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와 빌리 밀리건
개봉 2003.10.31.
장르 범죄, 스릴러
감독 제임스 맨골드
출연 존 쿠삭(에드), 레이 리오타(로디스), 아만다 피트(패리스)
러닝타임 90분
폭우가 쏟아지는 밤, 여배우를 태운 리무진 기사 에드는 잠시 시야를 놓쳐 사람을 치게 된다. 타이어 펑크로 잠시 정차 중이었던 피해자는 의식을 잃는다. 폭우로 도로가 물에 잠긴 탓에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에드와 피해자 일행은 급한 대로 인근 모텔로 들어간다. 오갈 수 없게 된 건 다른 행인들도 마찬가지, 끊임없이 싸우는 연인 한 쌍과 매춘부 여성, 죄수와 호송경찰까지. 모텔에 모인 10인은 방을 배정받고 으스스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어제 계단 위에서
거기 없었던 사람을 만났네
그는 오늘도 거기에 없었네
제발, 그가 가버렸으면 좋겠네
-휴즈 먼스, 안티고니시(Antigonish) 중에서
어디선가 거기 없는 남자에 관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저 하룻밤 쉬어가려 했을 뿐인데, 손님들은 방 번호 순서대로 한 명씩 죽어나가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살인범은 거기 없는 사람인 듯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범인이 누굴까 숨죽이는 사이, 죽은 사람들의 시신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모텔에 있던 사람들은 나이도 성별도 이름도 모두 달랐지만, 생일은 5월 10일로 같았다.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상이었다.
24개의 인격을 품은 빌리 밀리건
문득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나쁜 생각을 할 때, 부끄러운 욕망이 샘솟을 때, 대담한 거짓말을 하고 싶어질 때 과연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대부분 사람들은 낯선 모습도 안으로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자아를 여러 인격으로 쪼개고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는 한동안 이들을 다중인격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다중인격이라는 진단명이 대중의 관심을 끈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70년대 미국은 권위에 저항하는 히피의 시대였다.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은 국가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개인이 사회로부터 받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위로받는 심리치료가 확산되고 있었다.
1973년 저널리스트 슈라이버는 정신과 의사 윌버와 함께 한 여성의 정신분석의 기록을 책으로 내놓았다. 셜리 메이슨이라는 여성이 아동기에 겪은 학대로 인해 16개의 인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슈라이버의 저서 <시빌(Sybil)>은 개인의 고통을 사회가 경청해야 할 이야기로 만들었다. 정신의학계는 1980년 정신의학 진단체계 DSM-III에 다중인격이라는 진단명을 정식으로 추가했다.
바로 이 시기,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William Stanley Milligan, 1955~2014)은 오하이오주의 대학가에서 세 명의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달아났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흉악 범죄자였다. 그러나 밀리건은 뜻밖에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시빌>의 주인공을 분석했던 윌버 박사가 다중인격으로 소견서를 써 주었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이 상당한 권위를 갖던 시절이었다.
윌버는 밀리건이 어린 시절 계부로부터 심한 신체, 성적 학대로 인해 다중인격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밀리건은 감옥 대신 치료보호 시설에서 10년이 조금 넘는 세월을 보냈다.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감옥에 가지 않은 첫 사례였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는 다중인격이라는 용어 때문에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관점으로 보면 DID는 새로운 인격이 생긴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뇌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에 가깝다. 정신의학계는 수정사항을 반영해 DSM-IV에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로 진단명을 개정했다.
해리라는 단어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정상적인 뇌에서는 자아를 인식하는 회로, 위험이나 감정을 감지하는 회로. 판단과 행동을 조절하는 실행 회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기억과 감정, 도덕적 판단이 하나로 묶여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DID에서는 이 연결이 끊어지거나 약화된다. 어린 시절 반복적인 학대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 뇌는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대신 쪼개어 버린다. 미로처럼 연결된 수많은 방과 방 사이 문을 닫아버린다고 할까.
밀리건을 2년 간 취재하고 실화에 근거한 소설을 쓴 다니엘 키스는 밀리건이 시간의 개념을 잃어버리고 살았다고 언급한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풀어보면,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편도체가 과활성화되는 반면, 해마의 기능은 억제되기 때문이다. 감정은 강하게 남지만 언제, 어디서, 누가라는 기억은 제대로 저장되지 않는다. '제가 그런 게 아니거든요.'라는 논리는 기억상실에서 나온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알츠하이머 환자와 유사한 점이다.
