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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유전되는 걸까

두 번 보기 무서운 오컬트, 유전

by sweet little kitty

개봉 2018.06.07.

장르 미스터리, 공포

러닝타임 127분

출연 토니 콜렛(애니), 밀리 샤피(찰리), 가브리엘 번(스티브), 알렉스 울프(피터)

감독 아리 에스터


영화는 애니가 만든 디오라마를 들여다보 시작된다. 숲 속의 주택에는 애니와 가족들이 살고 있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지만 꽤 넓은 주택이다. 뒷마당에는 오붓한 아지트인 트리하우스가 있다. 누군가 이 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서늘해진다. 섬세한 모형에 감탄하는 순간, 카메라는 화면을 클로즈업하고 애니의 실제 집안 풍경으로 전환된다.



가족들은 애니의 어머니 엘렌의 장례식에 가는 길이었다. 치매와 해리성 장애를 앓고 있었던 엘렌은 생전에 영매로 활동했던 기이한 사람이었다. 애니는 독단적이고 비밀이 많았던 어머니 엘렌을 싫어했고, 엘렌은 손녀딸 찰리에게 엄마처럼 행동해 갈등도 많았다. 애니는 장례식이 끝나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엘렌이 남긴 편지에서 이상한 문구를 발견한다.


“Our sacrifice will pale next to the rewards.”

우리의 희생은 보상 앞에서 아무것도 아닐 거다.


애니는 찜찜한 기분에 상자를 닫아버린다. 무엇이 희생이고 무엇이 보상이라는 걸까?

엘렌은 죽었지만 미래형 문장을 볼 때, 완수해야 할 과업이 있는 듯하다.


정신질환은 유전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병을 진단받으면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하고 궁금해한다. 특히 정신질환은 사회적 낙인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아 ‘혹시 유전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게 된다. 게다가 정신질환은 혈액검사나 CT, MRI로 진단할 수 없기 때문에 원인을 명확히 알기 어렵고 답답하기도 하다.


조현병, 양극성 장애, 주요 우울장애 등은 어느 정도 유전적 경향을 가진다. 조현병의 평생 유병률은 약 1%, 즉 100명 중 한 명꼴이다. 부모 중 한쪽이 조현병일 경우 자녀가 조현병에 걸릴 확률은 8~18%, 부모 모두가 조현병일 경우 15~55%로 보고된다. 또 일란성쌍둥이 중 두 사람 모두 조현병을 겪는 경우는 약 47%, 이란성쌍둥이는 약 12% 정도다. 요약하면, 부모가 조현병일 경우 자녀의 발병 위험은 일반인보다 10배 이상 높지만, 유전자가 완전히 같은 일란성쌍둥이에서도 절반 정도만 같은 병에 걸리므로 나머지 절반은 환경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애니의 집안에는 정신질환의 가족력이 있다. 아버지는 심한 우울증으로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났고, 오빠는 조현병으로 자살했다. 어머니 엘렌은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으면서 영매로 활동했고, 평생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애니는 몽유병 증세로 아들 피터를 위험에 빠뜨린 적이 있고, 불안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 딸 찰리는 무표정하고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늘 같은 옷차림으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아들 피터 역시 우울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정신과 의사인 애니의 남편은 가족 중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불행한 가족의 공통점은 시련이 닥쳤을 때 의사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엘렌이 죽은 뒤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애니의 가족은 서로 단절되고, 각자 고립된 채 무기력하게 무너져 간다.



가족 내 소통 단절과 무기력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피터는 애니의 강요로 동급생들과의 파티에 동생 찰리를 데려가게 된다. 그런데 피터가 친구들과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이, 견과류에 알레르기가 있는 찰리는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천식 발작을 일으킨다. 피터는 찰리를 둘러업고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하지만, 창밖으로 머리를 내민 찰리는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쳐 즉사한다. 전봇대에는 이내 섬뜩한 악마의 문장이 새겨진다. 사람의 머리를 제물로 바쳤던 악마 파이몬의 큰 그림일까?


