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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9호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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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25. 2023

무너지는 민원대

[피워내다] 편집위원 느루

대한민국 헌법 제7조제1항.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그런데, 권력자에 의해 ‘봉사’의 의미가 한참 곡해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돈을 적게 받고 일해도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이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않아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연금도 나오고, 웬만해서는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공무원은 ‘사명감’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 직급을 불문하고, 과연 청년들이 ‘안정성’ 하나만 보고 공직에 뛰어들기를 기대하는 것이 맞을까. 이제는 공무원의 ‘무한책임’과 ‘소명의식’에 의문을 던질 때다.     


#1. 세금으로 먹고사니즘


사실 모든 민원인들이 구청이나 주민센터를 직접 방문해서 민원을 처리하지는 않는다. 민원창구에서만 처리 가능한 몇몇 민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민원이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처리가 가능한 시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민원을 처리하기 쉬우면 세금 축내는 공무원 숫자 줄여도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국민이 곧 사용자’라는 마인드는 사실 중대한 논리적 오류를 가질 수 있다. ‘내가 당신 물건 사주니 이래라 저래라’라는 레토릭은 최소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갑질이 될 수 있다. ‘내가 월급 주니 이래라 저래라’는 직장 내 괴롭힘과 위계에 의한 갑질이 될 수 있다. 이쯤되면 ‘내가 세금 내니 이래라 저래라’ 또한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는가? 세금으로 먹고사니즘이 대체로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발화되는지 골똘히 생각해본다면, 눈앞에 앉아있는 공무원에게 ‘내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한없이 무례하고 창피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성’을 폭언과 악성민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곡해해서는 안된다. 공무원이 고의 없는 과실을 저질렀다고 해서 ‘내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들이 일 똑바로 안해?’ 라고 민원인이 말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주권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주어지지만은 않는다. 대한민국은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서 세금 내지 않는 사람들의 투표권을 빼앗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은 세금 많이 낸다고 더 많은 공권력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주지는 않는다. 이렇듯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세금으로 먹고사니즘’을 입에 담는 것은 위계에 기댄 오만함과 무례함의 발현에 가깝다.  

   

악성민원인의 가장 큰 논리적 흠결은, ‘세금으로 먹고사니즘’을 일선 구청과 주민센터 공무원 앞에서 당당하게 내뱉는다는 점에 있다. 여러분 앞에서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불손하다고 해도, 그들에게 ‘내 세금받고 일하니 태도 똑바로 해라’는 조언을 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다. ‘공무원의 태도가 불손한 것’과 ‘공무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다. 직관적으로는 ‘내가 사용자고 너가 내 돈 받고 일하니 너의 태도에 대해 간섭할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직관성에 기대는 것은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게으름과 다를 바 없다. 공무원의 태도가 불손한 것은 원래부터 나쁜 인격을 가진 사람이거나, 지금의 시스템이 그 사람을 흑화시켰거나, 둘 중 하나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세금을 내는 것과 그 공무원의 불친절함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2. 악성민원인 맛 좀 볼텨?     


민원대에 앉아본 적이 있는가?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뜸 찾아와서 이것저것 해달라는 요청을 처리하고 또다시 새로운 사람을 맞는 그 일 말이다. 민원대의 파열음은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 때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때론 그 누구도 나를 살펴주지 못했다는 서러움이 민원대의 일상을 뒤흔든다. “나이프 들고 와서 다 찌르겠다” “신나 들이붓고 라이터 놓으면 너네 다 끝이야” “오늘 저녁에 약 먹고 자살하겠다” 따위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은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아직 손이 떨린다.     


행정안전부의 자료에 따르면 민원인의 위법행위는 2018년 3만 4484건, 2019년 3만 8054건, 2020년 4만 6079건, 2021년 5만 1883건으로 늘었다. 그렇지만 기관 차원에서의 법적 대응은 12건에 불과했다. 게다가, 공공기관에서 근무해 보았다면 알 수 있지만, 민원인의 위법행위가 상부에 보고될 정도라면 ‘일상적인 악성민원인의 해프닝’ 정도는 보고된 건수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지난 2021년에는 서울 강동구청에서 불법주정차 과태료 민원 업무를 맡던 1년차 공무원이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1년간 고인이 처리한 민원은 6000여 건이다. 도저히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다. 공무원노조가 2030 청년 조합원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25%가 ‘악성 민원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보디캠을 보급함으로써 악성 민원이 발생할 시 녹취와 같은 증거를 남기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대책일 뿐, 일선 공무원을 지킬 수 있는 궁극적인 방안은 결코 아니다.     


