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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Feb 03. 2024

[단편] Last Night in Downtown

외로울 때에는 downtown으로 오세요.



한동안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니 정돈된 상태였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회색 바닥에 축축한 것이 떨어져 있어 들어 올려 보니 아이가 물을 쏟고 나름 닦아놓은 수건이 뭉쳐져 있다. 어느새 오후의 빛이 물러가고 거실에는 어둑어둑 푸른 회색의 초저녁 기운이 감돈다. 나는 도저히 맨발로 다닐 수 없어 슬리퍼를 꿰차고는 아이 방으로 가본다.  


“안돼! 혼자 놀 거야. 부끄러워!”


한창 역할극 놀이였는지, 아이가 나를 거부한다. 나는 살짝 감사함을 느끼며 못 이기는 척 아이 방 문을 닫고 나온다. 아직 내 옷은 회사에 갔던 그 차림이다. 이제 30분 후면 아이를 데리고 수학 학원에 가야 한다. 동네 아이들이 대부분 그 학원에 다니고 있다. 수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는 학원에 먼저 보내달라고 나를 졸랐다.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졌기에 안 보낼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저녁 시간 1시간이 내 시간으로 확보되니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전에 아이 저녁을 먹여야 한다. 배가 고프면 아이가 수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고, 끝나면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머리가 아프다.


냉장고를 열었다. 별다른 반찬은 없고 동네 가게에서 시킨 시금치 무침과 메추리알 조림이 다소곳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충 냉동 너겟을 에어프라이에 돌리고 국도 없이 저녁밥을 차려낸다. 한숨이 나온다. 가뜩이나 잘 먹지 않는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거라도 좋게 해 줘야 되는데. 죄책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려는 찰나에 밥 하나에 찬 3개면 나쁜 엄마가 아니라고 변명하며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만다.


아이는 밥 술을 뜨는 듯 마는 듯한다. 보다 못해 숟가락을 받아 들고 입에 몇 번을 떠 넣는다. 어깨가 떨어질 것 같다. 회사에서 타이핑을 많이 치다 보니 오른쪽이 고장이 났다. 커피를 세 번이나 마셨는데 또 카페인이 고프다. 동시에 목도 말라서 나는 앞에 놓인 미지근한 물 잔을 비운다. 그래도 입안이 텁텁하다.


“숙제 안 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틀어막고는 아이 수학 교재를 살핀다. 그렇다. 매일 조금씩 양을 나누어서 아이를 붙잡고 숙제를 시켰어야 했다. 이건 아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나는 나쁜 엄마다. 하지만 그런 생각해봐야 나에게 도움 될 리 없다. 다음에는 잘 시키리라.


“나가자. 늦겠다.”


서둘러 아이 옷을 입히고 내 겉옷을 입는다. 학원까지는 걸어서 15분. 아이는 참새처럼 신나서

뜀뛰기를 하며 신나게 달려 나간다. 나는 한 발자국 뗄 힘도 없다. 아직 키가 작아 수학 학원 가방이 무릎에 걸려 제대로 걷지 못하자 나는 아이의 가방을 들어준다. 부지런히 걸었지만 이번에도 조금 지각했다. 선생님은 밝은 얼굴로 아이를 맞이해준다. 나도 선생이기에 저 미소를 안다. 텐션을 한껏 끌어올린 미소. 사회적인 얼굴. 감사한 일이다.


아이를 학원에 들이밀어놓고 나는 1층 카페로 가 노트북을 연다. 육아 시간을 써서 퇴근은 1시간 빨랐지만 대신 내 일은 그대로 남아있다. 정말로 10분 같은 1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다시 맞이한다. 그리고 15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겨울바람이 바지 사이로 매섭게 스며든다.



