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폭풍 같은 몇 달간이었다.
마지막 일상 글을 마이크로 유니버스 매거진에 발행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폭풍이 몇 달을 몰아쳤는지 사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오늘, 그 시간이 내가 견고히 쌓아갔던 바벨탑이 무너져 내리던 것만 같다. 마치 슬로모션처럼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져 내려 다시 땅을 밟고 선 내 모습을 제삼자의 눈으로 보는 듯한 착시를 느낀다.
문득 내 손에서 비롯된 활자를 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사실 별거 아니래도, 우주에 떠도는 아주 작은 소립자 같은 하얀 바탕 까만 글씨 몇 개라도, 창조주가 빚은 내가 그 창조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야 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별거 아니면 어때, 내가 별거여야 하나. 하는 자조를 가장한 생명의 외침.
나는 왜 쓰고 싶을까.
언젠가 방을 정리하다가 버려져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던 쓰던 공책 맨 앞장에, 내가 쓴 것이 분명한 글씨로, "the marker"라고 쓰인 것을 발견했었다. 나는 족적을 남기고 싶은 것인가 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가도록 그 두 단어를 보았었던 것도 같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발걸음이면 어떨까.
갈지자로 흔들려서 도무지 이 인간이 어떻게 걷길래 이런 자국이 났는지.
저곳이 가도될 길이 아닌데 왜 그 발자국은 저 길로 죽 났다 뻔히 예측 가능하게 다시 돌아가는지.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온몸에 끓어오르는 많은 말이 모두 실제 언어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억눌려서 틈바구니로 겨우 억지로 짜내는 그런 몇 마디 말이라도 나는 쓰고 싶다. 재능의 여부를 타진하기에는 나는 내가 너무도 미약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야 하는 것은 되게 큰 거짓말처럼 나를 아프게 강타한다. 그럼에도 나는 쓰고 싶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나 단순하지만 단단하게 꼬인 실타래처럼 누군가에게는 명확히 보일 것이, 나 스스로에게는 보이지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보지 못하는 척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