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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서곡의 세계

by 신동일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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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까지는 오페라의 서곡(Overture)이라고 할 만한 뚜렷하게 완결된 형태의 작품이 없었다. 대체로 곡의 시작을 알리고 관객들을 주목시키는 짧은 기악곡들이 연주되곤 했다. 초기 오페라의 가장 유명한 서곡은 몬테베르디(C.Monteverdi)의 오페라 <오르페오(L'Orfeo;1607)>를 꼽을 수 있는데, 트럼펫 등 여러 개의 금관악기들이 팡파레를 울리듯 화려하게 연주한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의 서곡은 “토카타(Toccata)”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서곡이라는 형태가 확립되어 있지 않고, 곡의 분위기나 형식에 맞는 적당한 제목을 붙여 서곡으로 연주하게 했던 것이다. 


오페라의 서곡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17세기 중에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신포니아(Shinfonia)”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서곡(French overture)”라는 이름으로 오페라의 서곡이 확립되었다.

나폴리 오페라에서 사용된 신포니아는 알렉산드르 스카를랏티(Alessandro Scarlatti)에 의하여 발전되었는데, 보통 세 개의 부분(또는 악장)으로 나뉜다. 제1부는 빠르게, 제2부는 종종 독주 악기가 포함되는 선율적인 느린 부분, 제3부는 다시 빠른 템포로 돌아가는데 대위법적이거나 춤곡 풍으로 맺는다.

프랑스 서곡은 륄리(Giovanni Battista Lulli)에 의해 처음 나타나는데 역시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뉘지만 구성은 조금 다르다. 제1부는 느리게, 제2부는 빠르고 대위법적인 음악이 전개되고, 제3부는 다시 느리게 돌아가거나 처음 테마를 다시 연주한다.

위의 두 가지 서곡은 바로크 시대 가장 대표적인 서곡 형식이며, 신포니아는 점차 교향곡으로 발전하여 서곡과 분리되었고, 프랑스 서곡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춤곡 모음곡으로 발전했다.(대표적으로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프랑스 서곡>) 


글루크(Christoph Gluck)글루크(Christoph Gluck)

오페라 서곡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독일 작곡가 글루크(Christoph Gluck)이었다. 오페라 음악 양식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발전시키기도 한 글루크는 오페라의 서곡 역시 오페라 본편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어서 관객들이 오페라의 내용이나 분위기를 미리 짐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페라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중요한 테마들을 서곡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전까지 오페라와 무관하게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기능을 수행했던 오페라의 서곡은 이제 오페라의 한 부분으로서 극의 내용을 암시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오늘날까지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기억하고 있는 오페라의 서곡들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작품에서 출발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서곡들은 몇몇 작품 외엔 대부분 오페라의 본편과 무관한 테마들로 구성했고, 대부분 소나타 형식에 가깝다. 모차르트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서곡으로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돈 죠바니(Don Giovanni)>, <마술피리(Die Zauberflote)> 등을 들 수 있다. 세 곡 모두 유명한 명곡들이지만, 특히 <피가로의 결혼> 서곡은 흥미롭다. 3분 내외의 대단히 짧은 이 서곡은 독창적인 악상과 오페라와 어울리는 경쾌하고 화려한 분위기가 <피가로의 결혼> 서곡으로서 충분한 기능을 해 낸다. 오페라에 나오는 멜로디를 차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의 분위기 등을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돈 죠바니>의 서곡은 오페라 초연 전날까지 작곡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하루 밤 사이에 작곡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 명작이고,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의 서곡은 견고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는 아니었지만,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는 역사적으로 기억해야할 만한 작품이며, 특히 오페라의 서곡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베토벤은 오페라 <피델리오>의 서곡을 4편이나 작곡했다. 이것은 일반적인 예가 아니며, 베토벤이 <피델리오>의 서곡을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피델리오> 서곡 처음 3편은 <레오노레> 서곡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연주회용 서곡으로 독립되었다. 극 중 여주인공 ‘레오노레’는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힌 남편을 구해내기 위해 남장을 하고 간수 보조로 취직을 하는데, ‘페딜리오’라는 가명을 쓴다. <레오노레> 서곡 제1번~제3번은 모두 극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한 세 편 모두 연관성 있는 작품들이다. 음악적으로는 현재 가장 자주 연주되는 제3번이 완성도가 높지만, 제2번도 극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낸 작품이다. 베토벤은 세편의 <레오노레> 서곡이 극의 분위기나 줄거리를 암시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압도적이어서 오페라가 서곡에 이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듯 하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피델리오> 서곡은 극의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고 길이도 짧아 오페라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고안되었다. 