정말이지 눕고 싶다. 따뜻한 구스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책이나 읽고 싶다. 스피커로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의 음악을 아무렇게나 마구 틀어놓고, 와인도 한 잔 따라놓고 그냥 멍하니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20분 밖에 되지 않았다. 6년 전이었다면 7시 20분은 이제 하루의 또 다른 시작이 되었을 시간. 지금 나는 깊고 깊은 통로 속을 걸어가는 것만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품이 가득한 우리 집 욕조 앞에 서 있다. 이름을 여러 번 불러도 아이는 오지 않는다. 악다구니를 쓰며 아이를 욕조 안에 넣고 나는 잠시 나와 식탁에 앉아 거실을 둘러본다. 남편은 10시가 되어야 퇴근을 할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집을 한 번 둘러보고 한숨을 쉴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나는 저녁을 먹은 흔적을 치우다 말고 바깥을 바라본다. 창 밖에는 손을 잡은 채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어느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가벼운 발걸음.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미소가 느껴진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차 한잔? 쇼핑? 그냥 산책? 어느 쪽이라도 즐거운 저녁임에는 틀림없다.



목욕을 끝낸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전쟁을 하듯 양치질을 하고 더 엉망이 된 놀이방을 함께 치우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8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카페에서 끝내지 못한 회사 일이 머릿속에 맴돈다.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고르는데 마음이 여러 개로 갈라진다. 쓰고 싶은 글들, 읽고 싶은 책들 그리고 아이에게 좀 더 해주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들이 마구 내 머릿속에 쏟아져 내린다.  내 발은 어느 행성에 붙어있을까. 어느 쪽이든 중력과 밀도가 다 달라 나는 감각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목욕을 끝낸 아이는 한 차례 더 배고프다고 시위 중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저체중인 아이를 위해 두 번째 저녁을 차린다. 아토피 기운이 있는 아이에게 과자를 줄 수도 없는 노릇. 요거트나 과일도 떨어져 급하게 새벽배송 사이트를 요리를 하는 와중 들락거린다.



‘나중에 치매 오면 어쩌지. 이거 하다 저거 하고. 이 생각하다 저 생각하고.’



밥을 다시 먹고 나면 악다구니를 쓰며 양치질을 해야 하겠지. 얘는 왜 물을 묻히는 걸 싫어하는 걸까. 따지고 보니 내가 어릴 때 그랬다는 걸 깨닫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우유!’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실랑이할 기운도 없기에 그냥 우유를 주고 만다. 배가 불러 내일 아침밥 먹을 때 친정 엄마 기운을 빼면 어쩌지 걱정도 되지만 지금은 에라 모르겠다. 이번에는 물로만 간단히 가글 하라고 시킨다. 드디어 자리에 누워 아이에게 영어 책을 읽어준다. 한껏 에너지를 짜내어 나는 알라딘의 자파가 되기도 하고, 원숭이 아부가 되어 끽끼 소리도 낸다.



자스민 공주. 아, 자스민은 저 답답한 궁전을 도망쳐 나와 트루러브를 만났구나. 알라딘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스민은 보모가 붙을 테니 걱정할 게 없겠다. 자스민, 능력도 좋은데 혼자 살죠? 이상한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나는 5권의 전래 동화와 2권의 명작 동화를 더 읽는다. 아이는 잠을 잘 생각이 없다.



그때,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옷 스치는 소리들이 들리고 화장실 불이 달칵 켜지는 소리, 수도가 켜지는 소리 그리고 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지 마. 오지 마. 제발! 들어오지 마!



문이 열리자 반쯤 꿈나라로 발을 걸쳤던 아이가 다시 지구로 반짝하고 돌아왔다. 어느새 2라운드를 할 에너지를 충전하고 남편에게 안긴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발에 빨랫감이 차인다. 발등으로 옷을 들어 올려 세탁실로 향하면서 생각한다.



나가자고. 슬쩍 본 시계는 아직 9시가 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남편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잠시 쉬는 동안 아이는 내 몫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남편이 한 시간 정도 일찍 퇴근을 했고, 나는 그냥 차 키를 쥐어 들고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을 열고 나서려는 데, 씻지도 않았는데 어쩌란 말이야?라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시동을 걸고 무작정 도로로 나와 일부러 천천히 운전을 한다. 도로에는 아직도 차가 많다. 살짝 내린 창문으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사람들이 돌아다니네? 나는 살짝 웃음이 난다. 아직 10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아이가 없던 시절 10시는 나에게 초저녁이었다.


