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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효기간은 뇌가 정한다

사랑을 비틀어 보다, 더 랍스터

by sweet little kitty

더 랍스터(The Lobster)


개봉 2015.05.15.

장르 멜로/로맨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패럴(데이비드), 레이철 바이스(근시 여인), 레아 세이두(숲의 리더), 아리안 라베드(메이드)

러닝타임 118분

수상내역 제6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규칙 1.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


짝을 찾는데 실패하면 동물이 되어 버리는 사회가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커플이어야 하고, 이별, 이혼, 사별을 겪은 사람들을 숲 속 호텔로 보낸다. 호텔에서는 새로운 짝을 만날 수 있고 커플이 되면 동거의 기간을 가진 뒤 도시로 돌아갈 수 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하나만 선택해야 하며, 중간에 바꿀 수는 없다.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호텔과는 반대로 반드시 혼자여야 하는 숲이 있다. 연애도, 성관계도 금지되어 있다. 심지어 죽으면 묻힐 무덤조차도 스스로 파 놓아야 한다. 독신자들은 숲에서 토끼 같은 동물을 사냥해서 먹는다. 정장을 입고 수렵채집인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짝짓기 호텔의 투숙객들은 독신자의 숲에 마취총을 들고 와서 그들을 사냥한다. 사냥한 사람의 수만큼 호텔에 머물며 짝을 찾을 수 있는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 독신자들이 마취에서 깨면 45일 이내에 커플 되기를 강요하겠지.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서로 공격하는 모습이 현대인과 닮아 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그리스 출신으로, 영화마다 기괴하고 독창적인 설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다른 영화에 출연했던 엠마 스톤은 란티모스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보통 사람이어서 안심이 되었다고 말했다. 더 랍스터의 설정은 기괴하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는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짝을 찾지 못해 개가 된 형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간다. 아내가 외도를 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호텔에 입소하기 전 서류를 작성하면서 변하고 싶은 동물로 랍스터를 꼽는다. 랍스터는 장수하며 평생 번식을 하고, 귀족의 푸른 피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호텔에서는 사랑이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의무로 변해버렸다. 사람을 사냥하는 호텔 투숙객들, 숲에서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독신자들은 마치 선사 시대의 수렵채집 인류 같다.


영화 더 랍스터의 촬영지, 아일랜드의 한 호텔, 숲이 옆에 있고 고립된 성 같은 느낌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뇌가 정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 년 전,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영장류는 뇌가 커지고 골반이 작아져 점점 출산이 어려워졌다. 출산으로 인한 생명의 위험을 줄이려면 아기를 최대한 빨리 출산해야 했고,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미성숙한 아기는 생후 몇 년간 집중 육아를 필요로 했다. 직립 보행과 더불어 아기를 더 이상 편하게 업고 다니지 못하게 된 여성은 사냥과 생계를 책임져 줄 남성이 필요했다. 남성은 아이가 자기 자녀가 맞는지 확신하려면 한 여성과 오랜 기간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외부와 단절되어 수렵 채집,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이누이트, 아마존 등지의 원시 부족 여성들은 대개 4년 주기로 아이를 낳는다. 모유수유 기간이 2년 이상으로 길고,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기 어려우며 환경이 열악하여 출산으로부터 회복이 더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이 4년이라는 기간이 현대인의 이혼 시점과도 유사하며, 선사시대에 한 아이를 공동으로 양육한 남녀가 헤어졌던 시기와 일치할 것이라고 말한다. 낭만적 사랑이 이 기간을 유지하기 위해 생겨났다면 논리는 더욱 그럴듯하다.


헬렌 피셔는 인간의 사랑을 뇌의 작용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성호르몬이 매개하는 욕망(Lust), 두 번째는 도파민으로 매개되는 낭만적인 사랑(Romantic Love), 마지막으로 옥시토신에 의한 애착(Attachment)이다. 욕망이라는 본능에 의해서 사람은 이성과의 관계를 원하게 된다. 이러한 욕망이 바탕이 되어 로맨틱한 사랑이 시작되고, 도파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몰입하게 한다. 그러나 로맨틱한 사랑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 2년을 넘기기 힘들다.