막무가내 민원은 악성 민원의 다른 이름이자 악성민원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표현이다. 권남옥은 “지방행정공무원의 감정노동 적응에 대한 근거이론 연구”에서 막무가내의 요구를 하는 민원인을 상대할 때 공무원의 회피성향이 발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감정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별난 민원인을 만난 것을 예외적인 상황이거나 개인적인 자질 부족으로 인한 에피소드 정도로 인식하여, 감정노동 업무에 적응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노력보다는 소극적으로 감정노동업무를 회피하도록 종용한다.(22)”     


또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채 감정을 속으로 삭이고 있던 연구 참여자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 ‘민원제기 방지’에 초점을 둔 공공 행정 부문의 의사소통과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의사소통이란, 양방의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될 때 가능한 것이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적확한 행정서비스의 제공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는데, 민원제기 방지에 우선순위를 두어, 일방적인 의사소통으로 기울어진 오늘날의 행정부문의 의사소통과정에서 제대로 된 행정서비스가 제공될 지 의심스럽다. (27-8)”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근무환경’, ‘강요된 친절’, ‘직원을 보호하지 않는 조직’ 등 여러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감정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공무원의 특성을 규정한다.      


“법규에 저촉되기에 수용할 수 없는 민원인의 요구인 것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경청해야 하는 상황에서, 참여자들은 민원인과의 소모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이는 감정부조화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스스로 차단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상담 과정에서 민원인이 화내면서 하는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곱씹거나,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기도 한다. (46)”     


권남옥은 연구의 결론에서 연구에 참여한 공무원들이 “대민업무과정 중에 일관되고 친절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악성민원을 포함한 다양한 민원인의 광범위한 질의와 요구에 부응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점을 언급한다 (50). 무리한 요구를 친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보통 쉬운 일인가? 친절하게 막무가내 민원을 응대하라는 것만큼 어이없는 요구가 없다. 감정을 삭여가며, 속을 썩여가며 얼굴에는 미소를 띄우는 감정노동은, 최소한 이 땅에서는 발붙일 자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     

 

무리한 요구에 공무원이 단호하게 대응했을 때 제기되는 민원을 해당 공무원이 아닌 조직과 관리자가 소화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악성민원인에 노출된 공무원에게 치료를 위한 시간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선 공무원이 민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공무원이나 상급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발생하거나 조직 내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위기가 변화되어야 한다. 민원인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민원 폭탄 넣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터무니없는 다짐을 멈출 수 있도록, 조직이 민원대 공무원의 ‘태도에 관한 민원’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일을 단호하게 거절해도 그것을 태도의 문제와 결부시킨 국민신문고 민원에 일일이 답변을 달고 ‘친절교육을 수행하겠다’는 다짐을 남겨야 하는 지금의 매뉴얼과 조직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가 맞지만, 업무에 지장을 받으면서까지 수행해야 하는 막무가내의 요구마저 친.절.히. 들어주는 봉사자는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사실 도서관도 헬무지입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회복무요원들 사이에서도 이른바 근무 강도가 높고 민원 응대가 힘든 곳으로 유명한 곳들이 있다. 공공도서관도 일반적으로 ‘헬무지’로 여겨지곤 한다. 사실 공공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직은 다른 직렬보다 쉬운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들 다 쉬는 주말에 하루를 출근하는 대신, 월요일에 휴식을 부여받으면서 이틀 연달아 푹 쉬기도 어렵고(물론 도서관 운영주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도 하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데다가 매일매일 산더미같은 책을 책장에 꽂으면서 생긴 손목과 어깨 통증은 사서의 직업병과 다름없다. 거기다가 공공도서관 역시 엄연히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악성민원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데스크에 앉아 편하게 대출·반납만 하는 공무원이라는 오해도 여전해요. 하지만 우리는 공무원도 아니고, 모욕성 발언과 집요한 괴롭힘, 성희롱 등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이직하거나 퇴사하는 경우도 꽤 있답니다. 다른 사람 회원증을 도용해 계속해서 예약자 이용 자리를 독점 사용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용하시면 안 됩니다’라며 업무기준에 따라 주의를 준 동료에게, 그 분은 ‘그럼 내 주식은 어디서 확인하느냐’ ‘지금 확인 못 해서 주식 떨어지면 책임질 수 있느냐’며 되레 강압적으로 나오더군요. 손이 떨리며 경찰을 부를까 고민했지만, 상황을 크게 키워 재단이나 구청에 민원이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저희 선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상급자에게 응대를 넘기고 민원인에게 사과한 뒤 경위서를 작성했습니다. 예민한 이용자분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잘 피하면서 더 친절하게 응대하고 더 조심했어야 했대요.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힐 휴게공간도 제대로 없어 도망칠 곳 없는 저희는 조용히 서로를 다독이면서 그분이 다시 안 그러시길 바라는 수밖에요.”     

