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마약중독자의 이야기, 뷰티풀 보이
뷰티풀 보이
개봉 2018.10.12
장르 드라마
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
출연 티모시 살라메(닉 셰프), 스티브 카렐(데이비드 셰프)
원작 닉 셰프와 데이비드 셰프의 회고록
러닝타임 121분
수상내역 2019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스포트라이트 어워드)
어느 날, 아들 닉이 없어진 걸 알게 된 아버지는 아들 닉이 그동안 마약을 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려고 했던 닉은 재활시설에도 들어가 보고,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닉은 결국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아들과 아버지의 추격전 같은 마약 중독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닉은 다시 마약에 빠지게 되고, 남은 가족들의 삶마저 파괴되어 간다. 아버지 데이비드 셰프는 무엇보다 소중하게 키운 아름다운 아이가 마약에 빠져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2018년 개봉한 영화〈뷰티풀 보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약으로부터 회복의 서사다.
마약에 잘 빠지는 뇌가 있을까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보상과 기억, 스트레스 회로의 불균형으로 인한 질병이다. 도파민 수용체가 적거나 과민한 사람은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쾌락을 담당하는 측좌핵이 먼저 성숙하고, 이를 억제하는 전전두엽은 늦게 발달해 충동 조절이 어렵다.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편도체와 해마가 과활성화되어 불안–약물–금단의 악순환이 고착된다. 닉은 어린시절 부모가 이혼했지만 아버지의 사랑으로 건강하게 성장한 편이었다. 닉이 청소년기 마약중독에 빠진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중독에 빠지기 쉬운 청소년기의 특징에 더불어 마약에 접근하기 쉬운 사회적 여건 때문일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학 진단체계인 DSM-5에서는 중독(addiction)대신 물질사용장애(Substance Use Disorder)라는 용어를 쓴다. 약물 사용이 뇌의 보상·동기·기억 회로를 변화시켜 통제력을 잃고 반복되는 상태로, 12개월 내 계획보다 많은 사용, 중단 실패, 강한 갈망, 사회·직업 기능 저하, 위험 상황에서도 사용, 내성, 금단 등의 기준 중 2가지 이상이면 진단된다. 중독은 보상 시스템의 병적 적응으로 인한 통제력 상실과 갈망의 악순환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저드슨 브루어(Judson Brewer)는 그의 저서 <중독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The Craving Mind)>에서 중독을 보상학습의 왜곡된 형태로 설명한다. 스트레스나 불안, 외로움 같은 감정이 자극요인이 생기면 중독 물질이나 행위를 통해 일시적으로 긴장이 해소되고 쾌락을 느끼게 된다. 자극요인이 행동을 유발하고 보상을 얻게 되면 우리 뇌의 보상회로가 활성화된다. 특히 중뇌의 복측피개영역에서 측좌핵을 거쳐 전전두엽으로 가는 경로가 강화되고, 갈망(craving)이 작동하는 습관 회로가 형성되는 것이다. 브루어는 중독 물질이나 행위를 끊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갈망 행위에 대한 자각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본다.
영화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닉 셰프는 1982년생으로, 청소년기부터 알코올과 마리화나를 시작으로 LSD,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등 다양한 약물에 중독되었다. 닉의 자전적 회고록 <Tweak: Growing Up on Methamphetamines>은 아버지 데이비드 셰프의 <Beautiful Boy: A Father’s Journey Through His Son’s Addiction>과 함께 영화의 원작이 되었다.
닉은 영화에서처럼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영화는 실화와 차이도 있는데, 실제 닉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재활원을 계속 드나들었고, 치료 과정에서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 영화는 이러한 정신과적 문제를 최소화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중심에 두었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메스암페타민을 직접 해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터뷰에서 닉은 실제로 아버지가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메스암페타민은 매우 강력한 마약으로 한 번이라도 노출되면 중독될 염려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실제로도 그랬을까 싶었던 부분이었다.
크리스털 메스, 잔혹한 결정체
뷰티풀 보이>에서 주로 다루는 마약은 메스암페타민이다. 닉은 다양한 마약을 접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메스암페타민이었다. 메스암페타민은 19세기 후반 일본의 화학자가 추출하여 개발한 물질로, 도파민의 분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중추신경 흥분제다. 처음에는 피로감을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는 피로회복제로 인식되었다. 우리에게는 필로폰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약이다. 필로포누스(Philophonus) 란 '노동을 사랑하다'라는 그리스어로 일본과 독일에서는 노동자와 군인에게 사용되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 마법의 피로회복제는 많은 사람들을 중독시켰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필로폰의 위력은 오래 지속되었고,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단속이 심해지자 일본의 필로폰 공급자들은 생산 공장을 우리나라로 옮겨 왔다. 이전까지는 일제 강점기부터 문제가 되었던 아편, 모르핀류가 우리나라의 문제 마약이었지만, 1970년대부터는 메스암페타민이 문제가 되었다. 아편, 모르핀류가 진통 효과가 있는 진정제라면, 메스암페타민은 각성제로 기분도 좋아지고 어떤 일이든 효율이 올라갔다.
