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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5호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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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Oct 14. 2021

동물 動物: 제목 없음

[헤아리기] 편집위원 빙봉

1.

어렸을 때, 영애는 마당에서 개를 키웠다. 동네 어디서 새끼 강아지가 생겼다며 영애네 집에 턱 맡겼던 것 같은데, 영애의 아버지는 그 사실을 꽤 못마땅해했다. 다섯 식구 살기도 바쁜데 군식구 하나 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강아지의 밥값은 영애와 영애의 오빠의 몇 푼 없는 용돈으로 충당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올 때면 대문을 뻥 차고 들어와 자고 있던 어머니를 한참 못살게 굴다가 오빠와 영애의 얼굴을 지분대며 불쾌한 말을 해대고, 성미를 이기지 못한 날에는 개에게 다가가 너를 보신탕집에 팔아넘기겠다느니, 데리고 와서 인생이 꼬였다느니 그런 허튼 말을 한참이나 목청껏 질러댔다. 개는 소리를 알아듣는 것처럼 축 늘어져 아버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 개는 듣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영애는 두려움에 떨었다. 동네 어귀에서 새끼 강아지를 턱 받아온 것이 다름 아닌 영애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새끼 강아지를 어느 날 아버지가 버려버리면 어떻게 하지? 어린 영애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톱을 물어뜯었지만, 당시 영애는 궁극적인 불안 하나를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강아지가 버림받는 것은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가 분명했으나, 당시 영애를 가장 두렵게 했던 것은 아버지가 싫어하는 강아지를 저가 사랑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어느 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개는 어느 날, 이름 모를 사람에게 넘겨졌다. 영애와 오빠가 학교를 다녀왔을 때, 개를 묶고 있던 줄은 이미 헐거워져 있었다. 그날 밤, 보신탕집에만은 팔려 가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영애와 오빠는 손을 꼭 끌어 잡고 한참을 울었다. 강아지의 얼굴은 이따금 영애의 삶에 고개를 디밀었다. 그 애의 얼굴엔 부채감과 죄책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영애가 마흔 정도 되었을 때, 영애는 그 기억 속 그 얼굴을 더듬어보다가 문득, 영원히 그 애의 얼굴을 잊을 길은 없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어느 날,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딸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낯선 시골길을 응시하며 저 강아지는 참 불쌍하다. 저렇게 항상 매여 있네, 라고 했을 때, 영애는 필사적으로 그 목소리를 모른 척해야 했다.      


어딘가에 묶여 있는 강아지들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2.

아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여러 동물을 집에 데리고 왔다. ‘키운다’는 명목이었다. 이상하게 동물들은 아들을 잘 따랐다. 딸은 못 본 척하는 동물들이 아들에게는 기꺼이 몸을 다가가 몸을 비비적댔다. 아들은 그런 애들을 모조리 집에 데려왔다.     


아주 어렸을 땐 병아리와 장수풍뎅이를 키웠고, 조금 커서는 고슴도치, 이구아나, 토끼를 키웠다. 아들은 강아지도 ‘갖고’ 싶다고 했지만 약간의 결벽증과 강박 장애가 있는 영애가 결사코 반대해 키우는 것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아들은 동물이 좋다는 이유로 별의별 동물을 집에 들이겠다 선언했고 남편은 늘 좋은 아빠의 얼굴을 하고 아들이 키우고 싶다는 동물을 집에 들였다. 남편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시간대까지 회사에 있었고, 아들은 학교며 학원이며 이곳저곳을 다녀오느라 남편보다 더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애는 자신의 호오와 별개인 동물들과 늘 집에 남겨졌다. 낯선 생물들이 저의 집에서 생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영애는 자신의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졌다. 그것은 결코 바퀴벌레나 모기 같은 ‘해충’으로 인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는 다른 결의 무언가였다. 자신의 동의 없이 데려온 동물들, 사랑하지 않는 동물들이 집 한구석에서 저들만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영애는 묘한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혹은 유리 안에 담긴 동물들은 영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영애는 그것에서 일종의 기시감을 느끼곤 했다.          