다니엘 키스도 처음에는 밀리건을 믿기 어려웠다. 밀리건에게는 무려 24개의 인격이 있었고, 이들은 나이도, 성별도, 출신도, 지능마저도 달랐다. 이것이 연기였다면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DID 환자의 뇌를 기능성 MRI나 핵의학 이미지로 촬영해 보면 인격이 달라질 때 감각과 언어 처리 영역, 감정 조절 회로의 활성 패턴이 달라진다. 뇌 안에 수많은 방이 존재한다면 그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불이 켜지듯 말이다. 의도적인 연기보다는 생물학적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흉악범을 심신 미약으로 감형해 주어도 될까
밀리건이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았다고 해서, 그를 감옥 대신 병원으로 보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법적인 근거는 무엇일까?
1843년 영국의 다니엘 맥노튼은 편집성 망상을 앓고 있던 중, 토리당이 자신을 박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당시 영국 총리는 로버트 필이었지만, 맥노튼은 비서 에드워드 드러먼드를 총리로 잘못 알고 총으로 쏘았다. 드러먼드는 사망했다.
재판에서 맥노튼은 정신 이상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무죄판결을 받았다. 영국시민들은 판결의 부당함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호소했고, 여왕은 사법부에 보다 폭넓은 해석을 요구해 맥노튼 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맥노튼 법에 의하면 범죄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 행위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알고 있어야 유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특정 진단명이 곧 무죄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조현병처럼 망상과 환청이 명백히 존재하는 질환에서도 범죄의 순간에 정말 그 병으로 인한 망상이 작동했는지는 전문의의 정신 감정을 통해 신중하게 결정된다.
밀리건은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10여 년을 보낸 뒤 여동생의 도움으로 살다가 암에 걸려 2014년 사망했다. 병원을 나온 뒤 어떻게 살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오하이오 주립병원을 비롯한 몇몇 정신병원을 드나드는 동안 여전히 성폭행과 몇 가지 범죄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정식 수사기록은 없다. 한편 넷플릭스에서 몇 년 전 제작된 다큐 <빌리 밀리건>에서는 판결 이후 밀리건의 행적을 다루면서 각종 논란의 범죄들을 다루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면 영화의 주인공 말콤 리버스는 병원으로 호송되는 중에 이미 살인을 저지른다. 빌리 밀리건에도 존재했던 15세 남아, 티모시가 범인이었다.
밀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2017년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아이덴티티 23>도 있다. <아이덴티티>가 범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아이덴티티 23>에서는 성폭행 납치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 범인과의 상호작용까지 폭넓게 다룬다. 두 영화 모두 범인은 악인으로 묘사되며, DID라는 병명은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왜 하필 모텔이었을까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을 때 7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뒤에서 내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갔다. 아이의 할머니는 흘끔 보더니 모르는 척 음식을 주문했다.
"애가 잘 모르고 그런 것 같아요."
할머니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행동은 잘못이 맞다. 다만 아이에게 형사, 민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뿐이다. 밀리건 역시 무죄가 아니라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법정의 판결이었다. 그러나 밀리건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을 뿐 사건 당시에는 아이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환상 속에 만들어 낸 또 다른 자아를 현재로 데려오는 순간, 범죄자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거기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영화에서 살인범 말콤은 아이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 모텔인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말콤은 어린 시절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나 모텔에 홀로 방치되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주 당국으로부터 구조되어 성장했다. 현재는 살인죄로 기소되어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였다.
매니저를 제외한 9명의 손님으로는 매춘부, 남자를 잡기 위해 임신했다고 거짓말한 여성, 친부의 학대를 받았으나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는 아이, 호송 중인 죄수와 전직 경찰이 있었다. 모든 것이 말콤의 과거로부터 현재로 연결되는 인물들이다.
'매춘부 인생에 2막 같은 건 없어!'라는 티모시의 대사는 자신을 방치했던 친모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을까.
밀리건은 어린 시절 학대의 피해자였을지 모르나 사건 당시에는 가해자였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현상은 대중의 눈을 가리는 쇼닥터와, 냄비처럼 들끓는 여론이 만났을 때 일어난다. 가해자의 편에 서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대중이 두 눈을 크게 뜨는 수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영화관에 간 뇌과학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편을 더 채워 20편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저의 내공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
뇌과학자는 아니지만 우리 뇌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생존과 연결이라는 두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뇌는 옳고 그름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진화해왔고, 신경세포 뉴런이 서로 연결되며 기억과 감정, 이성과 판단을 만듭니다. 어느 한 지점에 국한되어 있지 않기에 이터널 선샤인에 나온 방법처럼 기억을 지울 수 없기도 하고요. 수많은 세포들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에서 인간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복잡하지만 나름의 패턴이 있다는 것이죠.
생존을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 우리 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뇌의 작용이었다고 한다면, 쭈글쭈글하고 못생긴 장기지만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피부 노화를 막기 위해 화장품과 피부 관리, 시술에 신경을 쓰듯 우리 뇌의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글쓰기가 정말 좋다고 해요.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님들을 응원하고 또 배웁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