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말코비치 되기
장르 코미디, 판타지
개봉 1999년 11월 17일
감독 스파이크 존즈
각본 찰리 카우프만
출연 존 쿠삭(크레이그 슈와츠 역), 카메론 디아즈(라티 슈와츠 역), 캐서린 키너(맥신 런드 역), 존 말코비치 (본인)
7과 1/2층에서 발견한 앨리스의 토끼굴
한 남자가 길거리에서 인형극을 하고 있다. 꼭두각시 인형으로 연출하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다. 인형극 조종사 크레이그는 주인공과 연극에 한껏 몰입해 있지만,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간다. 지나가던 아이 아빠는 적나라한 정사장면이 나오자 크레이그의 뺨을 때린다. 생계가 어려워진 크레이그는 아내의 권유로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서류를 정리할 직원을 뽑는 레스터 사는 건물의 7과 1/2층에 있다. 면접을 보러 간 크레이그는 엘리베이터에 버튼이 없어 당황하고, 함께 탄 여성이 7층과 8층 사이에서 쇠막대기를 문틈에 넣어 문을 열어준다. 7과 1/2층은 천장 높이도 반밖에 되지 않는다. 온종일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하는 기묘한 공간에서 크레이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비밀의 문을 발견한다. 배우 존 말코비치의 뇌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누구든 그 안으로 들어가면 15분 동안 유명 배우 말코비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라고 했던 앤디 워홀의 말이 떠오른다.
통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생겼다.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면 갑자기 빠른 속도로 굴러 떨어지는데, 도착한 곳은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이다. 크레이그는 멋진 집, 멋진 무대에서 유명 배우의 삶을 흉내 내다가 15분이 지나면 어느 들판으로 굴러 떨어진다. 앨리스가 토끼굴을 지나 도착한 세상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듯, 이 통로를 통과한 사람들은 유명 배우라는 정체성을 경험하게 된다.
크레이그는 같은 층에서 일하는 매력적인 여성 맥신에게 반하게 되지만, 맥신은 크레이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크레이그가 사무실 벽 한 편의 통로에 대해 이야기하자, 맥신은 관심을 보이며 함께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말코비치의 뇌로 들어가는 체험은 15분에 200달러짜리 상품이 된다. 광고를 본 사람들은 레스터 사의 낮은 복도에 길게 줄을 선다.
영화가 개봉했던 1999년에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가 없었다. TV 등 매체에 등장하려면 유명인이어야 했다. 지금은 영화배우가 아니어도 각종 플랫폼을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고, 타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SNS를 통해 보이는 개인의 화려한 삶은 말코비치의 뇌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신체를 점령당한 말코비치의 자아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면 말코비치의 의식은 어떻게 되었을까? 말코비치는 마치 조국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처럼 신체와 의지를 빼앗겼지만, 의식은 여전히 남아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저항한다. 유명인의 삶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200달러를 내고 말코비치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대중이 유명인의 삶을 소비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말코비치는 자신에게 접근한 맥신을 미행해 통로의 존재를 알아내고, 직접 통로로 들어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다. 말코비치의 눈에 비친 전 세계인은 남녀노소 모두가 말코비치였고, '말코비치'라는 단어밖에 말하지 못한다. 말코비치는 기괴한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곧 현실로 돌아온다.
내가 나의 의식을 점령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의식은 외부 환경을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를 연결한다. 그러나 만약 모든 것이 나 자신으로 채워진다면 의식은 균형이 깨지며 붕괴될지도 모른다.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의 상태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 자크 라캉(Jacques Marie Émile Lacan, 1901-1981)은 생후 6~18개월 사이 아기가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는 순간, 따로 느끼던 감각을 통합하고 '자기'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고 보았다. 거울을 보고 자신이라고 믿었던 거울 단계를 지나면 언어와 규칙, 사회적 관계 속의 나를 인식하게 되고, 나아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의식 영역의 나까지도 인지하게 된다. 라캉은 '실재하지 않는 완전한 자기'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고 보았다.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의 뇌 안으로 들어간 장면은 라캉의 '거울 단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과 신체는 분리될 수 있을까
뇌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는 의식은 주관적인 ‘경험’이라고 말한다. 데카르트가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처럼, 의식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경험 그 자체로 존재한다. 또 의식은 구조화되어 있고, 다양한 정보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보를 통합하여 이루어지고, 그 경험을 넘어설 수 없어 제한적이다. 코흐는 고유하고 구조적이며, 정보적, 통합적, 제한적인 다섯 가지가 의식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본다.
망막에서 빛과 색을 인식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듯, 스마트폰 역시 우리의 얼굴을 인식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스마트폰도 우리의 얼굴을 보고 주관적인 느낌을 갖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 자체가 의식이 될 수 없으며, 이 정보들을 통합한 상태가 의식이다.