3.

그 당시 영애는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과 공생하고 있었다. 영애의 생활 자체가 영애를 뒤처지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영애를 그 누구보다도 뒤처지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영애는 자신이 뒤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앞으로는커녕 뒤로 달리는 기분이라고. 남편은 직장에서 신임을 쌓으며 이상적인 정년 은퇴의 단계로 도약하고 있었고, 딸은 내로라할 대학교에 들어가 자신만의 무언가를 쌓아 달려가고 있었다. 공부에 특별한 재능이 없어 보이는 아들도, 이젠 품 안의 아이가 아니었다. 주말마다 집 밖을 나가 친구들을 만나는 통에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나는 이렇게 방 안에 갇혀서 끊임없는 집안일을 하고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스펙이랄 것도 없는 이 상태로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는데 너희들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영애는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새벽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슴 속 뜨거운 활화산이 시시각각 폭발하는 것 같았다.     


“불면이 너무 심해서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침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요.”

“흔한 갱년기 증세예요. 약 드시면 더 나아질 거예요. 다른 증상은 없으세요?”


새벽에 불면이 너무 심하다고 말하니, 대학병원 부인과의 남의사는 별것 아니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십 대 여성들은 갱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의사는 이름이 어려운 여성 호르몬을 들먹이며 영애의 혼을 쏙 빼놓다가 오 분 만에 약 몇 개를 처방해줬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안다고. 영애는 냉철한 얼굴을 한 젊은 남자 의사에게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진료실에서 터덜터덜 나오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느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 견디지 못하고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어 앉아있는데, 남편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한 이불을 덮고 이토록 오래 같이 누워있었던 남성에게 영애는 비로소 질문할 것이 떠오른다. 같이 산다는 건 사랑하는 거야? 같이 살면서 밥을 먹는 서로의 몸을 보고 이따금 서로를 쓰다듬어주는 거면, 그걸로 사랑은 완성되는 거냐고.


그런데 영애는 지금까지 한 집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밥 먹는 얼굴을 응시하고 서로를 안아주었던 시간들에 사랑이 없었다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이내 그 질문을 단념했다. 저만 이렇게 제자리에서, 이 집에서 맴돌고 있는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면 자신이 너무 가여울 것 같아서, 영애는 애써 그것들을 사랑이라고 삼켰다. 그런데도 가슴에선 계속해서 폭죽이 터졌다. 펑, 펑. 펑!          



4.

딸과 아들이 데리고 온 이구아나, 고슴도치, 토끼, 병아리를 모두 지나고 나서야 영애는 품에 고양이를 안게 됐다. 고양이를 ‘사게’ 된 건 동물병원과 펫샵을 겸하고 있던 한 커다란 건물에서였다. 영애의 생일이었고 그날은 눈이 왔다. 생일 선물이랍시고 영애가 원하지 않는 선물을 사러 가느라 아이들과 남편은 분주해 보였다. 영애는 그곳에 가서 돈을 주고 고양이를 사 온 지 일 년 뒤에야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위인지를 알 수 있었다. 펫샵과 동물 분양의 잔혹함을 알지 못하던 순진하고 멍청했던 영애는 분주한 가족들 사이에서 얼굴 모를 고양이 하나를 상상하며 그 애의 적응을 일찌감치 걱정하고 있었다.      


눈이 오는 날, 동물들은 펫샵의 창밖을 내다보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중 짙은 회색빛의 털을 한 고양이 하나를 딸이 손가락으로 턱 가리키자 펫샵 직원은 자물쇠가 걸린 그 문을 열어 그 자그마한 고양이를 딸의 품에 넘겼다. 딸과 아들의 스웨터 실 하나하나를 발톱으로 붙잡고 고양이는 와들와들 떨며 착 달라붙어 있었다.     

“비싼 고양이예요.”

“...털이 푸석푸석하네요.”     


