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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종교체험은 사기일까

성녀에서 죄인이 된 수녀, 베네데타

by sweet little kitty

개요 드라마

개봉 2021.12.01

감독 폴 버호벤

출연 비르지니 에피라(베네데타), 샬롯 램플링(펠리시타 수녀원장), 다프네 파타키아(바르톨로메아)



성녀인가 사기꾼인가


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북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작은 도시 페샤(Pescia)에서는 수녀 베네데타의 종교재판이 열렸다. 베네데타는 예수를 직접 보았다는 신비주의자 수녀로, 몸에는 출혈을 동반한 성흔(stigmata)이 생기곤 했다. 성녀로 추앙받으며 30세에 원장수녀가 된 베네데타는 거짓 성흔과 동성애 의혹으로 고발당하고,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베네데타 카를리니(Benedetta Carlini, 1590-1661)는 페샤와 인접한 산골마을 벨로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800명이 사는 마을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가정이었다. 영화에서 아버지 줄리아노가 '과일과 포도주를 25년간 수녀원에 제공하겠다'라고 한 대사를 보면, 토지와 농장을 소유한 부유층이었을 확률이 높다. 난산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태어난 베네데타의 이름은 '신의 축복'이라는 뜻이었다. 신앙심이 깊고 총명했던 베네데타는 9세에 테아티노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언뜻 부유한 가정의 귀한 딸을 일찍부터 수녀원에 보낸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16-17세기 이탈리아에서 수녀원은 여성이 가정을 벗어나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귀족의 딸이나 과부들은 돈을 내고 수녀원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수녀원의 수입원은 입회하는 여성들의 지참금과 노동이었다. 베네데타가 속한 테아티노 수녀원은 견사 제조가 주요 작업이었다. 수녀원 내에는 정치와 경제가 존재했고, 권력과 돈으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베네데타의 부모는 똑똑한 딸이 결혼해서 가정에만 머무르는 것보다, 자신들이 후원하며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수녀원에 보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부유한 신랑을 맞이하려면 1500 스쿠디의 지참금이 필요했다. 반면 귀족의 딸들이 입회하는 수녀원에 들어가려면 400 스쿠디가 필요했으니 괜찮은 선택지였다. 베네데타가 입회한 테아티노 수녀회는 한 과부가 설립한 종교시설로, 페샤의 다른 수녀원에 비해 입회비가 저렴했다. 영화에서 베네데타는 100 스쿠디에 매년 수녀원에 음식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입회한다.




베네데타는 수녀원의 회계장부까지 다룰 수 있는 재원이었다. 베네데타의 재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점차 예수의 환영을 보게 된다. 수녀원에서 열린 연극에서는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를 연기하다가 예수의 환영을 보게 되고, 현실과 착각해 누워 있는데도 발을 움직인다. 또, 동료 수녀 바르톨로메아가 베네데타의 몸을 만지며 유혹하자 뱀이 나타나 몸을 휘감는 환영을 보게 된다. 베네데타의 환영은 조용한 묵상과 수행의 시간에 만난 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녀가 처한 현실과 심리변화를 보여주는 영화 같다.


어느 날 베네데타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 다가가 손을 포개는 환시를 겪게 되고, 이후로는 환영을 보는 대신 남성의 목소리로 예수의 말을 전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빙의, 또는 다중인격(해리성 정체성 장애)처럼 보인다.


수녀원 밖 백성들과 수녀원의 고해신부는 이러한 베네데타를 의심하지 않고 지지한다. 사람들이 성인, 성녀에 집착한 이유는 당시의 감염병 페스트와도 관계가 깊다. 원래 페스트는 14-15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1630년부터 31년까지 이탈리아 북부에서 페스트 팬데믹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성인을 통해 감염병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했다.


고해 신부가 베네데타의 편을 든 것은 복잡한 속내가 있어 보인다. 베네데타는 예수의 목소리를 빌려 고해신부의 공을 치하하는 말을 했다. 주디스 브라운의 책에 의하면 당시 신비주의자 수녀들은 고해신부의 허락이 있어야 신비주의자로 인정받았다. 무의식 중에 신의 목소리를 빌렸다고 해도, 베네데타는 뇌물의 언어를 쓴 게 아닌가 의심이 간다. 또 신부들이 모여 회의하는 장면을 보면, 페샤는 작고 소외된 교구였다. 성인을 배출해 변방에서 출세한 아시시 교구처럼, 페샤에서 성녀가 배출되면 교구에 이득이 되겠지.


실존 인물 베네데타는 지적인 능력과 행정능력에 더불어 성녀로 추앙받으며 젊은 나이에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영화처럼 거짓 성흔과 신비체험, 동료수녀 바르톨로메아와 동성애 의혹으로 수녀원에 30여 년간 감금되었다. 베네데타는 1661년, 71세의 나이에 고열과 복통으로 수녀원에서 사망했다. 비운의 수녀는 주디스 브라운이라는 미국 역사학자의 책 <수녀원 스캔들>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다.


