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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박사님을 아세요?

보톡스와 필러말곤 없나요...

by 강나봉 Oct 20. 2023

얼마 전부터 두피가 간질간질하더니 하나둘 새치로 나던 흰머리가 우후죽순, 새싹이 돋듯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휑한 정수리에 흰머리까지 더하니 6500K 주광색 LED 핀조명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눈가 주름은 짓는 표정에 따라 아코디언 연주까지 가능해 보였다.

‘하... 굳이 만나서 회의를 한다고...’      


그동안은 코로나 방역 강화로 모든 업무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지만,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대면 회의 일정이 잡히기 시작했다. 결국 목소리 뒤에 숨어 은폐, 엄폐 가능했던 나의 나이가 전부 들통나기 전에 전반적인 외모 점검이 필요했다.      


광고주 담당자 대리, 거래처 담당자 대리.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그들은 누가 봐도 20대의 앳된 외모였다.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은 실제 나이는 고사하고 생물학적 나이, 심리적 나이, 생활나이 등등 어떤 핑계의 나이를 붙여도 불혹의 세월이 깃든 외모를 피할 수 없어 보였다.

‘불혹의 대리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냥 어렸을 때 한약을 잘못 먹었다는 흔하디 뻔한 이유를 들어볼까?’     


회사에서도 수시로 거울 보며 웃음과 정색을 반복하는 내가 신경 쓰여서인지 부장님이 그러지 말고 보톡스를 한번 맞아보라고 권했다.      


괜찮을까요?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데... 눈 안 감기고 그러지 않을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도 주기적으로 맞아.”

안 불편하세요?”

조금 뻐근하긴 한데 괜찮아, 어차피 마스크 쓰니까 강대리는 눈가랑 미간만 맞아~”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한참 이전에 언니가 보톡스를 맞고 온 적이 있었다. 잠꼬대하며 웃는 언니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 돌아보니, 경직된 눈은 엄(격)근(엄)진(지) 상태로 희번덕 반쯤 있었고, 입은 대조적으로 소리 내어 웃고 있었는데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웠다. 그때의 충격이 지금껏 보톡스를 기피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시술이 감쪽같다는 말에 결국 피부과를 방문했다. 시술의 고통을 이겨내고 며칠 지나니 신기하게 눈가 주름이 짜글짜글에서 ‘자글자글’ 정도로 잡히는 게 보였다.      

입사 후 대면 회의하는 첫날, 보톡스 효과에 두피용 검정 파우더 흰머리까지 감추니, 5살은 어려 보이는 듯했다.

'좋았어! 이 정도면 만학도로 졸업하고 입사했다 해도 믿겠어!'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나봉 대리입니다."      


그렇게 몇 번의 미팅과 회의가 지나는 사이, 코로나 방역이 더 완화되었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바뀌는 지침이 내려졌다. 퇴근 후 마주한 거울 앞에 서니 이번에는 깊게 팬 팔자주름이 눈에 띄었다.      


"뭘 걱정해~ 내 눈엔 태혜지보다 더 예쁘기만 한데~"

진짜~~?”     


빈말임을 알면서도 좋아지는 기분에 슬쩍 뒤돌아보니 남편은 텔레비전 속 걸그룹 ‘아이브’에 열광하고 있었다. ‘장원영’이 요즘 제일 인기가 많다느니, ‘지구오락실’ ‘안유진’이 참 괜찮다느니.

그날 이후로 나의 핸드폰에는 남편 이름이 '한때 좋아했던 오빠'에서 '인간아'로 저장되었다.

전혀 도움 안 되는 남편을 멀리하고 지식인들의 도움을 받고자 포털사이트에 ‘팔자주름 필러’,‘필러 효과’,‘필러 부작용’ 등 생각나는 대로 검색했지만, 부작용을 검색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은 나의 검색창이 보였다.

‘아이고, 됐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수박에 검은 줄 지워봤자 수박이지 뭐.’     


그간 경험과 배움이 깊어질수록 주름은 짙어졌고, 상처와 결핍에 초연해질수록 주름은 견고해졌다. 비록 훈장은 아니지만, 훈련의 상징과도 같은 주름을 더는 애써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필러의 부작용이 무서워서 자기 합리화로 결론 지은 건 아니라고 꼭 얘기하고 싶다.)     


아무튼 외모에 대한 걱정을 한결 덜고 나니, 젊고 일 잘하는 대리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나이 든 만큼 더 일 잘하는 대리가 되고픈 마음이 샘솟았다.

나만의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각 사별 니즈를 반영해 향후 방향성에 대해 정립했다.

일에 매진하는 동안 보톡스 효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주름 하나가 더 늘긴 했지만, 보상이라도 하듯 좋은 소식이 귀에 들어왔다.      


"강대리~ 이번 승진자에 포함됐어!!"

"~ 대리님 축하해요~~"      


일 년에 한 번 있는 인사발령에 내심 기대는 했지만, 그래도 바로 이렇게 선정될 줄은 몰랐다.     


"이제 강대리 아냐~ 앞으로 강 차장이라고 다들 불러~"

"? 차장이요??? 과장이 아니고 바로 차장요?"      


‘업계 소문났나.. 차장 같은 비주얼인데 직책은 대리라고..? 좋은데 찜찜하네...’


- 고속승진 강 차장의 비밀은 2부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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