짙은 회색빛의 털은 푸석푸석했다. 비싼 품종의 고양이라는 말을 영애는 귓등으로 흘리며 고양이의 모질을 살폈다. 그리고 오들거리는 그 몸에 손가락을 가만히 댔다. 태어난 지 이 주가량 됐다는 고양이는 영애의 팔뚝만 했다. 고양이는 턱이나 볼, 미간 사이를 문질러주면 좋아해요. 직원의 말을 듣자마자 딸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고양이의 조막만 한 턱, 볼 그리고 미간을 슬슬 만졌다. 아들의 스웨터에 발톱을 박아넣고 떨어지려 하지 않는 가벼운 생물체를 바라보면서 직원과 딸, 아들은 연신 난처한 기색으로 영애의 눈치를 살폈다. 영애가 고개를 끄덕이면 모든 게 ‘해결’될 문제였다. 그래, 얘로 하자. 영애가 말하자마자 기쁜 기색이 딸과 아들의 얼굴에 뒤덮였다. 남편이 고양이의 ‘값’을 치르는 사이 딸과 아들은 동물원에 온 듯 다른 유리 벽 속 동물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녔고, 직원은 고양이를 담아갈 케이지를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케이지에 담긴 고양이의 얼굴은…


앙상했다.          



5.

아기 고양이의 이름은 ‘루’로 하기로 했다. ‘루’는 영애가 이전에 봤던 영화에서 발견한, 예뻐서 아껴두었던 프랑스 여자아이의 이름이었다. 루, 하고 짧은 울림소리의 단어를 발음할 때면 영애는 일종의 자아도취를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라는 낯설지만 멋질 것이 분명한 제1세계와 앙증맞고 귀여운 고양이, 그리고 안락한 집. 나비, 예삐처럼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까지 영애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루는 걱정이 무색하게 영애의 집에서 매우 건강하게 잘 지냈으며, 이따금 영애를 비롯한 가족 모두의 무릎에 얼굴을 베고 잠이 들었다.     

루의 이름은 분명 영애가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애는 루와 지내는 것이 어색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생일 ‘선물’이랍시고 사 온 고양이의 존재가 못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사뿐사뿐 걷는다고 해도 고양이의 기척은 어디서든 느껴졌고, 아무리 단모(短毛)종이라고 해도 털은 빠졌다. 앙상하게 말라 털을 흘려대는 작은 생물체에 영애는 불쾌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그렇게까지 ‘환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고양이는 울음소리를 낼 줄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아무리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지 않는다지만 루는 그 정도가 심했다. 눈이 쌓인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아주 조심성 있게 걸어 다녔고 아주 불쾌하거나 아주 불편하거나 아주 슬프거나 아주 기쁠 때만 소리 내 울음소리를 냈다. 그래서,     


“루는 참 ‘인형’ 같지 않아?”     


하는 소리를 식구에게서 듣곤 했다. 인형 같다는 말이 어째 영애는 칭찬처럼 느껴지지 않아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얼굴로 오도카니 앉아 그 단어를 곱씹었다. 울음소리를 낼 줄 모르고 눈치를 보는 그 앙상한 생명체는 정말이지 인형 같았다. 그래서 영애는 어쩐지 그 애를 똑바로 바라볼 때면 이유 모를 기시감과 불쾌감에 몸서리가 쳐지곤 했다.     


영애는 늘 아들과 딸이, 이따금 남편이 고양이 곁에 둘러앉아 그것을 쓰다듬는 광경을 응시했다. 고양이는 볼과 미간, 턱 부근을 만져주어야 한다는 펫샵 직원의 조언에 따라, 집안 식구들은 그 자그마한 고양이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쓰다듬곤 했다. 주로 그의 볼, 턱, 이마와 미간을 쓰다듬으면 고양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갸릉갸릉 하는 소리를 냈다. 그건 일종의 이윤 창출을 위한 기계적 행위였다. 고양이가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은 나 자신의, 그리고 그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무작정 미간과 이마와 볼을 쓰다듬는 행위에 불과했다. ‘주인’으로서 그저 고양이의 갸릉갸릉 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 동기의 전부였다. 고양이의 볼 어귀를 만져주면 고양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낯선 소리를 냈고, 가족들은 고양이가 가져둔 안락함에 젖어 그 행위를 반복했다. 그뿐이었다. 그들은 고양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고양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의 이곳저곳을 쓰다듬으며 그 애가 애정에 도취하여 내는 울음소리를 감상하곤 했다.         


