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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Feb 22. 2022

지원자를 존중하는 채용절차와 면접

구직기간 동안 만난 '나'를 봐주는 면접관들에 대해 

2022년이 시작되고, 1월 초부터 나는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구직을 시작한 초기에 나는 한 채용대행사에서 보내준 이력서 양식에서부터 충격을 받았었다.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능력이 마땅히 우선시되어야 할 것 같았는데, 양식의 첫 장부터 각종 개인정보 요구가 쏟아져내려 마지막 장까지 나는 제대로 채울 용기가 나지 않아 그 회사 지원은 결국 포기했었다. 


하지만 한숨 나오는 이력서 양식 하나 받아보고 '한국은 10년 전과 똑같아'라고 평가해버린다면 나 또한 고리타분한 편견과 차별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저 이력서 양식과 뭐가 다르겠나 싶었다. 이 사회에는 분명히 차별적인 면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럴 거라는 편견은 가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직무와 관련 없는 개인정보들은 적지 않고 경력 위주의 이력서를 만들어봤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야에 자격요건이 맞는 회사들에 지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채용공고에서 하고 싶은 직무 중 '자격요건'만 보고 지원을 했다. 신입급으로는 많은 나이에 어중간한 경력을 가진 나로서는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채용공고도 찾기가 쉽지 않았기에 일단 다 넣어보자! 하고 지원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얼마나 성의 없는 태도였으며, 서로에게 무례한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회사에 대해 잘 알아보지 않고 지원한 결과가 처참했던 덕분이다. 성의 없는 지원은 채용담당자의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일이며(2분 정도는 큰 낭비는 아니지 않을까 싶지만), 혹여나 서류전형을 통과해도 면접에서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그 후에는 '자격요건'이 아니라 '회사'를 보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어떤 정보들을 어떻게 제공하는지, 채용공고에 얼마나 자세한 회사 및 직무소개로 자신들에게 맞는 지원자를 찾으려 했는지, 가치지향은 어떤지 등을 꼼꼼하게 찾아보고 나니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만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렇게 고심해 지원한 회사들에서는 서류전형에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스타트업 아니면 외국계 회사들이었다)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이 회사들에서 본 면접은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이력서에 경력상 공백이 많고, 직무를 여러 번 바꿨으며 심지어 경력을 시간 순대로 정렬하지도 않는 모험을 했는데(지원한 직무 관련도 순으로 정렬했다) 나를 면접에 부른 사람 혹은 회사들. 이들의 공통점은 가치지향적이고, 직무능력과 회사의 조직문화와 얼마나 잘 맞는 지원자인지를 알기 위해 많이 고민한 질문들을 던지며, 지원자인 나를 존중해주었다는 점이다. 


일단 면접의 시작부터가 다른 회사들과 달랐다. 이 회사들의 면접은 자세한 회사 소개와 직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것, 하고 있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내게 설명하고 합격 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어떤 것이고 자신들이 기대하는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채용공고에서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력서 상의 공백에 대해 묻기보다는, 직무 변경과 유학 결정의 동기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여기에 답을 하며 자연스럽게 공백기에 대해 설명하게 되었다. 내가 어떤 가치관과 동기를 가지고 직무와 회사를 선택하는지, 그 지향점이 회사의 이념과 잘 맞닿아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력서상에 나는 생년월일, 즉 나이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지 않았는데 이를 묻는 면접관은 없었다. 나이보다는 나의 사회경험과 실무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들을 받았다. 현재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예시로 준다던가, 가상의 문제 상황을 가정해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나를 소개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회사와 직무에 대해 질문할 시간 역시 넉넉하게 줬다. 마지막에 질문 있으시면 하세요- 하는 식이 아니라, 면접 중에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편하게 질문하시라고 해서 나는 정말 내 직무 외에도 회사에 대해 알아보면서 궁금했던 점들까지 자세히 물어보고 더 알아나갈 수 있었다. 


워라벨에 관한 직설적 질문이나 회사의 차별과 다양성에 대한 입장 등 회사 측에서는 껄끄러울 수 있는 질문들에도 현재 회사의 상황, 그리고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서 성의 있는 대답을 해 주었다. 나의 전공이 'Gender and Diversity'인 만큼 이에 대한 대화는 오갈 수밖에 없었는데, 젠더와 다양성에 대한 회사의 입장과 현실적으로 현재 가능한 부분과 아닌 부분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인권에 대해 공부한 만큼 나의 평등과 차별 등에 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회사에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느껴졌다. 


이러한 면접 경험들은 합격여부와 관계없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값진 시간이었다. 면접들을 거치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직무가 무엇인지, 거기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좋은 회사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나 자신도 커리어 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찾아야만 한다는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자신의 직무에 진심인, 회사를 '좋아하는' 함께 성장할 동료를 찾는 사람들은 이렇게 일하는구나. 여기서는 나의 나이나 성별이 중요하지 않고, 회사에 삶을 갈아 넣을 것을 강요받지 않을 것이란 인상을 주는 면접들. 무엇보다 지원자를 을로 보지 않고 회사를 위해 시간을 내서 준비하고 참여해 준 지원자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 이 회사들, 그리고 채용 담당자들의 앞길은 앞으로도 밝을 거라고 믿는다. 


앞으로 이런 채용 문화가 더 당연해지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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