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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6호 07화

최악 말고 최저 말고 그냥, 집

[끝 없이 흘러가는] 편집위원 모자

by 연희관 공일오비

18평, 투룸, 널찍한 욕실

졸업이 가까워졌다. 학교에 막 발을 디디던 새내기 시절부터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다. 왜냐고? 부모님이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매달 든든하게 들어오던 용돈과 내 몸 하나 뉘일 방 월세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를 오로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부모님 잘 만난 덕으로 지원만 받으며 살아온 나는 숨만 쉬어도 백만원은 우습게 깨지는 서울살이의 매서움을 처음으로 무겁게 인식하는 중이다. 그러니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정기적인 수입원이 없는 불안한 현실과는 별개로, 철없는 나는 종종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살고 싶은 드림하우스를 그려보곤 한다. 우선 전용면적은 18평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살 예정이니 조금만 넓어도 청소하기 어려울 테니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에서 소소하게 살림을 꾸려나가고 싶다. 방은 최소한 두 개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서재 겸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꾸며놓고, 하나는 아늑하게 침실로 쓸 수 있도록. 나는 악기를 좋아하니 서재의 한 쪽 벽면은 악기를 진열할 수 있도록 진열장을 사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욕실은 샤워부스가 갖춰진 널찍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전에 자취할 때 욕실이 너무 작아서 샤워할 때마다 벽에 몸이 닿아 불편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특히나 중요하다.



그래도 서울에서 살고 싶어

그러나 18평, 투룸, 널찍한 욕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며 서울에 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졸업 이후에도 서울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드림하우스는 의미가 없어졌다. 정말 꿈처럼 아득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서울 집값이 워낙 비싸지 않은가. 2021년 기준 대전의 18평 이하 소형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2억 정도에 그친 반면 서울시의 경우 같은 평수가 6억 이상을 호가했다.1)2) 지역만 다른데 무려 4억이나 차이 나다니! 게다가 서울 선호현상과 집값 상승률을 생각하면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 꿈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볼 시간이다.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은 전국에서 청년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서울에서 살기를 원하고, 실제로 그러고 있다. 대부분의 인적/물적자원이 이미 서울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순환논증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기존 인프라가 사람을 끌어들이고, 사람이 모여 있으니 인프라에 더 투자하는 구조다. 흔히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로 서열화되는 대학 전부가 서울에 위치하고, 지역 일자리 질 지수 상위 시군구 39개 중 19개가 서울의 자치구이며, 전국 문화기반시설(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의 약 14%가 서울에 있다.3)4) 서울 출신이 아닌 청년들에게는 인프라가 열악한 고향에 계속 남아있느니 돈을 좀 더 투자할지언정 모든 게 갖춰진 서울로 이주하는 게 미래를 위한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서울로 가라!’고 부추기는 수많은 사람 중 누구도 서울살이의 어려움을 예고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살이를 택한 사람들은 대학, 롯데월드, 양질의 일자리 따위로 낭만화된 서울을 선택함과 동시에 고향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생활물가와 월세를 마주하게 된다. 뭐, 높은 물가로 인한 고통은 (물론 해결은 전혀 안 되겠지만) 대형 할인마트를 이용하거나 중고거래를 통해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여타 지방에 비해 턱없이 높은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어떻게 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2016년 기준 지역별 평균 월세를 비교해보면, 가장 높았던 서울과 가장 낮았던 광주의 평균 월세 차이는 무려 178,400원이었다.5) 이를 일 년 치로 환산하면 2,140,800원으로, 서울 셋방살이 청년들은 웬만한 국립대학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금액을 1년에 걸쳐 분납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알바를 하든, 양육자로부터 용돈을 받아쓰든,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50만 원은 육체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런 한편, 서울이 가지고 있는 메리트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돈을 더 모으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월세가 낮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부모님과 함께 살며 월세 걱정 없이 사는 게 방법일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 시간을 다시 돌려 대학에 진학하기 이전으로 뚝 떨어진다면 모르겠으나 나는 이미 서울에서 너무 많은 인연을 쌓아버렸다. 대학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고, 누구나 알 법한 유명 기업에 취직해 커리어도 쌓아보고 싶다. 그러다 어느 날 공부가 그리워질 때면 친한 교수님들께 부탁해서 청강을 해볼 수도 있겠고, 힐링을 위해 종종 예술의전당에 들러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그래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



