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처럼 꿈을 설계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
기본 정보
개봉: 2010년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주요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미닉 코브), 마리옹 코티야르(말), 조셉 고든 레빗(아서), 엘런 페이지(아리아드네), 톰 하디(임스), 켄 와타나베(사이토), 킬리언 머피(로버트 피셔)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남자는 무장한 병사들에게 발견되어 낯선 저택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는 한 노인과 마주하고, 이야기는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게 흘러간다. 남자의 이름은 코브,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 정보를 빼내는 ‘생각 추출자’다. 장면이 바뀌어 현실로 돌아오자, 코브는 그 노인과 닮은 사이토에게서 경쟁 기업 후계자를 대상으로 한 인셉션(Inception), 생각을 ‘심는’ 임무를 의뢰받는다. 추출이 생각을 빼내는 행위라면 인셉션은 생각을 심는 작업이다. 상대는 인셉션인지 눈치채지 못해야 한다. 코브는 팀을 꾸려 꿈을 설계하고 상대의 무의식에 들어간다.
자각몽이란 무엇일까
<인셉션>의 세계를 떠받치는 설정은 자각몽(lucid dreaming)이다. 코브와 팀원들은 자각몽을 꾼다. 꿈 안에서 또다시 꿈을 꿀 수 있는데, 단계가 내려갈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보통 꿈은 수동적으로 흘러가지만, 자각몽에서는 상황을 바꾸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자각몽에서는 원래 수면에서 억제되는 전전두엽, 특히 배외측 전전두엽(DLPFC)이 부분적으로 깨어 있기 때문이다.
수면 후 90분경 나타나는 렘수면에 들어서면 뇌파에 α파와 β파가 나타나지만, 렘수면 중 나타나는 자각몽 에는 전두엽과 두정엽에서 γ파가 나타난다. 깨어 있을 때의 자기 인식과 비슷한 신경 활동이다. 꿈에서는 감각 입력이 차단되고 전전두엽의 활동이 억제된다. 전전두엽이 일부 활성화되는 자각몽을 꾸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사람은 자주 자각몽을 꾸지만 평생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스티븐 라버지(Stephen LaBerge, 1947-)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정신생리학을 전공하며 자각몽을 연구했다. 그는 REM 수면 중 나타나는 안구 운동 실험을 통해 자각몽이 가능한 현상임을 주장했다.
라버지는 이후 기관을 설립하여 자각몽 훈련법을 보급하고, 자각몽 유도 장치인 노바드리머(NovaDreamer)를 개발했다. 사용자가 안대처럼 생긴 마스크를 착용하고 렘수면에 들어가면 빛이나 소리 신호를 보내 꿈이라고 깨닫게 하는 장치다. 인셉션에서도 각성 신호가 있는데, 하나는 물리적 움직임인 ‘킥’이고 또 하나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다. 팀원들은 ‘장밋빛 인생’이 끝나기 전에 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노래는 약속된 타이머고, 킥은 강제로 꿈을 종료시키는 도구인 것이다. 감각입력이 없는 꿈에서 감각을 사용해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는 설정이 노바드리머와 비슷하다.
노바드리머는 2004년 단종되었고 새로운 버전은 출시되지 않았다. 자각몽 유도에 개인차가 워낙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직 성능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Prophet이라는 스타트업에서 뇌파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경두개 초음파 자극을 가해 자각몽을 유도하는 Halo라는 장치를 개발 중에 있다. 영화 같은 현실을 경험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끝이 없다.
수면유도 약물과 깊은 무의식
꿈을 공유하려면 일단 함께 잠들고 꿈을 꾸어야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영화 속에서 코브와 팀원들은 드림 머신, 일명 PASIV 장치(Portable Automated Somnacin IntraVenous device)를 통해 꿈을 공유한다. 솜나신이라는 약물을 정맥 주사하여 잠들고 함께 꿈을 꾸는데, 팀원이 들고 다니는 은색가방에 들어 있다. 이번 작업을 위해서는 특별히 강력한 수면유도 약물을 구했다. 하지만 이 약물을 쓰면 꿈속에서 죽어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림보(limbo)에 빠질 위험이 있다. 림보는 꿈의 가장 깊은 단계로 설계되지 않은 원초적인 공간이다. 꿈의 단계가 깊어질수록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기에 림보의 시간은 현실보다 훨씬 천천히 간다.