<토털 리콜>, <로보캅>, <원초적 본능>, <스타십 트루퍼스> 같은 명작을 남긴 폴 버호벤 감독은 2021년 주디스 브라운의 원작을 각색하여 영화로 내놓았다. 17세기 수녀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극적인 환시와 성흔에서 피 흘리는 모습, 여성 동성애 장면, 고문과 종교재판, 페스트의 창궐, 교황 대사의 비리로 가득 찬 영화는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뇌과학과 절대적 일체상태


앤드류 뉴버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핵의학과 교수로, 과학자의 입장에서 종교와 초월적 종교 체험에 대해 집중 연구했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이자 티베트 명상 수행자가 명상하는 과정을 기다렸다가 핵의학 검사 SPECT를 통해 뇌의 변화를 분석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PET이 주로 종양을 찾아내고 조직의 포도당 대사를 확인하는 검사라면, SPECT 검사는 장기의 혈류를 측정하는 핵의학 검사다.


우리 뇌의 앞부분에 위치하는 전두엽은 주의집중을 담당하고, 위쪽 뒷부분에 위치하는 두정엽은 몸의 위치와 상태 등을 인지한다. 뉴버그는 자아와 외부의 경계를 지각하는 좌측 상후두정엽과 신체의 물리적 위치, 공간지각을 담당하는 우측 상후두정엽을 정위(Orientation) 연합영역이라고 이름 붙이고, 명상 중 두 부위의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SPECT를 통해 확인했다. 수행자들은 이때 '자아'라는 감각이 사라지고 초월감, 일체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어떻게 자아와 세계의 구분이 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사실 오래전, ‘자아’를 인식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신생아 시기 자아와 타인을 구별하기 이전에 쾌-불쾌의 구분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아기는 배가 고프면 울고, 배가 부르면 만족하며 놀거나 자는 본능적 존재다. 처음에는 나와 엄마가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성장하면서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감각을 통해 학습하며 자아와 세상을 익혀 나간다.



명상을 통해 전전두엽의 의지로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억제신호가 변연계와 시상하부를 거쳐 자율신경계로 내려간다. 우뇌의 전전두엽에서 활동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분비되면, 변연계를 거쳐 도파민 보상회로가 활성화된다. 쾌락과 보상중추인 도파민 회로는 명상뿐 아니라 육체적 쾌락을 느끼는 회로이기도 하다.


강렬한 리듬에 맞추어 노래와 춤을 반복하는 종교적 의식에서는 반대로 감각이 자율신경계를 서서히 흥분시키다가 대뇌피질까지 올라가 초월적 경험을 일으킬 수 있다. 예로부터 종교의식은 부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순기능이 있었다.


종교적 몰입 상태에 이르는 과정 중에는 바소프레신과 베타엔도르핀, 멜라토닌이 분비된다. 바소프레신은 통증을 완화하고 기억작용을 촉진한다. 베타엔도르핀은 깨달음의 상태에서 오는 행복감을 만든다.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은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를 만들어준다.


몰입 상태가 지속되면 우측 시상하부의 과도한 억제가 과도한 흥분으로 바뀌면서 멜라토닌이 다량 분비되고, 여기에서 DMT(dimethyltryptamine)가 합성되면 유체이탈, 임사체험 같은 체험이 가능해진다. 전두엽에서 과분비된 글루타메이트의 대사산물인 NAAG(N-acetyl aspartyl glutamate) 역시 환각물질로 작용한다.


13세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환영과 무아경을 구분했고, 16세기 스페인 아빌라 교구의 성 테레사(Santa Teresa, 1515-1582, 흔히 알려진 테레사 수녀와는 다름) 수녀 역시 영혼의 결합과 황홀경을 구분했다. 성 테레사는 황홀경에 이르면 격렬한 영혼의 이탈 상태로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몰입 상태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따른 신체 변화와 일치한다. 중세 신비주의자들은 이러한 초월적 상태를 절대적 일체상태(Mystic union)라고 불렀다.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절대적 일체상태가 과연 우리에게 의미 있을까?


뉴버그는 절대적 일체상태가 종교를 탄생시켰다고 본다. 어느 부족이 사냥에 실패해 몇 주째 굶었을 때, 누군가 거대한 사슴을 갈망하며 몰입하다가 절대적 일체상태를 경험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거대한 사슴과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음날 부족이 정말로 사슴 사냥에 성공했다면 어떨까? 비록 인과관계는 아닐지라도 이러한 경험은 불확실한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다음에도 사냥이 안 되면 이들은 거대한 사슴을 떠올리며 신비체험자를 통해 사슴을 숭배하고 사냥에 성공하기를 기원할 것이다. 원시종교는 그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절대적 일체상태는 환각과 무엇이 다를까? 조현병의 환각은 환청이나 환시처럼 한 번에 한 가지 감각이 열려 있고, 현실보다 흐릿하다. 반면 절대적 일체상태는 현실보다 생생하고 또렷하며 여러 체감각이 동시에 통합 가능하다. 조현병의 환각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절대적 일체상태는 훈련을 통해 일어나는 희귀한 경험이다. 이러한 초월적 경험은 신의 존재를 믿게 만든다.