최악의 주거

그러나 누군가 서울이 아니어도 모든 인간관계, 커리어, 문화생활을 보장해준다는 제안을 한다면 나는 두 말 하지 않고 당장 서울을 떠나겠다. 주거지로서 서울은 아주 불만족스러운 동네이기 때문이다. 아니, 불만족 수준을 넘어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어떤 최악의 조건도 ‘서울에서 이 정도면 괜찮죠.’라는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의 말로 상쇄되어 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최악의 조건’이라는 말은 단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서울의 몇몇 주거환경이 인간이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집을 많이 봐왔다. 내 몸 하나 눕히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고시원, 사시사철 습해서 곰팡이와 공존해야만 하는 반지하, 확정일자를 받거나 전입신고를 하기 어려워 분쟁상황에서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든 불법 방 쪼개기 원룸까지. 모두 방을 구하러 학교 근처를 돌아다닐 때 소개받았던 매물이다. 부모님의 아파트에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안락하게 살아왔던 나는 이렇게까지 열악한 주거지도 꽤나 큰돈을 내야 구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6) 원룸텔이라는 이름으로 곱게 포장했지만 실상은 창문 하나만 제대로 달려 있어도 감지덕지인 고시원을 처음 봤을 때, 화장실에 창문이 달려있어 범죄에 취약한데 ‘커튼 달면 안 보이니 괜찮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반지하 원룸 집주인의 말을 들었을 때, 불법으로 방을 쪼갠 40년 된 구옥을 보여주며 ‘방 구조가 특이해서 잘 질리지 않을 것’이라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환기를 제대로 시킬 수 없거나 습한 공간은 신체에 지속적인 타격을 주며, 특히 창문이 없는 경우에 화재 발생 시 소방관의 진입이 불가능해 위험해질 수 있다. 또한 행인에게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사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방을 쪼개 만든 불법 건축물은 전입신고를 하기 어려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괜찮을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요인을 다 대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나는 부모님께 지원금액을 가능한 최대로 올려 달라 부탁해야겠다고 결심하며 그 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최악의 매물 투어를 마치고 지친 나는 열차에 올라 잠시 눈을 감았다. 감옥 같았던 매물과 어떻게든 그것을 좋게 포장하려 기를 쓰는 집주인들을 떠올리니, 그들이 마치 인간이 어느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실험하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자신이 가진 면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세입자로부터 얻는 소득을 극대화하려는 몇몇 집주인들에게 집은 돈벌이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불로소득인 데다가 월세나 관리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룸 임대업은 돈이 끊임없이 나오는 화수분과 같다. 그러나 누군가를 착취함으로써만 굴러가는 화수분이라니 얼마나 비극적인가. 돈이 부족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값싼 주거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후폭풍은 너무나 크다. 열악한 주거시설을 선택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들어가는 돈을 아껴서 미래에 투자하기 위함일 테지만, 부동산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월세도 함께 올라가는 마당에 최악의 주거환경마저 주거비를 과부담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이주하겠다는 꿈은 점점 아득해진다. 많은 이들이 빛나는 미래를 얻기 위해 정신∙신체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하지만 결국 최악의 주거를 전전하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최저의 주거

그러나 상기했다시피 최악의 조건은 말 그대로 최악을 의미하며, 이는 곧 최악의 주거시설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고시원을 생각해보자. 몸을 돌려 누울 수도 없고, 햇볕을 쐴 수도 없으며, 불특정 다수와 화장실을 공유하며 살아야 하는 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삶이 아니라 그저 연명에 가까울 것이다. 그토록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고 숨 막히는 공간을, 재해가 아니라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반면 혼자 숨을 고르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보송보송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사람은 삶을 여유롭게 꾸려 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주거환경의 ‘최저선’을 사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안정적인 주거가 안정적인 삶의 필요조건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주거지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나의 경우에는 최소한의 환기시설이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필수조건이다. 과거에 살던 집이 구조적으로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벽면에 곰팡이가 슬어 고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도 다양한 조건이 떠오르지만, 사실 사람마다 생각하는 필수조건이나 견딜 수 있는 역치가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더 풀어나가기보다는 나라에서 규정한 최저주거기준의 정의를 빌려오고자 한다.


