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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Oct 30. 2022

어떤+외국인+노동+여자+엄마(2) : 어떤 죽음

어떤 죽음 


출처: 픽사베이


명자는 셀레나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타며 저도 모르게 씨씨티비 위치를 확인했다. 엘레베이터 안에는 윗층에 사는 9살 꼬마가 타고 있었다. 아이는 셀레나와 명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명자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지하1층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손이 떨려 움직이지를 않는다.


”마미? 사이먼은 왜 안와요? Icecream 먹기로 했는데에?“


셀레나가 갑자기 한국어로 묻자 명자는 저도 모르게 셀레나의 입을 막았다. 남자아이가 셀레나와 명자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명자는 아이 입을 막은 손을 떼어내고 지하 1층 버튼을 눌렀다.


”ICECREAM“


윗집 남자 아이가 명자의 눈을 보며 말한다.


”What?“


윗집 남자아이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Is it chocolate icecream?“


남자아이가 가리킨 것은 명자의 바지에 묻은 존의 혈흔이었다. 명자는 입술을 옴싹 꺼리다 천천히 입을 떼며 말했다.


”No honey. It’s nothing.“


이윽고 1층 문이 열리자 남자 아이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미끄러져 나갔다. 명자는 셀레나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

.

.

출처: 넷플릭스 시리즈 <베이츠 모텔>



베이츠 호텔. 나는 입구에서부터 서늘함을 느꼈다. 사이코에 나온 베이츠 모텔을 따라한 것일까. 주차장은 거의 만차다.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열광한다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겨우 자리를 찾아 주차했다. 시각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호텔 네온사인 불빛이 노천 주차장에 만들어진 물 웅덩이에 반사되고 있다. 이 기묘한 이름의 모텔 같은 호텔에서 잘 것인지를 고민한지 도 10여분이 지났을까. 주차된 줄로만 알았던 맞은편 검은 쉐보레 콜로라도가 헤드라이트를 켜지도 않고 저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경찰 배지를 반납한지 삼 년이 더 되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바보같은 습관이다.


‘고장났을 수도 있잖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콜로라도의 뒷 꽁무니를 눈으로 쫓았다. 픽업 트럭은 베이츠 호텔 오른편의 농지로 사라졌다. 그곳은 지형 상으로 차도가 있는 곳이 아니다. 전직 형사로서 나는 이런 예감이 대부분 맞다는 것을 안다.


‘재수 없는 날이군. 하필 사이코같은 호텔 주차장에서 ...’


나는 글러브박스에서 45구경 권총을 꺼내 허리 춤에 찬 채 조용히 차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쉐보레가 사라진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베이츠 호텔의 환한 로비 불빛과 대조적으로 건물 왼편은 온전한 어둠이 깔린 농지였다.


‘내일 재판이 있는데 나 지금 뭘하는거지.’


삼 년째 지지부진하게 이어져오는 전 부인과의 싸움에 나는 어떻게 숨을 쉬는지도 잊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 다만 지금처럼 바싹 긴장한 상태에서는 온몸의 교감 신경이 되살아난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까지 자란 풀들과 진흙탕이 토핑처럼 엉기어 발목까지 물이 첨벙거리는 바람에 내 구두는 곧 엉망이 되었다. 얼마 걷지 않아 쉐보레의 윤곽이 어슴프레 보였다.


‘얼마가지 않고 멈춘 것을 보면 근처에 저수지가 있나?’


나는 저수지에 시체 유기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를 안다. 손을 뻗어 가죽 자켓 안 쪽에서 야시경을 꺼냈다. 차는 뒷 꽁무니가 보인다. 운전자 석에는 사람의 실루엣은 없다. 하지만 나는 순간 빨리 현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진흙길에 찍혔을 내 발자국과 베이츠 호텔 주차장의 cctv 때문에 잘못했다가는 인생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젠장. 되는 일이 없군. 첸에게 빨리 연락해야겠어.’


순간 쉐보레 콜로라도 조수석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이어 둔탁하게 몸이 한 쪽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1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운전자석의 움직임은 없다. 야시경을 돌려 조수석 쪽 사이드 미러를 확대했다. 그러자 권총으로 머리의 절반이 날아간 여자의 얼굴, 정확하게는 그녀의 동공과 눈이 마주쳤다. 자살이었다. 나는 몸을 납작하게 낮춰 품 안의 권총을 움켜쥐었다. 쇳조각의 차가움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옛 동료 첸 앞으로 텍스트를 보냈다.


‘베이츠 호텔 뒤편 저수지. 검은색 쉐보레 콜로라도 2003년식. 조수석 총기 피해 여성 발견. asap.’


그때 나는 빨리 현장을 빠져나와 베이츠 호텔 주차장에서 첸을 기다렸어야만 했다. 나는 문득 트럭 짐칸을 확인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 말 가을의 문턱으로 저수지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랐지만 아직은 여름의 끝이기도 했다. 축축하고 습한 기운이 온몸에 휘감겨 왔다. 짐칸에는 방수포로 차마 다 덮지 못한 시체의 하얀 발 두 개가 곱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끔찍하게도 단정한 모습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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