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영이 싫다.
벌써 다섯 번째 수영 시간. 마치 한 달은 다닌 것 같다. 그만큼 수영이라는 것은 초반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것 같다. 심지어 오늘은 수경을 빼놓고 왔다. 물속에서 눈을 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평소 같다면 이것은 강습을 빠지라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집에 갔을 터, 왠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카운터에 물어보니 분실물 센터에 접수된 것을 쓰고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한다. 다행히 수경이 머리에 맞긴 맞다.
나는 곧잘 포기하는 편이었다. 수영 역시 항상 발 차고 킥판 잡기에서 포기를 했다. 그런데 좀 신기하다. 이번엔 5회 차 만에 벌써 팔을 돌리긴 한다. 역시나 처음은 뺑뺑이다. 어떻게 다들 25미터를 한 번에 척척 가는지. 죽을 것 같아서 우뚝 서면 중간 지점일 뿐. 나는 내 몸 뚱아리가 원망스럽다.
뺑뺑이를 돌고 초점 없는 눈으로 출발점에 킥판을 끌어안고 서 있자 지난번 수업 말미에 배운 고개를 옆으로 돌려하는 호흡을 시킨다. 아, 정말 내가 내 돈 내고 내 팔자를 꽜구나. 왜 하지도 못하는 걸 한다고 폼은 부렸는지. 못하면 안 하면 편할 것 아닌가. 내가 인어 인간도 아니고 어차피 육지에서 코로 숨 들이쉬고 살 건데 말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레벨의 수강생은 곧잘 고개를 돌려 호흡을 해 낸다.
포기하기는 싫은 병이 있어 나는 팔을 길게 뻗어 목을 눕듯 뒤로 젖혀본다. 보기엔 쉬워 보이는 데 따라 하지를 못하니 물속에서도 뚝딱이인 나. 선생님은 목각 인형 팔을 꺾듯 나의 자세를 다듬어주신다. 그리곤 전체적인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바로 출발이다. 소규모 레슨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레인을 자주 사용할 수 있고, 그래서 힘들기도 하다는 것. 동료 수강생은 의외로 얼추 앞으로 치고 나간다. 그녀는 아마 운동 경력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 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괜히 조금이라도 반동을 받으려고 타일을 세게 찬다. 그리고 왼팔을 돌리고 오른팔을 돌리며 얼굴을 돌려 호흡을 하려는 찰나, 맛있게 물을 먹고 만다. 선생님은 팔을 쭉 늘리며 고개를 하늘로 올리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주자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키판에 몸을 의지하여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왼손으로 물 살을 갈라 빠르게 공중에서 제자리 위치를 시킨다. 그리곤 오른손을 들면서 고개를 젖혀 호흡을 한다. 발차기를 요령 있게 하는 법도 잊지 않는다. 머리는 흔들리지 않게 고정. 대신 어깨와 골반은 유연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채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한다.
정말로 이번엔 성공했다. 대신 거리가 너무 짧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료 수강생은 한 바퀴가 끝나가고 있다. 왜 이 세상에 여유 있는 운동은 없을까? 나는 내 뒷 꽁무니를 따라오는 다른 수강생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발길질과 버둥거림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계속 뺑뺑이를 돌았다. 물은 입과 코, 귀로도 들어갔다. 나뿐만이 아니라 클래스 사람들 모두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레인은 너무 길고, 기술은 어설프며 체력은 바닥이 나고 있다. 나도 안다. 이 모든 것이 초심자가 겪는 과정이라는 것을. 임계점이 지나면 한 단계 성장한다는 것.
그러나 유독 수영의 경우 임계점이 오는 시기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다. 수영장이라는 세계에서 기술을 빨리 습득하는 것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이 어떠했느냐 와도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몸무게와 상관없이 유연한지, 환경에 쉽게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맡길 줄도 아는 성향인지, 몸에 생활 근육들이 있는지, 호흡기가 튼튼한 지가 그 사람의 초기 수영 임계점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몸의 스토리가 쌓인 사람들만 통과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처럼 느껴진다. 거기에서 난 매번 입장 거부 팻말을 받았던 것이고.
나는 이번 강습에서 결과가 아닌 과정에 내 목표를 두기로 했다.
수영 기술 습득이라는 목표는 통제하기 쉽지 않지만 빠지지 않고 수영 수업을 따라가는 과정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강습으로 과정에 목표를 두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수영과는 궁합이 맞지를 않는다. 나는 수영이 싫다. 그런데 왜? 왜 난 여기 있지?
샤워장에서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간의 담소를 나누며 하나의 펜듈럼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이질감을 느끼며 샤워를 한다. 아, 나도 속하고 싶다. 한 번이라도 물속의 세계에. 그 감정. 그 끌림. 그것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구나. 이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