사랑이 끝나가면 우리는 상대가 변했거나 내 감정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헬렌 피셔에 따르면 뇌의 호르몬 작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진화적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전략이기에 로맨틱한 사랑이 끝나면 신뢰와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애착으로 넘어가거나, 새로운 사람에게 다시 사랑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은 대중음악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 단골 소재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현실에서 욕망, 낭만적 사랑, 애착은 꼭 한 사람과의 관계에 연속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다르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규칙 2. 사랑을 하려면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데이비드는 호텔에서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존을 위한 연극일 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곳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공통점을 근거로 맺은 계약이다.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필립은 독신자 사냥에서 좋은 점수를 낼 수 없어 커플 찾기에 더욱 절박하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여성은 없기에 더욱 애가 탄다. 고민하던 필립은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성 앞에서 일부러 코피를 내고 공통점을 찾았다며 사랑을 시작한다. 데이비드가 호감을 가졌지만 공통점을 찾지 못한 여성이었다.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데이비드는 사이코패스 여성과 짝을 맺기 위해 감정이 없는 사람인 척 연기한다. 사실 그녀는 사냥을 너무 잘해서 굳이 짝을 찾을 생각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절박하기에 그녀처럼 비정한 척 연기한다. 드디어 커플이 되어 동물로 변하는 것은 면했지만, 데이비드는 억지로 지어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더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데이비드를 시험하기 위해 개로 변한 데이비드의 형을 이유 없이 죽이고, 형을 잃은 슬픔에 연기에 실패한 데이비드는 호텔을 탈출한다.


커플 간에 공통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조건을 보고 상대를 정하는 관습과 닮아 있다. 자연스러운 감정만으로는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규칙은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된다. 처음에는 상대에게 끌리더라도 결혼을 생각할 때엔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게 마련이다.


규칙 3. 숲에서는 절대로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


호텔을 탈출한 데이비드는 ‘독신자들이 사는 숲’으로 들어간다. 전에는 사냥을 나갔던 곳이다. 게릴라 전사 같은 여성 리더는 데이비드를 따뜻하게 맞아주며 숲의 규칙을 다시 한번 알려준다. 데이비드는 어느 날 호텔에서 알고 지냈던 동료가 사냥을 나오자 당황한다. 그는 동물로 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절박했고, 데이비드를 사냥하려 했다. 이때 숲의 독신자 여성이 그를 기습 공격하고 데이비드를 구해 준다. 데이비드는 보답으로 그녀가 원했던 사냥한 토끼를 준다. 피 묻은 토끼 고기는 고마움과 동시에 호감의 표현이었다. 수렵채집 시대의 남녀도 선물로 사냥한 동물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른다.


숲 속 독신자들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주기적으로 도시로 간다. 도시에 갈 때에는 반드시 커플이어야 경찰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구해준 여성과 임시 커플이 되고, 여성이 컨택트렌즈를 사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근시라고 말하며 공통점을 찾는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리더를 피해 조용히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을 금지하자 오히려 낭만적인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데이비드와 근시 여성이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는데, 이어폰을 나누어 끼지 않고 각자의 플레이어에서 동시에 음악을 재생해 춤을 춘다. 굳이 불편한 길을 택한 것이다. 예전에는 부부가 결혼하면 반드시 한 침대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신혼부터 각자 침대를 쓰는 부부도 있다. 이어폰을 공유하지 않은 것도 각자의 공간과 적절한 거리를 존중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나란히 발을 맞추어 걷는 것, 현실 세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숲 속에서 춤추는 장면이 한 번 더 있다. 독신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이어폰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며 살짝 거리를 두고 자 춤을 춘다.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조금 슬프기도 하다. 혼자 추고 싶은 사람도 있고, 같이 추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텐데 모든 사람이 모여 홀로 춤을 추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숲 속 독신자 댄스장면, 열심히 춤추는 여배우는 감독의 실제 부인이라고 한다


거절당한 사랑, 질투란 무엇인가


사냥을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던 숲의 독신자들은 날을 정해 호텔을 기습한다. 호텔의 한 여성 직원은 숲의 리더와 내통하고 있었고, 정보를 주는 대가로 값비싼 식재료를 받는다. 그런데 이들은 상대를 물리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관계를 파탄 내는 것이다.