 

6.

“우리가 고양이를 사 왔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


어느 날, 딸은 고양이를 펫샵에서 사 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일인지 들었다며 영애를 붙잡고 열변을 토했다. 고양이를 ‘구매’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영애는 딸이 해주는,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무자비한 이미지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를 끊임없이 낳아야 하는 엄마 고양이. 그 엄마 고양이는 어쩌면 발이 잘려 도망치지 못한 채 평생 좁디좁은 케이지에 묶여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지. 펫샵 유리문 바깥으로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던 루의 앙상하고 슬픈 얼굴과 낯선 사람의 털실에 발톱을 박아넣던 무기력한 모습들을 떠올리며 영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루는 때때로 이불 위에서 이불 끄트머리를 물고 발로 꾹꾹 이불을 밟곤 했다. 딸은 그것이 아기 고양이가 엄마의 젖을 짜는 행위라며, 엄마의 젖을 한 번도 빨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며 불쌍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영애는 그럴 때마다 빤히 고양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야? 정말 그런 거니? 고양이는 대답 없이 이불을 씹으며 이불 꾹꾹이에 전념하고 있었다.


영애는 루의 얼굴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영애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껏 루의 얼굴을 바라본 적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컹하고 털을 뿜어내는 그 몸통이 그 애를 바라볼 때 응시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떠난 적막한 오전, 나와 루만 남겨져 오도카니 집을 지켜야 할 때 영애는 유심히 루의 동선을 눈으로 훑는 일에 매료됐다. 그건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무언가를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지만 때때로 그 둘은 눈을 마주치고 너는 지금 이 시각 안녕하니?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좋으니? 따위의 당연하고 낯선 질문을, 반려라면 건네었어야 할 물음들을 건넸다.     


어느 날, TV에선 호랑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한창 상영 중이었는데, 그곳에선 너른 대지를 걷는 호랑이가 온 화면 가득 등장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내레이터는 호랑이가 고양잇과 동물이기 때문에 서로를 핥아주어 사랑을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고양잇과 동물은 촘촘한 바늘이 돋친 혀로 자신의 털을 핥음으로써 자연스레 털을 솎아내지만, 스스로 핥을 수 없어 솎아내기가 어려운 얼굴 근처의 털은 다른 동물에 의존해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과 목, 미간과 볼을 핥아줌으로써 서로가 품어왔던 사랑을 전해주고 받아든다고.      


그 순간 영애는 벌떡 일어나 서랍 속 오랫동안 처박아두었던 고양이 빗을 꺼냈다. 털이 너무 많이 빠진다며, 털이 빠지기 전에 우리가 빗질해주자고 남편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빗이었는데, 형광 노란색과 검은색의 고무가 뒤덮여있고 뭉뚝하고 무서운 쇳덩어리가 이리저리 튀어나온 그 빗을 보고 영애는 질색하며 빗을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더랬다. 그런 공구 같은 것을 ‘귀엽고 작은’ 고양이에게 쓰는 것은 나쁜 주인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영애는 이제 그 투박하게 생긴 빗을 들어 루의 얼굴 부근에 살짝 가져다 댄다. 고양이를 집안에 들인 것은 다름 아닌 우리면서, 우리는 고양이의 털을 혐오한다는 이유로 비싼 돈을 주고 이걸 인터넷에서 배송시켰다. 그러고는 몇 번 빗질해보더니 남편은 실망했다. 어차피 털이 많이 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영애는 귀엽고 인형 같은, 그래서 나약하고 열등한 고양이에게 그것을 가져다 대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어딘가에 쑤셔 넣었던 그 도구를 집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루는 털에 쇳덩어리 빗을 대자마자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자신이 빗질을 원하는 곳을 알아서 빗에 비벼 댔다. 영애는 무거운 빗을 들어 천천히 고양이의 볼과 미간, 턱과 목을 쓱쓱 빗어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영애는 밀려오는 낯선 감정에 말문이 막혀 묵직한 빗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오도카니 앉아있어야 했다.     