최저주거기준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수준에 관한 지표로, 가구구성에 따라 주거전용면적, 방 구성, 환경기준 준수 등 다양한 기준을 통해 주거의 질을 평가할 수 있다. 현행 최저주거기준에 따르면 1인가구의 최소 전용면적은 14㎡(약 4평)이며 방 안에 부엌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환경기준에 따라 안정성과 쾌적함을 확보하기 위해 내열・내화・방열・방습・방음・환기・채광・난방설비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7) 공공정책의 일환으로 지어진 역세권 청년주택이나 행복주택은 철저히 이 기준에 맞춰 건축되어 청년 1인가구 세입자의 주거권이 보장된다. 공공주택은 주변 시세에 비해 대출도 용이하고 월세도 비교적 저렴하며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관리도 부실하고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제 살아보기 전에는 최저주거기준을 준수하는지 알기 어려운 민간 임대업자의 월셋방을 기웃거리느니 모든 것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공공주택 입주를 바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안타까운 점은 공공주택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당첨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는 것이다. 잠실에 있는 한 청년주택의 전용 14㎡ 타입 방이 24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니 말 다 했다.8) 청약에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조금이라도 조건이 좋은 집을 찾아 발품을 판다. 공공주택에 비해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40만원까지도 비싸게 형성된 시장 가격을 곱씹으면서,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하는 청년들은 소득대비주거비용(RIR)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하나 둘 포기해도 괜찮은 (사실은 전혀 안 괜찮지만) 조건을 가려내곤 한다. 최저주거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매물은 개중에서도 월세를 비싸게 받기 때문이다. ‘바빠서 집에는 잘 안 들어갈 테니 창문은 없어도 돼’, ‘집에서 밥 먹고 잠만 잘 테니 방 크기가 더 작아도 괜찮겠지’, ‘가벽이라 옆방에 소리가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좀 더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다 보면 결국엔 고시원, 반지하, 불법 방 쪼개기 건물로 다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삶의 최저선을 지키는 것마저 어려운 사정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은 최근 서울시가 고시원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소 면적(7㎡, 약 2평)을 확보하고 창문 한 개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건축 조례를 개정했다는 것이다. 기존 서울시내 고시원의 53%의 주거면적이 7㎡ 미만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엄청난 변화다.9) 고시원은 준주택시설이라 최저주거기준의 강제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약한 움직임이지만) 더 살기 좋은 주거공간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최저기준을 설정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주거

그러나 낙관하긴 아직 이르다. 고시원 환경이 조금 개선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다른 시∙도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발표하지 않았고, 심지어 서울마저도 기존의 열악한 고시원 환경(전용면적 7㎡ 미만, 환기시설 부재)에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계획한 것이 없다. 그러니 해당 조례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주거권은 보장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조치에 불과하다. 게다가 시장에는 최저주거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매물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애초에 최저주거기준 자체가 주택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준주택 시설인 지하, 고시원, 옥탑방, 쪽방촌 등에는 적용이 되지도 않을 뿐 더러, 법의 실질적 대상인 일반 주택에 대해서도 이행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주거빈곤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들을 구제할 길은 요원하다. 그렇다고 준주택을 포함한 모든 주택시설에 최저주거기준을 이행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예컨대 전용면적이 14㎡ 미만인 집은 강제로 철거하고, 모든 집을 전수조사해서 볕이 가장 잘 들어오는 방향으로 창문을 내는 식으로.


