여다보기 _ 서로, 아리

동물 動物 _ 빙봉, 물결, 곤지, 퓨


헤집기

귀여운 것은 정말 최고인가요? _ 아리

엄지와 검지의 사이를 좁히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_ 익명의 글쓴이

우리 부지런히 사랑합시다 _ 곤지


헤엄치기

We Love Boy's Love _ 물결, 빙봉

n명의 존재 _ 서로

퀴어, 무당, काली (Kālī) _ 만타

빛 속을 걷는 법 _ 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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