늦은 밤, 피터는 찰리의 머리 없는 시신을 차에 둔 채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린다. 사람은 극한의 공포를 느끼면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몸과 마음이 셧다운 될 수 있는데, 피터의 상태가 딱 그랬다. 그러나 피터의 지적 능력이나 나이를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무책임한 셧다운은 이해하기 어렵다. 찰리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어야 했다.


유전된 정신질환을 대하는 애니 가족의 태도도 비슷하다. 엘렌은 남편의 우울증을 방치해 굶어 죽게 놔뒀고, 환각과 망상을 보인 애니의 오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조현병은 현대의학으로 완치할 수는 없지만 약물로 조절이 가능하다. 결국 악마의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저주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무기력하고 비합리적인 대처 방식이 애니의 가족을 끝없는 악순환으로 몰아넣는다.


광기와 예술성을 거래하다


공포영화에는 늘 귀신이나 악마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엘렌이 불러들인 악마 ‘파이몬’이 나온다. 파이몬은 악마학 교과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72 악마 중 하나로, 낙타를 탄 남성의 몸을 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 비밀스러운 지식에 능통하며, 마법사의 소환에 성실하게 응하는 악마다. 처음에는 악마가 이 가족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엘렌의 계획 아래 소환된 손님 같은 느낌을 준다.


엘렌은 파이몬에게 사람의 머리 세 개를 제물로 바치려 한다. 편지에 언급된 ‘희생’은 바로 이 제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바친 희생으로 얻고자 한 보상은 무엇이었을까?



좌) 파이몬의 문장 2) 악마학 책에 나오는 파이몬


영화의 엔딩에서는 애니의 트리하우스에서 파이몬을 불러내는 의식이 거행된다. 엘렌은 “우리에게 명예와 재물, 그리고 좋은 벗(Good familiars)을 내려주소서”라고 말한다. 번역된 대사는 ‘벗’(familiar)이지만, 성경에서 familiar spirits는 영매가 불러내는 악령이나 이단적 우상을 뜻한다. 엘렌은 가족을 제물로 바쳐 과학과 예술, 우주의 비밀스러운 지식, 그리고 영매로서의 초월적 힘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닐까.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정신질환을 치료하기는커녕, 파이몬을 소환하기 위해 희생을 주저하지 않는다.


엘렌의 기이한 행동은 광기와 천재적 예술성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광기는 파괴의 힘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창조의 불꽃이기도 하다. 엘렌의 행위는 악마적이면서도 예술가의 집착처럼 보인다. 그것은 현실을 넘어서는 지식을 갈망한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의 형상이다.


좌) 영화 속 애니는 디오라마를 만든다 2) 반 고흐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머물던 시기 그린 별이 빛나는 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겪으며 자기 귀를 자르고, 말년에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면서도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역사적으로 양극성 장애와 창조적 재능의 연관성은 자주 제기되어 왔다. 조증 단계에서는 사고가 빨라지고 연상의 폭이 넓어지며, 수면욕구가 줄고 활동성이 높아져 작품에 몰입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또 조울을 오가면서 환자는 고통스럽지만 정서적 깊이는 더욱 커진다. 2024년 35개 연구를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의 증상이 심할 때보다 경미하거나 중등도일 때 창의성과의 상관관계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


한편, 20대 초반에 게임이론을 비롯한 수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업적을 세우고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시는 30대부터 망상과 환각을 경험하며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삶은 무너졌지만, 여전히 ‘광기와 천재성의 관계’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조현병과 창조적 재능은 과연 연관이 있을까.


2010년 스웨덴 연구팀은 건강한 남녀 14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창의적 사고력과 뇌 시상(thalamus)에 분포한 도파민 수용체의 상관관계를 지능검사(Berlin Intelligence Structure Test, 그림·언어·수 영역에서 창의적 사고력을 측정)와 PET 촬영으로 분석한 것이다. 시상은 외부 자극을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통로이자 도파민 수용체가 분포하는 부위다. 조현병 환자에서는 시상과 변연계의 도파민 대사에 이상이 나타난다.


