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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Jul 07. 2024

<바다에 가자> 03.

3. 나, 명희

명희는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대사도 이상한 이 영화를 꼼짝 않고 보고 있는 까까머리가 신기하기만 하다. 영화가 끝나고 까까머리는 너무도 당당하게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에게 표 값을 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재빠르게 영화관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런데 해연에 저런 학생이 있었나. 영화관을 자주 드나드는 학생 얼굴을 모두 꿰고 있는 명희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현여사는 화장대 앞에서 꽃단장 중이다. 명희는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현여사는 명희 쪽을 한 번 보더니 ‘설거지해 놓고 응?’하며 나가버린다. 명희는 기가 차다.


명희는 안방 바닥에 배를 깔고 tv를 튼다. 수요일 8시 경찰청 사람들을 틀어놓고, 소리를 배경 삼아 연습장에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글 속 주인공은 민영으로 일기장에 적는 대로 소원이 이루어지는 초능력자다. 명희는 글을 적다 말고 ‘우리 가족 다 같이 살면 좋을 텐데’라고 적어본다. 그러다 지우개로 다시 그 문장을 벅벅 지운다.


명희는 등을 대고 눕는다. 길고 얇은 한숨을 허공에 대고 쉰다. 마치 담배를 피하는 사람처럼 이번에는 연필을 입가에 대어 본다. 그리곤 후우 하고 공기를 내뿜어본다. 형광등 불빛이 깜빡인다. 그때 명희의 집 창문으로 잔돌이 날아든다.


“ 이명희!”


명희는 고쳐 앉아 불안한 얼굴이 된다.


“나와!”


카랑하고 맵쌀한 목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온다. 명희는 한숨을 쉬고는 슬리퍼를 꺾어 신고 밖으로 나간다.

골목에는 아이들 여럿이 명희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 미연은 제일 대장 격으로 학생임에도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짝다리를 짚고 있는 미연 앞으로 명희가 다가선다.


“너 갖고 왔냐?”


명희는 도리질을 친다. 미연은 명희의 복부를 무릎으로 세게 친다. 명희는 그대로 주저앉는다.


“… 야. 니네 엄마가 우리 아빠를 꼬셔서 풍비박산 내고, 얘네 집엔 빚지게 해서 그 지경을 만들어 놨으면 양심은 있어야지. 매니큐어가 몇 개 가져오기 그렇게 힘들어? 어?”


“… 내일 꼭 가져올게…”


미연이 명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려는데, 누군가 빌라 골목 앞으로 들어선다. 자세히 보니 빌라 주인 할머니다.


“이년들아! 어디서 남의 귀한 자식 머리 채를 쥐어?!”


할머니의 벼락같은 소리에 미연과 아이들은 명희를 노려보다 돌아간다. 명희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할머니는 명희의 등을 토닥거린다.


“구신도 지 무서워하는 사람한테만 나타나는 뱁이다. 저 까짓것들 그래봐야 너랑 똑같은 인간이다. 할 말 있음하고 달려들고 싶음 달려들어.”





 



그 다음날 하교시간이 되자 교복을 입은 아이들 한 무리가 학교 밖으로 밀려 나온다. 명희는 학생 주임에게 붙들려 있다. 명희만 교복 상의가 흰 티셔츠다.


“아무리 옷이 덜 말라도 그렇지. 학생이 교복을 입어야지 이렇게 사복을 입고 오면 되니!”


“죄송합니다.”


그런 명희를 보고 미연 일행은 까르르 웃으면서 지나간다. 명희의 고개가 더 깊숙이 아래로 떨어진다. 학생 주임은 그런 미연 일행에게 너네도 마찬가지야! 하고 윽박지른 다음 명희에게 조금 부드러운 어조로 묻는다.


“명희야. 너 처음 전학 왔을 땐 안 그랬잖아. 왜 그러니 요새.”

“…”

“내일은 꼭 교복 입고 와. 알았니?”

“네…”


명희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멍히 바라본다. 버스는 읍내에 멈춰 선다. 읍내는 장날이라 사람이 많다. 잡화점 앞에 선 명희는 잠시 망설이다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선다. 잡화점 역시 발 디딜 틈이 없다. 가게 바닥에 잔뜩 놓인 붉은색 고무 소쿠리에는 각종 로션이며, 때밀이 수건들이 가득 담겨있다. 명희는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정신이 없다. 명희는 매니큐어를 한가득 집어 주머니 속으로 넣는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명희의 손을 낚아챈다.


“야.”


중저음의 보이스. 어제 낮에 극장에서 봤던 까까머리다.


“이거야 말로 도둑질 아냐?”


그 말에 명희는 얼굴이 새 빨개져 손에 잡힌 매니큐어를 그대로 던져두고 잡화점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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