과학은 대개 관찰과 측정이 가능한 물질을 다룬다. 그러나 물질 역시 인간의 뇌를 거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지각이란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과학 역시 인간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 과학과 종교는 인간의 믿음을 토대로 이루어지며, 더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노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선택


영화에 나오는 원장수녀 펠리시타와 그녀의 딸 크리스티나는 허구의 인물이다. 수녀가 딸을 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펠리시타는 돈 많은 귀족의 미망인이었을 확률이 높다. 펠리시타는 베네데타와 달리 신앙심이 깊지는 않지만, 수녀원 내 정치와 물질적 이득에 능통하다. 딸 크리스티나는 베네데타의 신비 체험과 성흔이 거짓이라고 의심하게 되고, 고해신부에게 이를 고발했다가 오히려 징계당한다. 어느 날 밤, 크리스티나는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자살한다. 베네데타의 방을 비밀리에 엿보았던 펠리시타는 피렌체의 교황대사에게 달려가 베네데타의 동성애 의혹, 거짓 영적 체험 등에 대해 종교재판을 열어줄 것을 요구한다.


종교재판에는 고문이 빠질 수 없다. 베네데타에게 글을 배웠던 수녀 바르톨로메아는 가혹한 고문을 당하며 베네데타와의 관계를 자백한다. 영화에서는 바르톨로메아가 먼저 유혹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재판기록에 따르면 베네데타가 천사의 이름으로 성적인 접촉을 강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실제로도 베네데타는 동성애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바르톨로메아의 자백으로 화형을 면할 수 없게 된 베네데타는 페스트에 걸려 격리된 펠리시타를 만난다. 베네데타는 '주님이 고통을 통해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신다'라고 한다. 그러자 펠리시타는 다음날 처형장에서 베네데타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고, 상황은 극적으로 역전된다. 처음에는 펠리시타가 권모술수에 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책략가는 베네데타였다.



성녀인지 사기꾼인지는 해석의 차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역사에는 분명 초월적 종교 체험을 통해 성녀로 기억되는 수녀들이 있다. 14세기 독일의 수녀 마르가레타 에브너, 스페인의 성 테레사 수녀는 종교적 묵상 중에 느낀 초월감, 자아상실감, 일체감, 극도의 쾌락과 흥분에 대해 기술했다. 왜 그들은 성녀가 되었고 베네데타는 죄인이 되었을까? 베네데타는 정말 성녀를 가장한 사기꾼이었을까? 동성애 의혹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변방의 작은 교구에서 너무 야심을 가졌기 때문일까?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잔 다르크의 죄목은 이단으로 보이는 신비체험뿐 아니라,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복 바지를 입는 등 남성 행세를 했다는 것이었다. <수녀원 스캔들>을 쓴 주디스 브라운은 베네데타가 성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남성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가톨릭 교단에 가장 큰 충격이었다고 본다. 가톨릭 교회는 동성애 자체보다 여성이 남성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을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폴 버호벤 감독은 이 영화로 2021년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1938년생으로 아마 초청받은 감독 중 최고령이 아닐까 싶다. 버호벤 감독이 말년에 종교와 관련된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성과 폭력이 교차하는 내용이 버호벤 감독의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베네데타의 섬세한 관찰력과 연출력, 대중에 대한 설득력이 영화감독과 유사하기에 선택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베네데타는 뇌과학으로 보면 절대적 일체상태에 이르는 능력을 지녔고, 영화감독의 눈으로 보면 훌륭한 스토리텔러였던 것이다.


교회에 가지 않은 지 오래다. 어린 시절 친구를 사귀기 위해 교회에 갔고, 기독교 학교를 다니며 세례도 받았지만 이제는 교회에 가지 않는 나는 펠리시타처럼 믿음 없이 교회에 있기만 했던 사람이다.

종교도 과학도 우리 뇌의 믿음에서 출발하고,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다윈의 <종의 기원>을 시작으로 19~20세기 과학의 급격한 발전은 종교에 대한 의구심과 반감으로 이어졌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극단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아직 종교는 남아 있지만, 미래사회 인류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절대적 일체상태라는 신경학적 현상이 종교의 명맥을 이어갈지, 신의 의미를 배제한 명상과 마음 챙김의 영역으로 남을지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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