한겨레, 윤희(가명) 사서 칼럼, “[6411의 목소리] 사서 고생하니? 사서라서 고생해요!”. 2023.01.04     


그렇다고 돈을 많이 받는가?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공무원 직급상 6급 이하 기준 사서수당은 단돈 월 2만원이다. 나머지 급여체계는 타 직렬 공무원과 완전히 동일하게 적용된다. 더군다나 현대의 공공도서관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다른 공공주체에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고, 도서관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용자의 수요가 많을 것 같은 책들을 구매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책들을 서고로 옮기는 역할도 한다. 갈 곳 없는 이들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머무를 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인프라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공공도서관에서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서의 책임과 역할은 다양해짐과 동시에 무거워지고 있다. 도서관의 평온하고 조용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데스크와 사무실에 있는 사서들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직업병과 민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렇기에 공공도서관과 사서가 ‘다른 기관들이 하기 싫어하는 임무’마저 떠맡고 있는 현실과 역할을 분명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4. 도서관의 양적 팽창과 질적 붕괴     


지역을 불문하고 도서관 건립 혹은 재건축은 정치인의 주요 공약들 중 하나다. 멋진 도서관이 자신의 지역에 들어오면 지역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공약을 던져놓기만 하고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까운가 보다. 김효윤은 “도서관법 개정에 따른 공공도서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의 실효성 분석”이라는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적한다.     


“특히 건축에만 몰두한 양적 확대의 경우 인적자원의 측면은 고려되지 않아 사서 인력의 부족, 그에 따른 비정규직의 확대, 민간위탁운영 등의 문제를 낳고 이러한 문제들은 도서관 서비스를 저해하는 주된 요인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도서관 조성을 건립에만 목적을 두고 추진하는 행정중심의 발상이나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치적을 위한 무분별한 사업 추진 등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도서관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 시설 규모에 맞는 적정 사서의 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123)     


또한 김효윤은 1184개의 공공도서관 중 법정 최소 사서 수인 3명조차 확보되지 않은 채로 운영 중인 도서관이 34.2%에 달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24). 물론, 도서관법 시행령에 기대어 적정 사서 수를 산출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를 감안해 문체부 도서관정책기획단이 공공도서관 건립 및 운영 컨설팅에 나설 때도 도서관법 시행령과 함께 법정사서평균배치율을 활용하여 최소 운영인력을 산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 최소 사서 수보다 적은 수의 사서만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의 비율이 34%에 이른다는 사실은 분명 지자체와 운영주체가 사서 인력 배치에 굉.장.히. 인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적정 사서 수보다 적은 인력이 배치되면 사서들은 휴가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환경에 놓인다. 한 명이 휴가내면 나머지 한 명이 그야말로 ‘일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만을 추구하는 시대정신 속에서 ‘수익을 낼 수 없는’ 도서관은 애들 공부방 역할이나 똑바로 해라는 비아냥이나 듣고 있다. 그러나 도서관은 엄연히 ‘도서관법’이라는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국가기반시설이다. 공공도서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 도서관 운영 및 인력에 관한 규칙 등 엄연히 ‘도서관’을 운영할 법적 근거와 검토기구 또한 존재한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만큼 도서관 면적과 장서 수에 비례해서 사서를 배치하고, 교육 강좌 운영 등 추가되는 업무들을 처리하기 위해 인력 충원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만 해도 사서들의 볼멘소리는 나오지도 않을 일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도서관법에 근거해 ‘법대로’ 인력 충원 해주고, 재선과 공천에 눈먼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도서관 건립 공약 남발을 멈출 시기다. 무분별한 도서관 양적 팽창의 끝은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붕괴로 이어진다.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다고 인력충원을 게을리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맡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5. ‘당신’은 책임이 없습니다     


