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아들 사랑..며느리는?
드디어 결혼 후 첫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연히도 명절 바로 다음날이 남편의 생일이었다. 결혼하고 첫 생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직접 첫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먼저 결혼 한 친구들을 보니 각자의 생일에 남편이나 아내가 손수 미역국을 끓여서 서로를 축하해 주는 것을 봐았던터라 그녀 또한 그런 꽁냥 꽁냥 로맨스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연휴에 주말근무를 하게 되면서 결혼 후 맞는 첫 명절에 친정에 갈 수 있는 날이 하필이면 '남편의 생일날’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명절 몇주전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여 혼자 티비를 보며 말그대로 그녀는 쇼파와 한몸으로 누워있었다. 시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근처에서 식사 모임이 있었는데 삼계탕을 포장했다면서 가져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30-40분 후...
그날따라 남편도 없고 그녀 혼자였지만 이미 삼계탕을 샀다는데 어쩔 수 없이 ‘네’ 라는 대답과 함께 부랴부랴 집청소를 하고 그들을 맞았다. 그들은 그렇게 와서 삼계탕을 건네고 차를 마시고 돌아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남편에게 전화를 하여 회사에 있고 그녀가 집에 있단 걸 알고 전화를 했던 거였다.)
솔직히 그녀는 아무리 자식며느리라지만 상대방 상황은 고려하지도 않고 이미 샀으니 간다는 식으로 방문하는 게 참 불편했다. 더군다나 남편도 없고 혼자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그들이 다녀가고 이삼주가 지나 남편은 부모님이 보고 싶다며 함께하는 식사를 제안했다.
'하긴 격주로 보다가 4주는 못 봤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 흔쾌히 그녀는 제안을 수락했다.
음식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시어머니는 명절 연휴 동안 근무가 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명절 주말에 근무가 있다고 대답을 하였다.
'명절 때 근무하는지 궁금해하는 거 보니 명절 전날 일하러 못 올까 봐 체크하나...' 그녀는 단순히 받아들였다.
식사를 하는 중에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먹는 게 시원찮았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한 국자 건더기를 뜨더니 남편의 앞접시에 부어 주었다.
"다 큰애한테 왜 그래요. 알아서 먹게 둬요" 시어머니가 말했다.
시어머니의 말을 무시하며 시아버지는 다시 한 국자 아들에게 떠주었다.
그걸 바라보는 며느리가 신경이 쓰이는지 이번엔 그녀의 앞 그릇에 한 국자....
'아들 사랑이 넘치는 구만...' 그녀는 생각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러 간 곳에서
"명절 다음날이 우리 아들 생일이잖아. 올해는 제사 지내고 산소에도 안 가니까, 오전에 제사 지내고 오후에 너네 집에 가서 장을 봐. 미역국이랑 갈비 좀 재우고 우리 아들 좋아하는 잡채도 좀 하고 다음날 우리랑 시동생 내외를 불러서 생일상을 차려. "
시어머니는 명령조의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명령조의 말투도 귀에 거슬렸다.
'다음날 근무라고 얘기했는데... 직접 물어보고 날짜도 보더니..'
그녀의 얼굴은 굳어버렸고, 워낙에도 표정에 다 드러나는 성격이라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음을 모두가 느꼈으리라...그녀는 모바일 폰을 꺼내 달력의 날짜를 확인했다.
"달력은 왜 봐?"
(옆에서 눈치 없는 남편이 한다는 소리..)
"표정이 왜 그러냐"
표정을 눈치챈 시아버지가 물었다.
"아,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친정에 갈 수 있는 날이 그날 밖에 없어요."
시아버지는 갑자기 격양된 어조로 남편에게 처가에 가서 장인이랑 술 한잔 해야 된다면 너스레를 떨었다.
"일요일에 가면 되잖아."
이때, 옆에서 듣던 시어머니가 기분이 나쁜 내색을 보란 듯이 드러내며 한마디 툭 던졌다.
'분명히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한다고 차 안에서 말을 했음에도 배려가 전혀 없구나. 나더러 명절 전날 일하고 당일 오전에도 제사상 차리고 오후에 장보고 음식 하고, 다음날 시댁 식구들 죄다 불러 상 차려서 잔치하고 그러고 다음날 출근하라는 거네...'
교대 근무하는 그녀에게 휴일 근무는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고 다음날 어떻게 친정에 가란 말이지? '
(물론 시어머니는 그 당시 그녀가 다음날 아침 퇴근임을 몰랐을 것이다.)
"월요일에 출근도 해야 하는데 남편은 전날 어디 멀리 나가는 거 싫어해요."
그녀는 남편의 핑계를 댔다.
"내 생일 다음날 출근인 거지? 날짜가 애매하네."
남편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그 자리의 대화는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며칠 뒤 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그녀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친정에 가고 싶은데 그날이 남편 생일이라고 알리며 어떻게 해야 될지를 물어보았다.
