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스탠 바이 웬디

by sweet little kitty

스탠바이 웬디(Please stand by)


개봉 2018.01.26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벤 르윈

출연 다코타 패닝(웬디), 토니 콜렛(스코티 원장)

원작 마이클 골람코, Please Stand By (2008)

러닝타임 93분


웬디는 스코티가 운영하는 재활치료 시설에 산다. 요일별로 미리 정해진 색의 옷을 입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일과를 보낸다. 빵집에서 시나본을 만들고, 손님에게 권하는 일도 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즐겁게 몰입하는 시간이 있다. TV 시리즈 스타트렉을 보는 것이다. 스타트렉은 1966년에 시작된 TV 드라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웬디는 스타트렉 덕후다.


요즘 웬디는 스타트렉에서 주최하는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대본을 쓰고 있다. 글쓰기는 웬디가 스타트렉만큼 좋아하는 일이다. 평소 일상과 감정을 나누는 대화에서는 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기 어렵지만, 글은 이내 써 내려갈 수 있다.


웬디에게는 언니 오드리가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오드리는 웬디를 돌보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자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재활시설에 맡겼다.




자폐 스펙트럼과 사회적 뇌


자폐스펙트럼장애(ASD)는 20세기까지도 이해하기 힘든 질환이었다. 아동기 조현병, 정신증으로 불리던 자폐증은 1968년 진단 기준이 정리되고, 1994년 DSM-IV가 발간되면서 발달 전반에 걸친 문제, PDD로 인식되었다. PDD는 5개의 아형으로 분류되었다가 이러한 분류가 크게 의미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2013년 DSM-5에서는 ASD로 통합되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ASD의 발병 원인을 특정 약물에서 찾으려고 하는 시도는 이미 오래된 오해다. ASD는 유전적 소인이 높아 80%의 유전율을 보이고, 관련 유전자 부위에 관한 연구도 많다.


사회적 뇌(social brain)라고 추정되는 영역이 있다. 전전두엽 피질, 편도체, 상측두이랑, 내측전두피질, 거울신경세포계 등으로 구성되며,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역할을 한다. ASD에서는 이 영역들의 연결과 통합이 저하되어 시선 처리나 표정 인식, 언어적 맥락 해석이 어렵다고 추정한다. 편도체는 타인의 감정적 신호를 ‘정보’로 구분하지만, ASD에게는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 거울신경세포계의 활성 저하는 타인의 행동 의도를 추론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감정은 있지만 감정을 해석하는 경로가 다르다.

웬디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과도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고맙다 ‘는 표현도 자연스럽지 않다. 도넛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 니모가 건네는 선물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지만, 니모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다.


ASD 진단의 핵심 증상은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한정된 관심분야, 반복되는 상동 행동이다. 웬디는 원장 스코티와 나팔을 불어 인사하고, 허공에 허그를 한다. 언어 기능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상적인 감정을 나누는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또 웬디의 관심분야는 스타트렉으로 한정된다. 집착에 가까운 몰입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신기한 모습이다. 웬디의 직장 동료들은 스타트렉에 나오는 디테일 하나하나를 웬디가 맞추는지 돈을 걸고 내기할 정도다. 이는 ASD의 핵심 증상인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한정된 관심분야, 반복되는 행동을 보여준다.


웬디는 공들여 쓴 원고를 스코티 원장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원장의 아들도 웬디의 원고를 읽게 된다. 스타트렉에 집착하는 웬디의 내면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원장은 아들로부터 합리적 추론을 듣게 된다. 웬디가 좋아하는 캐릭터 스팍은 반은 외계인, 반은 인간이다. 그래서 감정처리를 어려워한다. ASD 역시 감정처리를 어려워하고, 논리와 규칙을 좋아한다. 스팍은 웬디와 닮아 있는 캐릭터다.




'쓰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웬디


파라마운트 제작사에서는 스타트렉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 시나리오를 공모하고 있다. 2월 16일 오후 5시가 마감이다. 웬디는 이미 400 페이지가 넘는 시나리오를 손수 완성했다. 오드리가 방문하던 날,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싶었던 웬디는 언니와 다투게 되고, 우편을 보낼 시간을 놓치게 된다. 주말에는 우편물을 수거하지 않고, 월요일은 공휴일인 데다가 화요일이 마감이니 웬디는 애가 바짝 탄다. 예전과 달라졌어도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오드리의 말에 크게 상심한 웬디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LA로 향한다.


웬디의 삶은 한 번 가본 식당에만 가는 사람과 같다. 해 보지 않은 일,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웬디로서는 극도의 공포였다. 그러나 공들여 쓴 시나리오를 제출하겠다는 웬디의 의지가 더 강했다. 이 여정에는 두 가지 감동 포인트가 있다.