아니, 그런 엉성한 방식으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미 지어진 집을 강제철거 하는 것은 금전적으로도 무리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적절치 못하다. 돈이 부족해 최악의 주거환경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 집은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쳐 철거해야 하니 당장 나가줘야겠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어디로 떠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또 다른 고시원, 또 다른 쪽방촌을 찾아 헤매게 될 테고, 어렵게 찾은 곳마저 다시 철거 대상이 되어 떠도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는 집을 구하기엔 그만한 돈을 융통할 수 없을 테니, 또 다른 사각지대가 탄생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전수조사 역시 마찬가지로 행정적, 금전적으로 부담이 커서 실행하기 어렵다. 5천만 인구의 주거현황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문제를 고칠 여력이 있었다면 한국에서 통계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시장가치, 효율성 운운하며 ‘어디까지 포기해도 괜찮을지’에만 골몰하는 밥맛없는 논의를 넘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로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보자. 의외로 해결의 실마리는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겨우겨우 주거의 최저선을 지켜내는 삶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정적인 주거를 위한 실마리를, 나는 생활임금 운동의 선례에서 보았다.

주거와 임금은 여러 모로 비슷하다. 둘 모두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최저선만 지켜져도 어디냐’며 자조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차악을 최선이라고 자위하며 살아온 걸까? 수습기간이라며 최저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괴담(사실은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지만)을 들었을 때부터? 혹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14.5시간만 일할 사람을 찾는 아르바이트 공고를 봤을 때부터? 도처에 깔려있는 다양한 최악의 사례들은 우리를 최저의 삶에 만족하고 안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최저주거기준이든 최저임금이든, 모두 비인간적으로 죽지 않을 만큼만 재단해서 만들어진 효율성의 산물에 불과하다. 시장은 인간을 오직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낼 생산자로만 바라보지만, 인간의 가치가 고작 그런 시장논리에 국한될 리 없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더 나은 조건을 바랄 권리가 있고, 그래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활임금을 읽어보자. 생활임금은 기존의 최저임금이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적절한 생활수준을 보장하지 못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롭게 제시된 대안이다. 해당 논의는 초기 자본주의가 발달한 영미권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최저임금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자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꾸리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을 지속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수렁에 빠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의 주도 아래 운동으로 발전했다.10) 한국에서는 1986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참여연대의 제안에 힘입어 35년만에 처음으로 서울시 노원구와 성북구에서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2021년 9월 기준으로 무려 40.3%(92/228)의 지자체가 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하여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10~20%가량 높은 임금을 지급하였다.11) 초기 생활임금제도는 해당 지자체에 직고용된 노동자만 적용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많았지만, 현재는 많은 지자체가 하청 노동자까지 적용대상을 넓히면서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12)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외치는 운동이 생겨나고, 그것이 제도권에 편입되어 점조직처럼 확산되어간 과정은 더 나은 주거환경과 기준을 사유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제는 생활임금과 마찬가지로 주거에 있어서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할 시간이다. 생리적 욕구만을 간신히 해소할 수 있는 최저기준을 넘어 문화적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인간다운 주거를 상상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주거환경이 열악할수록 우울감이 커지고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를 고려한다면, 최우선적으로는 토끼집이라 불릴 만큼 좁은 집의 크기가 혁신적으로 넓어져야 할 것이다.13) 실제로 2021년에 발표된 LH의 ‘적정주거공간 설정 연구’에 따르면 1인가구의 원룸 생활 전용면적은 약 32㎡로, 최저주거기준 주거면적의 두 배를 상회한다. 또한 해당 연구에 따르면 쾌적한 주거생활을 위해서는 현관, 욕실, 주방, 침실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부엌만을 명시해 놓았던 기존의 최저주거기준이 얼마나 조악한 기준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주거면적이나 시설 외에도 주변 인프라나 접근성 등 질 좋은 주거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아직 한참 남아 있지만, 또 다른 연구를 통해 여러 기준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더 나은 주거를 위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를 인간다운 주거로 인도해주리라 믿는다.



