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유치하다 왜 뭐 왜!
나는 디즈니를 사랑한다. 디즈니 영화 시그널에 등장하는 시그니처 캐슬 장면과 웅장한 음악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콩닥콩닥 너무 설렌다. 족히 몇백 번은 봤을 텐데 질리지도 않는다. 너무 좋다. 처음 디즈니샵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그 황홀함도 잊을 수가 없다. 서른 살 초반 즈음 런던이었다.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디즈니샵이었을 뿐인데 별천지에 온듯했다. 시간이 멈춘 듯 온 세상이 반짝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어느새 내 양손엔 가득가득 물건이 담긴 디즈니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밖을 나오니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다음 일정이 있어 나올 수밖에 없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누가 끌어내기 전까지 머물렀을 것 같다. 디즈니랜드는 물론 최고지. 말해 뭐해.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 없다는 디즈니 플러스는 내 최애 오티티이다. 또한 내 서재 책장은 디즈니 피규어와 인형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런 나를 가까운 친구조차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볼 때가 있다. 내가 이상한가. 하긴 이 나이에 그렇게 디즈니를 좋아하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럼 나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지?
우선 예쁘고 귀엽다.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자고로 예쁘고 귀여우면 그냥 끝이라고 했다. 특히 사용되는 색채도 선명하고 다양해 화려한 느낌을 준다. 보고 있자면 내 기분도 업되는 것 같다. 예쁘고 귀엽고 화려한 색감에 끌리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아무튼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즐겁게 하는 내 삶의 힐링 포인트들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선 이유는 아마도 어렸을 때 그런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해 한으로 남아서 일 듯하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어린이가 누려야 할 콘텐츠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우리 집은 꽤나 삭막했고 우리 부모는 성실했지만 어린이 눈높이에서 살뜰하게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린이들이 보는 티브이 프로그램도 잘 보기 어려웠다. 내 선택권은 방에 들어가 공부하거나 책 보는 정도. 꽤나 어린 나이였는데 이제 어린애 아니라고 의젓하게 굴라고 혼났던 기억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즈니는 무슨. 국내 만화영화나 만화책도 제대로 못 봤는데 뭘. 학교 가서 애들이 하는 디즈니 얘기를 듣고 너무 부러웠다. 뭔가 실체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접할 수 없는 선진 문화 느낌이랄까. 나만 모르고 돌아가는 세상. 그게 내 나름대로 한으로 남은 듯하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가 있는데 각 단계를 충분히 밟지 못하면 나중에 커서 퇴행할 수 있다고 했다. 뭔 소리여 할게 아니라 역시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도출된 결론은 무시하기 어려운가 보다. 나는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아동기를 누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 어렸을 때 못해봐서 한으로 남았다. 그런데 단순히 한이라면 그게 충분히 충족되면 서서히 줄어들어야 하는데 딱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마음이 복잡할 때 더 찾는다. 디즈니는 주요 타겟층이 어린세대라 그런지 내용이 쉽고 재미있고 창의적이다.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도 꽤나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이 복잡할 때 디즈니 영화를 한편 보면 힐링 그 자체이다. 내가 사는 현실 세계는 복잡하다. 나도 변하고 너도 변하고 관계도 변하고 세상은 더 빨리 변해 따라잡는 데만도 헉헉거린다. 그런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보고자 해결책을 생각해 봐도 경우의 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머리가 터져나갈 듯하다. 길이 보이지 않아 안갯속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디즈니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복잡해 보이는 세상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잔가지들이 걷히고 문제의 실체가 명확하고 단순하게 보는데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많은 아이들이 착각하듯이 나도 어렸을 땐 빨리빨리 크는 것이 좋은 줄 알았다. 그게 성숙이고 자아실현에 가까워지는 줄 착각했다. 고등학교 때는 허세가 절정에 이르러 어려운 책들을 끼고 다니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하겠다고 정말 온갖 주접을 떨어댔다. 아 너무 부끄러워. 공자가 그랬다고 한다. 쉰에는 하늘이 내려준 사명을 깨닫게 된다고. 그런데 그게 꼭 학문을 갈고닦아야만 닿을 수 있는 경지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실은 우리 인생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디즈니는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준다.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꼭 붙잡고 살아야 할 삶의 가치들 말이다. 살아가야 하는 길은 명확하고 단순했는데 내가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만들고 잔가지를 치고 더럽혀 복잡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단순한 삶의 자세의 중요성을 나에게 반복적으로 일깨워주는 디즈니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