분신 같은 강아지 피트를 데리고 시외버스를 탄 웬디는 반려동물 탑승 금지‘라는 팻말을 보자 손으로 가린다. 왜 손으로 가렸을까? 사실은 강아지를 가려야 하는데, 웬디의 눈에는 금지팻말이 더 신경 쓰인다. ASD인 웬디에게 규칙이란 안정감을 주는 방패 같은 존재다. 규칙을 어기는 행위는 혼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지금 웬디는 먼 길을 떠나야 하고, 피트는 유일한 친구이자 의지할 존재, 돌보아야 할 존재다. 규칙을 어기는 것은 너무 불안하지만, 우선순위를 선택하기 위해 규칙을 잠시 어기는 것은 웬디로서는 인생 최초의 유연한 결단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웬디는 또 한 번 규칙을 어기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원고를 챙겨 파라마운트 사에 도착했지만, 직원은 우편으로 도착하지 않았다며 원고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웬디는 감정적 과부하를 보이는 대신, 혼잣말로 할 말을 연습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요?..... 그냥 저 사람들처럼 기회를 한 번 달라고요. “


예외는 없다는 직원의 말은 평소 웬디의 융통성 없는 삶과 닮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웬디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수없이 겪어야 할 장벽처럼 느껴진다. 웬디는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리고, 고집불통 직원이 어이없어하는 사이를 틈타 재빨리 서류함에 자신의 원고를 밀어 넣는다.

문득 웬디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할머니에게 ”나는 작가예요. “라고 당당히 말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 내가 누군지 알아?‘와 ’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라는 질문은 원고를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웬디는 이 험난한 여정을 통해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어 제목은 <스탠 바이 웬디>지만, 원제목은 <Please Stand By>다. 웬디가 길을 건너기 전 신호등을 체크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감정으로 과부하되었을 때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쓸 수 있다. 그러나 웬디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ASD가 있어 당신들과 조금 다르지만, 그런 저를 이해하고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림보다 글이 어려운 이유


자폐 스펙트럼 작가라고 검색해 보면 대부분 화가가 많다. ASD에서는 언어처리를 담당하는 전두엽-측두엽 경로보다, 시각·공간 처리를 담당하는 후두엽-두정엽 경로가 더 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세상을 단어보다 이미지로 인식하며, 생각을 시각적으로 조직하는 경향이 있다.


언어는 사회적 맥락과 감정 해석이 필요하지만, ASD에서는 이러한 사회언어적 처리 영역의 연결이 약해 언어적 표현이 원활하지 않다. 반면 그림은 즉각적이고 감각적이어서 색이나 선, 형태로 바로 전달할 수 있다. 글쓰기는 문장을 순차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시간적 언어이지만, 그림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적 언어다. 그래서 ASD를 가진 사람은 글쓰는 일보다는 회화나 조형예술에 더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SD면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1947-), 엘 맥니콜(Elle McNicoll), 조너선 미첼(Jonathan Mitchell) 등이다.


템플 그랜딘, 나는 언어 대신 이미지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템플 그랜딘은 미국의 동물학자로, 어린 시절 자폐증으로 진단받았지만 그랜딘의 어머니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정교사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규범을 가르쳤고, 좋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기숙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그랜딘은 동물학 박사를 취득한 후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준교수가 되었고,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나 가축시설을 설계했다. 그랜딘은 서번트 증후군에 가까우며 예외적인 인물이지만,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이해가 낮은 시대에 공감과 교육을 통해 사회에 적응한 인물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생각한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ASD가 있는 사람들은 감정이나 생각을 언어보다 시각적 형태로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그랜딘은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Thinking in Pictures)>, <동물과의 대화>등 여러 책을 썼다.


엘 맥니콜은 영국의 아동문학 작가로, <A Kind of Spark>에서 자폐스펙트럼 소녀의 감각세계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조너선 미첼 (Jonathan Mitchell)은 미국의 작가이자 블로거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남성이 경두개 자기 자극 치료를 받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 이들의 언어는 내면의 섬세한 감각을 표현하면서도 비유보다 논리를 선호하는 특징이 있다.


성공이 아닌 성장 스토리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할 공모전 결과는 아쉽게도 ’ 탈락‘이었다. 웬디는 실망하지만 익숙한 듯 일상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성장 스토리라는 점이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웬디의 강아지 피트가 혼자 동네를 걸어가 대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피트는 왜 혼자였을까? 어쩌면 웬디도 피트처럼 홀로 걸어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뜻 같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사회적 의사소통이 어려워도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단어 뒤에는 '장애'라는 말이 붙는다. 그러나 이 단어는 병원에서 의학적 도움을 받을 때, 또는 사회복지를 위한 행정적 절차에 주로 필요한 용어가 아닐까. 사회로 나오는 순간 장애는 목적없는 낙인이 되고 만다.


웬디는 결국 홀로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 오드리도, 재활시설의 원장 스코티도 웬디의 곁에 영원히 있어줄 수는 없었다. 언젠가 해내야 하는 홀로서기를 웬디는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서 찾았다. 세상이 장애라고 부르는 무언가를 가졌다 해도, 한편으로는 삶은 공평하다. 쓰는 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당당하게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웬디는 다른 작가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다 보고 웬디에게 연민을 느끼는 대신 배움을 얻었다. 나라면 원고를 받아주지 않는 영화사 직원에게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라면 거침없는 소녀 웬디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3화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