그냥, 집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조차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현재의 한국에서 생활임금이니 인간다운 주거기준이니 하는 얘기는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치기어린 주장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때때로 이상은 우리 세상을 더 멋진 방향으로 변모시킨다. 이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돈으로 기본권을 사고파는 게 가능한 암담한 현실을 살고 있다. 앞서 어떻게든 하자 있는 매물을 내놓는 집주인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어찌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부동산 불패신화가 퍼지고, 소위 ‘영끌(영혼을 끌어모아)’해서 대출받아 아파트를 장만하는 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집은 그저 자산으로만 존재한다. 임대업을 할 수 있는 주택건물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노동하지 않아도 편안한 생활이 가능한 사회에서 그 누가 부동산을 이용하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각자의 이상을 말함으로써 이 삐뚤어진 현실에 균열을 내 보자. 가령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넘지 못하도록 설계된 사회를 꿈꾼다거나, 투기꾼에게 세금을 왕창 부과해서 부동산시장에 급격한 변동이 생기지 않도록 정책을 제안하고 싶다거나. 거시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렵다면 개인의 아주 작은 소망을 발화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 다르고, 당연히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주거환경의 구성요소 또한 달라질 테니까. 현실적인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주거는 어떤 모습인지 떠올려보자. 쾌적한 공기를 누릴 수 있는 환기시설, 끼니를 챙길 수 있는 주방, 취미생활이 가능한 독립된 공간, 아늑한 침실이 있는, ‘방’이 아닌 ‘집’을 원하는 각각의 목소리에 마이크를 쥐여주면 지금껏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풍부한 대안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렇게 각자가 생각하는 적절한 주거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된다면, 자연스레 인간다운 주거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 태동할 것이라 믿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드림하우스를 얻을 수 있을까? 혹자는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졸업해서 돈이나 벌라며 일갈할지도 모른다. 보증금으로 낼 목돈도 없고 다달이 낼 월세도 마련하기 어려운 20대 초중반의 학생이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굉장한 사치이니 바랄 걸 바라라면서. 그렇지만 나는 그냥 집이 갖고 싶을 뿐인걸. 나에게 집은 단순한 투자대상 그 이상의 의미다. 고작해야 2년짜리 계약이 끝날 때마다 그새 올라간 물가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될 만큼 긴 시간을 정주(定住)할 수 있고, 물리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안정까지 꾀할 수 있는, 그래서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삶의 기반. 나는 모두에게 집이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 때문에 조건을 포기하기보다는, 돈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펼쳐 나갈 인간다운 주거환경을 얻는 세상을 상상한다. 시장질서에 굴복하지 않고 집을 집답게 사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래서 나는 여전히 드림하우스를 꿈꾼다. 18평, 투룸, 널찍한 욕실이 갖춰진 나만의 집을.





편집위원 모자(dyj06128@yonsei.ac.kr)



1) 대전일보, “대전 소형 아파트 강세… 1년 전 대비 20% 이상 매매가 뛰어”, 2021.10.24.

2) 매일경제, “서울 집값 ‘14억’시대… 차라리 집값 8억 경기도로 뜬다”, 2021.01.21.

3) 통계청, 「지역의 일자리 질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2019년 봄호

4) 문화체육관광부, 「2020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 2020.12.

5) THE STOCK, “원룸 평균 월세 34만원… 서울 45만원으로 전국 최고”, 2017.03.28.

6) “신촌 지역 하숙 DB”, 집보샘: 연세대학교 주거상담플랫폼, 2022.02.21. 접속, https://www.notion.so/zipbosamm/DB-5800d82ea82d41feb25cf3063f42e24d. (신촌 주변 고시원, 원룸텔의 최저금액은 35만 원가량이다.)

7) 주거기본법」 제17조

8) 연합뉴스, “서울 잠실 청년 임대주택 경쟁률 1천472대 1”, 2021.07.13.

9) 내 손안에 서울, “고시원 방 최소 7㎡, 창문 꼭 내야… 서울시 건축 조례 개정”, 2020.01.014.

10) 한국노동연구원, 2015, “생활임금 논의의 사회적 의미와 시사점: 어떤 임금이 필요한가의 물음”, 2015년 2월호, 월간 노동리뷰

11) 한겨레, ““첫 월급받고 깜짝”…‘시급 1만원대’ 생활임금, 92개 지역으로 확산”, 2021.10.14.

12) 서울연구원, “서울시, 생활임금 표준안 만들어 제도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 해야”, 2015.02.14.

13) 최병숙, 박정아, 2012, “한국복지패널연구 자료를 기초로 주거환경과 우울감 및 자존감과의 관계 분석”, Vol. 23, No.5, 75-86, 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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