베버(Carl Maria von Weber)베버(Carl Maria von Weber)

베버(Carl Maria von Weber)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 서곡도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19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히는 <마탄의 사수>의 서곡은 극 중에 연주되는 주요 테마들을 사용하여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묘사적으로 표현해 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3대의 혼으로 연주되는 유명한 테마는 깊은 숲속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신비롭고 환상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로시니(Gioachino Rossini)로시니(Gioachino Rossini)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오페라 서곡들로는 로시니(Gioachino Rossini)의 작품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던 로시니의 작품들은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 몇몇 작품들 외에는 그의 사후에 많이 공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 서곡들은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왔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서곡만 해도 가장 유명한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를 비롯하여 <세미라미데(Semiramide)>, <도둑까치(La gazza ladra)>, <윌리엄 텔(Guillaume Tell)>, <비단 사다리(La scala di seta)> 등이 있다.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한 전문 작곡가답게 많은 서곡들이 사랑받아 왔다. 


글링카(Mikhail Glinka)글링카(Mikhail Glinka)

러시아의 오페라 서곡으로 유명한 작품은 글링카(Michail Glinka)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Ruslan and Ludmila)> 서곡과 보로딘(Alexander Borodin)의 오페라 <이고르 공(Prince Igor)> 서곡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 오페라 서곡 중 최고작으로 꼽을 만한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은 화려한 바이올린 선율에 건강하고 힘에 넘치는 악상으로 충만하여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기있는 작품이다.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라고 할만한 글링카는 서구 음악을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민족적 정서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만들어냈고, 이후 러시아 5인조 등에게 큰 영향을 끼치면서 러시아 음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는 가장 중요하고, 그 서곡은 가장 정점에 있다.

보로딘의 유작 오페라 <이고르 공>의 서곡은 글라주노프에 의해 완성됐다. 보로딘이 생전에 피아노로 연주하던 음악들을 기억하며 구상했다는 <이고르 공> 서곡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러시아 음악의 서정성이 충만한 대단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바그너(Richard Wagner)바그너(Richard Wagner)

바그너(Richard Wagner)의 대표적인 서곡은 오페라 <탄호이저(Tannhauser)>이다. 오페라 서곡 중에서도 장엄한 대작으로 꼽을 수 있는 이 곡은 극 중에 나오는 유명한 <순례자의 합창>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독립적인 서곡으로도 많이 연주된다. 바그너는 오페라를 자신만의 악극(Music Drama)로 발전시키면서 서곡 대신 전주곡(Prelude)로 대체한다. 이 전주곡들은 독립적인 악곡이라기보다는 드라마에 종속되어, 뒤에 이어질 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유명한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전주곡은 모호한 화성과 극의 내용과 밀접한 음악 구성 등, 혁명적인 양식을 보여주었다. 그보다 전작인 <로엥그린(Lohengrin)>과 <마이스터징거(Die Meistersinger)>의 전주곡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베르디(Giuseppe Verdi)베르디(Giuseppe Verdi)

역사상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Giuseppe Verdi)는 오페라의 유명세와 다르게 그 서곡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는다. 오페라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서곡이 가장 유명하고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멜로디를 사용하고 있는 오페라 <나부코(Nabucco)> 서곡 정도가 알려져 있다. 


19세기 말 이후의 오페라들에서 서곡이나 전주곡의 역할은 점점 줄어든다. 서곡이나 전주곡이 없이 바로 극이 시작되는 경우도 많고, 어느 정도 길이의 전주가 극에 바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관객의 호흡이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서곡을 들으며 기다리기 어려울 정도로 짧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새로운 오페라에서도 멋들어진 서곡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드는 것은 고전적인 형식에 대한 향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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