근처 쇼핑몰에 차를 대고 에스칼레이터에 발을 올려놓는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재촉을 하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이상하다. 묘하게 내 체중보다 가벼워진 느낌으로 걸음을 걷다 보니 중력이 다른 행성에 온 기분마저 든다. 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너무 여유로워 기분이 이상하다. 하루를 마감해야 할 시간인데 이곳은 한창이다. 폴바셋 카페에서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 냄새가 피어오른다. 늦저녁에 커피를 놓고 앉아 편안한 얼굴로 담소를 천천히 나누고 있는 사람들 얼굴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괜히 1층에 내려 이유 없이 자라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옷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마치 새로운 LP판을 끼워 첫 곡을 기다리는 심정처럼 나는 반짝 설렘을 느낀다. 내가 잊고 있던 밤공기. 찬찬한 시간들. 아, 이 밤에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나에게서 삭제되었던 시간들. 시간의 주름이 찬찬히 펴지는 것만 같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쇼핑몰을 걸어 다녔다. 이유 없이 수입 코너에 가 색색이 생경한 병에 들어있는 소스들을 살핀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 들 속에서 이상하게 나는 위안을 받는다. 아, 그래서 외로우면 다운 타운에 오라는 노래가 있었나? 아니 내가 외로웠던가. 누구보다 부대끼고 복작거리는 삶 한가운데 서 있는데. 그랬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눈꺼풀이 감기고 몸이 물먹은 해면처럼 무거워져 온다. 내 몸은 이미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익숙해져 있고, 풀어헤쳐놓은 집안일과 회사 일이 보이지 않는 짐으로 내 어깨에 내려앉아 있다.



다시 차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하는 길. 핸들이 떨리는 것 같더니 컵 홀더가 진동한다. 슬쩍 보니 핸드폰이 울려대고 있다. 어디냐 언제 올 거냐를 묻는 전화인가. 나의 필요가, 나의 존재가 있어야 할 곳이, 내 인생의 어떤 시간대가 나를 무섭게 끌어당기고 있다.



이 시간도 금방 지나갈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가장 무언가를 강하게 열망하고, 해내고 있었던 시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끔 나와 내 바깥의 세계의 간극이 크레바스처럼 깊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몸으로, 내 인생으로 전혀 따라잡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크레바스. 그렇게 지난밤 나의 다운타운 나들이는 끝났다.



https://youtu.be/CrEmMWl-t9I


https://youtu.be/Wv5nd-3BRr4

1964년 petula clark 원곡 downtown


<Downtown>

When you're alone, and life is making you lonely

You can always go

Downtown

When you've got worries, all the noise and the hurry

Seems to help, I know

Downtown

Just listen to the music of the traffic in the city

Linger on the sidewalk where the neon signs are pretty

How can you lose?

The lights are much brighter there

You can forget all your troubles, forget all your cares

So go downtown, things'll be great when you're

Downtown, no finer place for sure

Downtown everything's waiting for you

Downtown, downtown

Don't hang around and let your problems surround you

There are movie shows

Downtown

Maybe you know some little places to go to

Where they never close

Downtown

Just listen to the rhythm of a gentle bossa nova

You'll be dancing with him too before the night is over

Happy again

The lights are much brighter there

You can forget all your troubles, forget all your cares

So go downtown, where all the lights are bright

Downtown, waiting for you tonight

Downtown, you're gonna be alright now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And you may find somebody kind to help and understand you

Someone who is just like you and needs a gentle hand to

Guide them along

So maybe I'll see you there

We can forget all our troubles, forget all our cares

So go downtown, things'll be great when you're

Downtown, don't wait a minute more

Downtown, everything's waiting for you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downtown


Source: LyricFind

Songwriters: Tony Hatch

Downtown lyrics © BMG Rights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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