메스암페타민은 처음 투약했을 때 바로 부작용이나 금단증상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투약자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일단 경험한 강렬한 도파민 과잉은 우리 몸의 도파민 분비체계를 억제하고, 처음 느꼈던 강렬한 자극을 잊지 못해 다시 투여할 경우 즐거움이 줄어든다. 메스암페타민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메스 마우스(Meth Mouth)'라고 불리는 구강증상이다. 입이 바싹 마르고 치아는 손상된다. 신경이 과각성되어 조금만 가려워도 피부를 긁게 되고 피가 날 때까지 긁는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심장의 이상이다. 메스암페타민은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도 증가시켜 심박수 증가, 혈압 상승, 혈관 수축을 일으키고, 이는 심근경색이나 부정맥, 급사를 일으킬 수 있다. 영화에서 닉과 함께 마약을 하던 여성은 차에서 갑자기 심정지가 오고, 닉은 심폐소생술을 하며 119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마약의 세대교체, 펜타닐
영화 속 배경은 2000년대, 미국에서 메스암페타민이나 옥시콘틴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시기다. 하지만 2020년대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오늘날 북미지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약물 중독의 중심에는 펜타닐(fentanyl)이 있다. 펜타닐은 패치 형태로 피부에 붙이면 강력한 진통효과를 보여, 암 환자 등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주로 처방되던 약이다. 인턴 시절, 병동에서 펜타닐 패치를 처방하면 수기 마약 처방전에 인턴 의사가 반드시 서명을 한 뒤 약국에서 타 올 수 있었다.
1950년대 폴 얀센이 창업한 벨기에의 제약회사 얀센은 기존에 화학구조가 알려진 의약품을 개선해 몇 가지 신약을 만들어냈다. 그중 메페리딘이라는 약물은 1930년대 독일에서 설사와 복통을 치료하는 자율신경 조절제로 개발되었는데, 판매 직후 진통효과를 알게 되었다. 얀센은 메페리딘이 중추신경계로 잘 흡수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했다. 처음에는 그다지 인기 있는 약물이 아니었지만, 미국 FDA 승인을 받고 심장 수술에 전신마취제로 쓰이게 되면서 유명해졌다. 흡입형태로 사용하는 전신마취제는 수술시간이 길어지면 호흡과 심장에 무리를 주어 심장 수술에는 심장에 무리가 적은 모르핀을 사용했는데,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적은 용량으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모르핀의 구조를 개선한 암 환자를 위한 진통제 옥시코돈이 퍼듀 사의 비윤리적 행위로 1995년부터 옥시콘틴이 되어 일반 진통제처럼 유통되면서 중독자가 늘어나자, 미국정부는 2010년 옥시콘틴을 남용방지 제형으로 새롭게 승인했다. 더 이상 예전의 옥시콘틴을 구할 수 없었던 중독자들은 서방형 펜타닐 패치를 씹어 먹거나 주사로 추출하여 불법 제조했다. 이렇게 불법 제조된 형태는 헤로인의 50배 이상 강력한 진정 효과를 낸다. 문제는 이 약이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등과 섞여 불법 유통되면서, 사용자들이 자신이 펜타닐을 복용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7만여 명이 합성 마약 남용으로 인해 사망했다. 이 합성마약의 대표적인 성분은 펜타닐이다. 1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미군이 5만 3천 명이라고 하니 그보다 많은 숫자가 한 해에 죽어가는 것이다. 2023년 미국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19개월 영아가 갑자기 사망했는데, 부검 결과는 급성 펜타닐 중독으로 이불에 남아 있던 미량의 펜타닐에 노출된 것으로 보았다. 마약중독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중독자 본인과 가족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뷰티풀 보이>의 닉이 2020년대 처음 마약을 접했다면, 닉이 투여했을 약물은 메스암페타민이 아니라 펜타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물이 무엇이든 간에 본질은 같다. 마약은 정상적 신경 회로를 파괴하고, 의지로 끊을 수 없는 질병이다.
아직 회복 중이라는 말의 의미
영화의 엔딩에는 '닉은 2011년부터 회복 중이다.'라는 자막이 뜬다. '회복됐다(recovered)'가 아니라 ‘회복 중(recovering)’이라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중독의 치료를 완치의 개념으로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번 우리 뇌에 침투한 강렬한 쾌락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삶의 불안과 고독은 언제든 약물의 기억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마약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은 단순히 약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진정시키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닉은 특히 글쓰기를 통해 방법을 찾았다. 실제로 닉은 회복 후 작가이자 강연자로 활동하며,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수렁에서 구한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가 '너는 여전히 내 아름다운 아이(Beautiful Boy)야'라고 한 말은 이 모든 진흙탕 바닥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린다. 자식을 향한 뜨거운 내리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