친정 엄마는 웃으면서
“걱정 마, 우리 사위 첫 생일인데 엄마가 차려줄라고 했어. 너 동생 때도 그렇게 했어. 사돈어른이 우리 아들 상 차려주고 우리 며느리 상은 엄마가 차려주고 그랬어. 요즘은 그렇게 해. 그러니 그 날 집에 내려와."
'이렇게 간단히 해결돼버리다니..'
그녀는 며칠간의 고민이 한방에 해결된 느낌에 안도감을 내쉬었다.
하지만, 제2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에게 친정엄마의 얘기를 하니 대뜸
“우리 엄마한테 얘기했어?"
"아니 이제 전화해야지"
다음날 시어머니와의 통화는 정말 '뜨악'이란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네가 부담돼 하는 거 같아서 좀 돈이 들어도 내가 갈비랑 잡채를 해가고 네가 미역국 끓이고 사돈끼리도 어울리면 좋다고 하니까 우리랑 너의 부모님이랑 시동생네랑 작은 고모를 불러서 너네 집에서 밥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
'도대체 이건 무슨 말이지? 명절 다음날 본인의 큰아들 생일이라고 우리 부모님과 작은 고모까지 불러서 10명의 상을 차리라니.. 다음날 자기 아들은 쉬지만 나는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나더러 5일 연휴 중에 4일을 일하라고 그러네... 아니 환갑잔치도 아니고 이제 40살 좀 넘은 아들 생일에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
솔직히 그녀도 오랜만에 동생 부부와 조카들도 보고 싶었고 부모님이랑 편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누가 시집식구들 틈에서 생일잔치를 벌이며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겠는가? 또한, 친정에 간다는 건 밥상처리고 설거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친정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고 다리 뻗고 누워 쉴 수 있단 얘기인데 시집식구들에 작은 고모까지 불러서 생일상을 차리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결국 시어머니는 하고 싶었던 속말을 다 하고 나서야,,, 친정엄마가 차려준다니 어쩔 수 없지머.. 란 식으로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었다.
남편에게 어머님은 왜 그러시냐고 말을 했더니
“내 첫 생일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불끈했다.
'아마도 이미 시어머니로부터 먼가 한소리를 들었구나...' 그런 짐작이 들었다.
남편의 생일에 대한 시어머니의 대처를 보면서 시어머니의 큰 아들 사랑이 지나치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는다. 또한 ‘요즘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사는 분이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자신 만의 생각에 갇혀 자신의 잣대로 며느리에게 아들의 생일잔치를 명령하는 시어머니라니...
아니 도대체 큰 아들이 그녀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이런 기발한 발상을 하는지 그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단지 ‘며느리가 들어온 자신 아들의 첫 생일'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남편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시부모의 입장에서 며느리가 내 아들의 생일을 대접해줘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했던 그녀는 남편의 생일 때 어떻게 보내는지 주변에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는 시어머니께 용돈을 받아 외식을 하거나 시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하면서 간단히 보낸다고 했다. 직접 생일상을 차리긴 했지만 대부분 둘이 오붓이 보냈지 결혼하고 난 첫 번째 남편 생일이라고 하여 온 집안 식구들을 불러서 한 경우는 보기 드물었다.
그녀가 고민을 나누었던 지인도 그녀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특이하네..'이 말과 함께..
이때만 해도 그녀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시부모의 큰 아들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또한 이 집안에서 며느리를 어떤 존재로 여기는 지..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각자의 첫 생일은 결혼 후 일 년 안에 일어나는 이벤트 중 하나이다. 그녀도 물론 연애 시절에도 각자의 생일에 만나 식사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했지만, 결혼 후는 좀 다른 의미로 다가왔었다.
결혼 한 부부가 맞는 이 이벤트를 그들끼리의 추억 쌓기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걸까?
꼭 그렇게 집안 식구들을 다 불러서 잔치를 벌여 알려야 할까?
이런 일이 흔한 일 일까?
두 사람의 생일을 어떻게 보낼지는 그 둘만의 선택이어야 한다. 성인으로서 독립된 가정을 이뤘으니 말이다.. 부모님을 초대할지 말지도 그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초대하지 않을지라도 서운함도 들겠지만 나의 아들이 아내와 함께 더 끈끈한 가족을 이루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면 되지 않을까?
솔직히 시부모님께 용돈 받아 아이 맡겨놓고 둘이 나가서 외식하고 온다며 싱글벙글 이야기하는 동료의 얘기를 듣고 내심 부러웠었다. 동료의 얼굴에서도 '나는 시부모 간섭없이 남편이랑 자유롭게 보내요~’ 란 메시지가 느껴졌다.
차마 그녀는 그녀의 얘기를 입밖에 꺼낼 수 도 없었다. 왜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던 걸까?
결혼에 있어 중요한 건 결혼한 아들의 생일을 챙기려고 며느리에게 생일잔치를 요구하는 것보다 ‘아들 부부가 잘 사는 것’이 우선이 되면 좋지 않을까?
또한 일하는 며느리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 주었다면 마음의 상처나 섭섭함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후에 갈등을 겪을 때 이 일이 회자되어 그들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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