숲의 리더는 호텔의 리더 커플을 공격한다. 여성을 결박하고 남성에게 총을 쏘게 하지만, 방아쇠를 당겨도 발사되지 않는다. 장난감 총이었기 때문이다. 숲의 리더가 떠난 뒤 여자는 분노할 것이고, 결국 두 사람은 싸우고 헤어질 것이다. 데이비드 역시 다리에 장애가 있던 필립 커플을 공격한다. 그들은 딸까지 배정받아 완벽한 세 가족이 되었지만, 데이비드는 한때 호감을 품었던 여성에게 필립의 코피가 연출이었다고 폭로한다. 유치하지만 이해할 만한 복수였다.


한편 숲의 리더는 독신주의를 외치지만 사실 데이비드를 좋아하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근시 여성과 사랑에 빠지자, 그녀는 근시여성을 속여 근시수술을 시켜준다고 하고 의사를 매수해 실명시킨다. 치정의 잔혹함은 살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근시’라는 공통점이 없어졌기에 새로운 공통점을 찾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데이비드는 결국 자신도 눈이 멀기로 결심하고, 그녀와 함께 도시로 탈출한다. 식당에서 여성을 남겨두고 칼을 든 채 화장실로 들어가지만, 영화는 그가 눈을 찔렀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근시라는 공통점이 사라졌기에 다른 공통점을 찾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자신도 눈이 멀겠다고 결심한다. 두 사람은 숲의 대장을 처치하고 탈출해 도시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데이비드는 날카로운 스테이크 칼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지만, 눈을 찌르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돌아오지 않는 데이비드를 기다리는 여성을 비추며 끝난다.


공통점이 사라졌을 때 사랑이 끝난다는 설정은 ‘성격 차이’라는 흔한 이혼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근시 여성이 눈이 멀었을 때에도 그녀를 사랑했다. 반면 여성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대장에게 ‘그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었잖아!’라며 분노했고, ‘이제 우리는 공통점이 없다’며 등을 돌렸다. 공통점은 핑계였고, 사랑이 먼저 식은 쪽은 오히려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데이비드의 최종 선택을 보여주지 않지만, 세 가지 가능성을 남긴다. 첫째는 눈을 찔러 그녀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고, 둘째로 눈을 찌르지 않고 거짓으로 공통점을 유지하는 것, 마지막으로 모든 걸 버리고 랍스터가 되어 바다로 가는 방법이 있다. 바다에서 데이비드는 외롭지만 자유로울 것이다.


https://youtu.be/6szTyohzHr4


사랑이 멸종하지 않으려면 사랑을 정의하지 않아야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요르고스 감독은 과연 어떤 사랑을 했을까, 결혼은 했을까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이 영화에 호텔의 하녀로 출연한 아리안 라베드가 감독의 실제 부인이었다. 아름답고 인상적인 배우였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아리안 라베드

사랑은 호텔에서처럼 억지로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숲에서처럼 억지로 감출 수도 없다. 하지만 낭만적 사랑이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는 이상 대신,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우리 뇌의 호르몬 작용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사랑이 식었을 때 대책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란티모스 감독의 첫 영어 영화지만, OST는 그리스 음악이 주를 이룬다. 엔딩 장면에서 흐르는 곡은 그리스의 여배우 소피아 로렌과 토니스 마루다스가 부른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Ti Ein’ Afto Pou To Lene Agapi)>다. 1957년 소피아 로렌의 첫 영어 영화 해녀(Boy on a Dolphin)의 OST로, '사랑이란 바람인가, 불꽃인가, 심장의 고동인가, 나는 모르지만 그것이 나를 태운다'는 가사가 나온다. 란티모스 감독은 낭만적인 가사의 노래를 결말에 넣어, 사랑이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임을 말하는 듯하다. 사랑이 끝날 것 같은 불안한 순간에 애절하고 따스한 선율이 대비된다.


요즘 악동 뮤지션의 찬혁이 ‘멸종위기 사랑’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불이 만들어지는 사랑이 있었대’라는 가사는 란티모스의 <랍스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사랑의 디스토피아다. 사랑을 고정관념과 관습으로 정의하지 않을 때, 사랑은 멸종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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