집 안에 부유하는 고양이 털을 조금이라도 덜 빠지게 하기 위해서, 심미적으로 예뻐 보이는 고양이를 갖기 위해서, 고양이의 만족스러운 음성을 듣기 위해서 영애는 빗을 들지 않았음에도 고양이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본다. 자신이 정리하지 못했던 털들을 이제야 말끔히 정리한 루는 영애의 허벅지에 작은 몸통을 비비적댄다. 평소 같았다면 ‘귀엽다’고 생각했을 그 행동들에 영애는 가슴이 미어짐을 느낀다. 우리의, 인간의 신호는 결코 사랑이라는 애틋함을 담아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루는 우리의 비뚠 신호를 애정으로, 사랑으로 곡해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다리에, 허벅지에, 팔뚝에 머리를 비벼댔다. 우린 그걸 ‘애교’‘아양’이라고 멋대로 불러댔다.     


통신 불량이었던 그 신호들을 생각하다가 영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루의 완전한, 하나짜리 삶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펫샵에 당도하기 전 루가 겪었던 그 모든 사소한 여정들을. 지금까지는 늘 조각나서 그저 루라는 ‘물건’을 이루는 특질에 불과했던 무언가를 꿰어서 하나의 삶을 상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순간에 영애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통감하며 가슴을 꿰뚫는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루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털 빗질이 끝나자마자 영애의 무릎 위에 천천히 누웠다. 영애는 무거운 빗을 들어 루의 털을 이리저리 빗어대면서 정말이지 처음으로, 내가 없었던 루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그 순간 영애는 언어가 매개하지 않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같이 사는 것만이 사랑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도.


그날부터 영애는 보드라운 손가락 끝 대신 길게 기른 자신의 손톱으로 고양이의 턱과 볼, 목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고양이는 귀엽고 작고 나약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늘 보드라운 손가락으로만 고양이를 매만졌다. 그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얕잡아 본 거였다. 이제 영애는 자기방어로 가득했던 자신의 인간성을 이렇게 비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지금껏 루를 아낀 게 아니라 얕잡아 본 거라고. 그 사고가 가능해진 순간부터 영애는 뾰족한 손톱으로 천천히 긁어내듯 루의 털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손톱에 걸리는 털들을 한 번에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었다. 털이 덜 빠졌으면 좋겠다, 예쁜 털을 가진 고양이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 대신 영애는 천천히 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인간의 언어로 속삭였다.      


천천히,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널 얼마나 아끼는지, 네가 나의 사랑을 얼마나 충분히 느꼈으면 좋겠는지를 속삭이는 행위였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걸로 충분하니? 내가, 우리가 빼앗아버린, 다른 고양이들로부터의 애정이 내 손톱 몇 개로 만족이 되니? 그들의 혓바닥에 나 있을 바늘과 돌기들은 젤네일을 바른 내 단단한 손톱과 닮았니? 내가 쓰다듬는 건, 너도 얼굴이 가물가물할 너희 엄마가 핥아주는 것과 닮아있니?      