코브는 한때 아내와 함께 림보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현실에서는 몇 시간이었지만, 림보에서는 수십 년이었다. 두 사람은 원초적인 공간에 자신만의 도시를 건설하며 전능한 존재로 살았다. 그러나 아내는 림보를 현실로 착각하게 되었고, 위기를 느낀 코브는 그녀에게 팽이를 통해 이곳은 진짜가 아니라는 아이디어를 심어(인셉션)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꿈과 현실을 구분해 주는 팽이 같은 도구를 토템이라고 하는데, 팽이가 계속 돌면 꿈이고 쓰러지면 현실이다. 코브의 인셉션은 성공적이었지만 아내의 무의식에 남은 팽이는 다시 현실을 꿈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고, 비극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원래 림보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제1원으로, 죄를 짓지는 않았으나 신앙이 없어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고통은 없지만 희망도 없다. 영화에서 림보는 살아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너무 멀고 깊은 곳으로 죽음을 연상시킨다.
한편 프로이트 심리학으로 해석해 보자면 림보는 가장 깊은 무의식이다. 코브는 아내를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억은 무의식에 억눌려 있다. 프로이트는 지형학적 이론에서 인간의 정신구조를 의식–전의식–무의식으로 나누었다. 무의식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억압된 욕망, 고통스러운 기억, 본능적 충동이 숨겨진 공간이다. 프로이트는 꿈이 무의식으로 가는 통로라고 보았다. <인셉션>의 코브는 꿈을 통해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투사한다. 의식에서는 아내가 죽은 것을 알지만, 꿈속에서는 아내가 계속 나타난다. 죄책감을 상징하는 아내는 코브의 임무를 방해한다. 놀런 감독은 프로이트의 지형학적 이론을 흥미로운 관점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약물은 사람들을 꿈에 붙잡아 두고, 무의식 깊은 곳까지 끌어들인다. 현실에서는 중추신경 억제제를 사용하면 수면을 유도할 수 있지만 깊은 꿈에 닿게 할 수는 없다.
꿈의 세계에 머물게 한다는 설정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약물이 꿈을 오래 유지하듯, 플랫폼은 알고리즘과 보상 체계로 사용자를 붙잡는다. 꿈속에서 현실을 구분하기 힘든 것처럼, 가상의 아바타와 현실 정체성의 경계도 흐려질 수 있다. 영화에서 코브가 특정 생각을 상대에게 심듯 현실에서는 광고와 콘텐츠가 사용자의 사고를 조종한다.
한편 현대의 우리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비슷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 생각이 사실은 플랫폼이 심어준 욕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셉션의 타깃인 기업 후계자는 세뇌 방지 훈련을 받았기에 코브가 설계한 꿈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갑자기 코브가 설계하지 않은 군인들이 나타나고 코브의 팀을 공격한다. 이 장면을 보면 알고리즘과 미디어의 홍수 속에 놓인 현대인을 떠오른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수많은 인셉션을 경험한다. 그 속에서 자아와 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며 성찰하는 힘이 필요하다.
장자의 나비와 코브의 팽이
마지막 장면에서 코브의 팽이는 쓰러질 듯 말 듯 돌고 있다. 팽이가 쓰러지면 현실이지만 영화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코브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본 순간, 더 이상 팽이를 쳐다보지 않고 뛰어 나간다. 관객만이 장면에 머무르며 팽이의 움직임을 주시하게 된다.
기원전 4세기, 장자는 나비를 통해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일까?
뇌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 1956-)는 꿈에서는 기억과 감정이 처리되기도 하고, 현실에서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창의적 영감을 얻는 통로가 될 수 있다도 주장한다. 코흐는 꿈과 현실의 차이는 감각 입력의 유무일 뿐, 모두 뇌가 생성한 시뮬레이션이라고 본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경험과 꿈속 경험이 본질적으로 같은 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뇌를 통해 외부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뇌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인식한다. 수면 중에는 외부 감각 입력이 차단되지만 뇌는 여전히 기억이나 감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반면, 현실에서도 환각이나 망상처럼 감각 입력이 왜곡되면 꿈같은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장자의 물음에 대한 뇌과학적 답변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인셉션>을 통해 꿈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는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누군가 설계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브가 설계한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하다. 코브에게 꿈은 일하는 공간이자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공간이고, 코브를 고용한 사이토에게는 생각과 비밀을 거래하는 장소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공간이다. 꿈의 의미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서사는 다양한 꿈의 층위를 오가느라 복잡하고 결말까지 모호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반영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순간 꿈을 꾸고 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혹자는 코브의 반지 유무에 따라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꿈과 같기에 팽이의 움직임이나 결말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그저 꿈을 즐길 뿐이니까.
꿈과 현실은 반드시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팽이가 멈출 듯 말 듯 애를 태우다가 문득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꿈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꿈은 짧고 인생은 길다.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꿈으로 일치시켜 버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