사실 이런 글 쓰고도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 누가 죽어야 호들갑 떨면서 오만 사람들이 관심 가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구조’를 고치는 시도를 할 것인가? 시스템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사람들과 ‘추모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대립하고, 극단적인 사례들 몇 개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쿨찐의 감성에 찌든 이들이 ‘중립기어’를 외칠 것이며, 정치인들은 서로 남탓하기 바쁠 것이다. 근본적인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목소리는,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자극적인 뉴스와 권력의 땜질식 처방 아래 서서히 묻혀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파멸적인 죽음을 목격하고, 또 목격할 것이다. 이제 일말의 기대조차 들지 않는다. 내일은 또 누가 죽을지, 책임을 방기한 관리자들과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러시안룰렛 앞에서 말이다.     


정치인들과 관리자들은 왜 젊은 공무원들이 일터를 떠나려 하는지 고민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봉사자성을 강조하며 ‘점심시간 휴무제’마저 폐지하라는 정치인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공공 분야일수록 더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기괴한 목표 탓에 폭염 속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은 근무 외 시간에는 에어컨도 틀지 못하는 것이 이 나라 공공의 현실이다. 신규 9급 공무원의 ‘근로자성’은 인정되지만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개탄스러운 현실 속에서 어떤 개선의 여지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 꺼내면 ‘누가 칼들고 공무원 하라고 협박했나’라고 반문한다.     


누칼협과 알빠노의 시대정신, 그리고 중립기어라는 레토릭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없는 완벽한 구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만들어갈 구조의 지향점은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없는 완벽한 구조’여야만 한다. 사용자와 관리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불의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은 비관적 현실주의라기보다는 책임회피를 위한 합리화에 가깝다. 온라인에서 누칼협이 유행하자 진짜 누군가가 칼을 들고 길거리에서 무차별 살상을 벌이고, 알빠노의 마인드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관심과 고립을 만들어냈다. 중립기어라는 영혼 없는 외침은 시민성의 발현을 저해한 채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아 보이는’ 모든 이들을 방관자로 퉁친다.     


판단과 진단에 중독된 사회에서 회의주의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진다. 남을 돕는 타인의 행동을 선해하기보다는 어떤 대가를 바라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사회를 잠식해 나갈 때 공동체는 형해화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사회에서는 악폐습의 재생산이 멈추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감히 진단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오늘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실증적으로 진단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은 언제나 꿋꿋이 이어져야 한다. 누군가는 권력에서, 누군가는 시스템에서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더 이상 타의로 의해 주어진 가혹한 상황마저 ‘자신의 탓’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타의’의 주체가 ‘국가’이자 ‘시스템’이고 ‘상급자’이자 ‘관리자’이면 더더욱 그래야만 한다.


참고문헌     

논문

권남옥. "지방행정공무원의 감정노동 적응에 대한 근거이론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2020. 서울

김효윤. (2022). 도서관법 개정에 따른 공공도서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의 실효성 분석.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53(3), 119-135.     

기사

공생공사, 노은영 기자, “공노총, “공무원을 향한 도 넘은 악성민원 기관차원 적극 대응하라“ 성명”. 2023.08.03. 

노컷뉴스, 김대한 기자. “그냥 알려달라고” 극단 선택 시도한 30대…악성 민원에 고달픈 공무원” 2023.06.08.

시사저널, 박선우 기자. “‘한강 투신’ 공무원, 생전 수천 건 민원에 시달렸다”, 2021.03.05.

한겨레, 윤희(가명) 사서 칼럼, “[6411의 목소리] 사서 고생하니? 사서라서 고생해요!”. 2023.01.04


편집위원 느루 (hushpond@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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