루의 털을 자신의 기다란 손톱으로 매만지는 일은 그 애의 인생을 더듬어 확인하는 일과 같았다. 펫샵에서 데려온 생후 2개월짜리 아기 고양이. 그리고 그 애의 엄마는 펫샵 분양을 위한 고양이 공장에 묶여 죽도록 출산했을 것이고. 다른 고양이를 만나거나 낯선 이를 만나면 오들오들 떨어 마음을 미어지게 하는 루. 메마르고 짙은 회색 빛깔을 한 그 작은 생명체의 조각난 삶을 얼기설기 엮어 가늠해보는 일과도 같았다. 그 애의 출생부터 그 애가 맺어왔던 아주 가냘프고 실낱같은 관계들 그 망 한가운데에 놓인 고양이를 생각하면 영애는 마음이 아팠다. 그건 가여움과 같은 연민도 아니었고 동질감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에게 미안하다고 속삭이는 일이었다. 모두가 떠나고 오도카니 앉아서 영애는 이따금 낮잠을 자는 루의 털을 손톱으로 비비며 미안하다고 되뇌곤 했다. 부끄럽지만 그것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7.

루는 그러고 나서 오 년을 더 살다 죽었다. 길에서 데려온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다가 별안간 죽어버렸다. 영애가 유기묘 보호센터에서 봉사를 시작한 지 오 년째가 되는 해였다. 인간보다는 반드시 짧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의 수명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8년 남짓한 루의 삶은 명백한 요절이었다. 모두가 루의 죽음의 이유를 쉬쉬했지만, 영애는 생각했다. 그건 그 애가 태어나자마자 보호자에게서 떨어져 유리 상자에 갇혔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쇠약해진 사회성이 나머지 두 마리 고양이와의 관계 맺음을 방해했고, 결국 그것이 그 애의 요절을 촉발했다고. 집 안에 어슬렁거리는 몸집 큰 고양이들에게 늘상 겁을 먹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루를 생각하면 영애는 아직도 난데없이 코를 만져야 했다. 그래야만 어색하지 않게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영애는 이제 루의 이름을 잘 발음하지 않는다. 저의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루의 털을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느껴가면서 쓰다듬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애는 루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를 포기했다. 그나마 올라왔던 인스타그램 사진들도 모조리 정리했다. 더 이상 눈요기로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더 이상 멋진 주인으로서의 나를, 영애를 표상하는 내러티브 속 객체로 존재해서도 안 되기에. 대신 영애는 고작 8년 남짓 살다간 조그만 생명체의 삶을 곰곰이 따져보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디에서 끊어졌을지. 내가 모르던 시간에 네가 맺었던 관계들은 어떠했고, 우리 집에 와 다른 고양이들과 맺은 관계들은 어떠했는지. 몸집 큰 고양이들과의 관계가 네게 일말의 즐거움을 가져다준 게 맞는지. 혹은 다른 고양이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우리의 탐욕이 결국 너를 죽여버렸던 건지. 나를 행복하게 했던 너와의 관계가 너에게 사랑은 맞았는지. 대답 없는 질문들 속에서 영애는 자신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용기 내 루를 조금은 더 길게 보았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발음한다.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내 잘못이 있기 전 그의 삶을 상상해보기에서 사랑이 출발한다고 영애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변명이 따라붙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조차도 잘 안되는 것 같아 영애는 늘 루 생각을 하면 코 주변을 아무렇게나 매만지게 된다.


영애가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강아지의 얼굴을 잊지 않는 것처럼, 영애는 앞으로도 손톱을 세워 루의 얼굴을 매만졌던 때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영애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 마주치는 유기묘 보호센터 속 고양이들의 털을 쓰다듬으며 유리창 속에 무기력하게 갇혀있던 루와 길거리에서 철창으로 거처를 옮긴 이 무수한 고양이들과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쇠막대기에 맞는 고양이들과, 마지막으론 너른 들판을 걸어 다니던 호랑이들을 교차하여 떠올린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저를 비롯한 이 모든 인간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야만 폭력의 굴레가 사라질 거라는 의미 없고 나약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영애는 삶에서 루와의 관계를 맺은 것만으로도 적어도 저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일찌감치 인정하게 됐다. 나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너의 삶을 상상하는 것, 나아가 너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이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 영애는 그것만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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