연구 결과, 창의적 사고 점수가 높을수록 시상의 D2 도파민 수용체 밀도가 낮았다.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조현병 환자에서는 선조체의 D2 수용체가 증가하고, 시상에서는 감소한다. 즉,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뇌와 조현병 환자의 뇌는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통제와 필터링이 느슨해진 뇌 회로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이 조현병을 일으킬 수도, 창의적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는 방어기제를 ‘합리화(rationalization)’라고 부른다. 여우가 신 포도를 합리화하듯, 가족 내 정신질환의 유전을 마치 천재적 재능과 악마적 거래의 결과로 포장하는 것도 일종의 합리화다.


하지만 천재적 예술가들이 광기의 고통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합리화보다 ‘승화(sublimation)’에 가깝다. 합리화가 자기 위안에 머무는 방어라면, 승화는 본능의 거친 에너지를 예술이나 학문으로 전환하는 성숙한 방식이다. 반 고흐의 그림은 바로 그 승화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적 고통이 예술적 천재성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산업화된 시스템 안에서 타인과 협업하며 작업한다. 따라서 조절되지 않은 정신질환을 가진 채로 예술적 재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기는 어렵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심리


악마숭배 의식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찰리가 놀다가 혼자 잠들기도 했던 트리하우스 안에는 잔잔한 촛불이 놓여 있고, 벌거벗은 신도들이 머리를 숙여 악마를 경배한다. 애니가 엘렌의 유품에서 발견한 사진을 보면, 엘렌은 영매이자 동시에 사이비 교주였다.


사람은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불안과 상실을 경험하며 마음이 약해진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자존감이 낮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수록 강력한 존재를 갈망하게 된다. 외부에 쉽게 순응하거나 권위에 의존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도 사이비 종교에 취약하다. 사회적으로는 친밀한 관계가 부족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 전쟁이나 전염병, 경제 위기 같은 불안한 상황일 때 종교 지도자의 확신에 찬 태도가 신뢰와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심리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전전두엽의 기능은 떨어지고, 편도체는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전전두엽은 판단과 통제를, 편도체는 감정과 공포를 담당한다. 그 결과 비판적 사고와 자기 통제력을 잃고 감정에 휘둘리게 된다.


종교적 집단의식은 두 가지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도파민과 옥시토신이다.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뇌를 fMRI로 촬영해 보면, 중독과 보상 회로인 측좌핵과 복측 선조체,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와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는 도파민 회로의 활성이다. 외부인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사이비 종교의식이 당사자에게는 쾌감을 일으키는 일종의 중독 현상인 셈이다. 또 다른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애착에 관여하며, 내가 속한 집단을 안전한 울타리로 착각하게 만든다.


결국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는 것은 인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보상 회로와 옥시토신 시스템, 편도체의 과도한 활성화로 인해 쾌감과 소속감이 비정상적으로 강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공포영화가 예리한 칼이라면, 이 영화는 녹슨 칼에 가깝다. 관객을 놀라게 하는 괴성이나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지만, 대신 불쾌함과 의문으로 서서히 마음을 파고든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자신의 집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극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좌) 애니의 딸 찰리,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무표정, 무감정에 타인과 어울리지 못함 2) 아리 에스터 감독, 2025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신비를 다룬 영화를 오컬트 영화라고 한다. <로즈메리의 아기>, <엑소시스트>, <오멘>처럼 악마 숭배나 구마 의식, 종말론을 다룬 영화들이 그 시초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 사회는 냉전과 불안 속에 반종교주의와 반합리주의가 퍼져 나갔다. 그 결과 오컬트 영화라는 장르가 생겨났고, 악마 숭배나 심령술 같은 소재가 영화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이제 오컬트는 단순한 악마 이야기에서 벗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넓게 포괄하는 장르가 되었다. 「유전」 역시 그런 의미에서 대표적인 오컬트 영화라 할 수 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정신질환도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유전될 수 있고, 그것이 삶을 어떻게 바꿀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영화 속에서 애니는 누구보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정신과 의사와 결혼했지만, 점점 독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반복한다. 불행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유전이 숙명처럼 느껴지고, 유전된 질병은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절망에 빠져든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존재는 파이몬이 아니라, 희생을 통해 악마와 재능을 거래하려 한 사이비 교주 엘렌이다. 대부분의 질병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유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태도, 거기에 미신을 덧씌워 사사로운 욕망을 정당화하려는 인간의 행동이 또 다른 환경이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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