뇌과학자 줄리오 토노니의 통합정보이론에 따르면 의식이란 정보가 통합되어 있는 상태로, 통합의 정도를 숫자 Ø로 나타낼 수 있다. Ø가 0이면 정보가 완전히 분리되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무생물이나 컴퓨터에 해당한다.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각성 상태에 따라 Ø 값은 달라지는데, 각성 상태에서는 많은 뉴런이 연결되어 Ø 값이 높지만 수면 중에는 연결이 느슨해 Ø 값이 낮아진다.
원래 15분 후에는 누구라도 존 말코비치의 몸에서 튕겨져 나오는데, 어느 순간 크레이그는 그의 몸에서 영원히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통합정보이론에 따르면 처음에는 말코비치의 몸에 서로 다른 시스템이 들어 있었지만, 두 개의 의식 네트워크가 통합되어 새로운 의식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인형극 조종사가 된 말코비치의 헤어스타일과 외모는 점점 크레이그를 닮아 간다.
만약 의식과 신체가 분리될 수 있다면 인간은 분리된 의식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자 할까?
SF 소설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소프트웨어처럼 업로드하는 내용이 종종 나온다. 신체는 죽음을 맞이해도 의식이 클라우드 공간에 업로드되어 영생을 누린다는 개념이다. 이 영화에서도 영생을 얻고자 숙주의 몸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아 옮겨 다니는 무리가 있다. 크레이그가 다니는 레스터 사의 사장 레스터다. 사실 레스터 사장도 마틴 선장이라는 인물이 레스터의 몸을 점유한 상태다. 마틴 선장과 그의 친구들은 존 말코비치처럼 통로가 형성된 젊은 신체를 찾아 옮겨 다닌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크레이그의 아내 라티는 침팬지와 앵무새, 개를 돌보는 따뜻한 여성이다. 라티는 크레이그로부터 통로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말코비치의 몸속에 들어가 본 후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다. 맥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맥신은 크레이그나 라티와 달리 그의 몸에 들어가기보다는 그와의 만남을 즐긴다. 유명인이 되는 것보다 유명인과 친밀한 관계를 즐긴다는 점이 맥신의 특징이다. 맥신은 라티가 조종하는 말코비치에게 반하고, 라티는 남성의 몸으로 맥신에게 반해 둘은 밀회를 즐기게 된다. 타인의 신체를 빌려 동성 간의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기괴한 발상이다.
그러나 맥신과 라티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없었던 크레이그는 라티를 협박하고 가둔 뒤 라티인 척 맥신과 만난다.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에 영원히 동화되어 맥신과 결혼하고 배우 출신 인형극 조종사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가까스로 밧줄을 푼 라티는 레스터에게 달려간다. 이 통로의 비밀에 대해 레스터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레스터는 만삭의 맥신을 납치해 크레이그를 협박하고 말코비치의 몸에서 내쫓고자 한다.
크레이그의 아내 라티는 침팬지와 앵무새, 개를 돌보는 따뜻한 여성이다. 라티는 크레이그로부터 통로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말코비치의 몸속에 들어가 본 후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다. 맥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맥신은 크레이그나 라티와 달리 그의 몸에 들어가기보다는 그와의 만남을 즐긴다. 유명인이 되는 것보다 유명인과 친밀한 관계를 즐긴다는 점이 맥신의 특징이다. 맥신은 라티가 조종하는 말코비치에게 반하고, 라티는 남성의 몸으로 맥신에게 반해 둘은 밀회를 즐기게 된다. 타인의 신체를 빌려 동성 간의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기괴한 발상이다.
그러나 맥신과 라티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없었던 크레이그는 라티를 협박하고 가둔 뒤 라티인 척 맥신과 만난다.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에 영원히 동화되어 맥신과 결혼하고 배우 출신 인형극 조종사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가까스로 밧줄을 푼 라티는 레스터에게 달려간다. 이 통로의 비밀에 대해 레스터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레스터는 만삭의 맥신을 납치해 크레이그를 협박하고 말코비치의 몸에서 내쫓고자 한다.
크레이그에게 의식이란 고통이었을까
크레이그는 영화에서 라티가 키우는 침팬지에게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진다.
침팬지로 태어나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넌 모를 거야
왜냐하면 의식이라는 건 아주 끔찍한 저주거든
나는 생각하고, 느끼고, 고통받잖아
생각하고, 느끼고, 고통받는 의식은 과연 저주일까? 만약 의식과 신체가 분리될 수 있다면 어느 쪽이 자아일까?
크레이그의 오해와는 달리, 라티의 침팬지 일라이자는 어린 시절 동료 침팬지가 철창에 갇혔을 때의 공포와 죄책감 때문에 위궤양까지 앓고 있는 존재였다. 크레이그가 라티의 손을 묶고 철창에 가두었을 때, 일라이자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라티의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준다.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한 일라이자는 의식을 저주로 생각했을까, 축복으로 생각했을까.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된 영화는 뇌과학의 가장 깊고 난해한 영역에 질문을 던진다. 오늘도 우리는 신체를 통해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고통도 받는 의식적인 존재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