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인저러스 메소드
데인저러스 메소드(A Dangerous Method)
개봉 2012.05.10
장르 드라마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사비나), 마이클 스벤더(융), 비고 모텐슨(프로이트) 뱅상 카셀(오토) 사라 가돈(엠마)
러닝타임 99분
수상내역 LA 비평가 협회상(남우주연상)
여배우의 괴상하고 뒤틀리는 몸짓이 인상적인 영화가 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데인저러스 메소드>다. 감독은 정신분석이 태동하던 20세기 초, 칼 융(Carl Jung, 1875-1961)과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사비나 슈필라인(Sabina Spielein, 1885-1942)의 삶과 관계를 영화로 만들었다.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던 사비나는 처음에는 융의 환자였지만, 의학을 공부하며 점점 학문적, 감정적 유대 관계로 발전한다. 사비나와 융의 관계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실험이라도 하듯 무의식적 충동과 전이, 역전이를 반복하며 의사-환자 관계의 금기를 깨뜨린다.
인물로 풀어보는 정신분석의 역사
정신분석이란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고, 무의식이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의사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되었고, 이후 융과 아들러, 클라인, 라캉 등에 의해 다양한 방향으로 변형되었다. 정신분석에서는 우리가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욕망이나 기억을 무의식으로 억압하고, 이것이 특정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프로이트는 처음에는 지형학적 이론을 통해 의식, 전의식, 무의식의 구조를 설명했지만, 쾌락원리를 따르지 않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드, 자아, 초자아로 이루어지는 구조이론을 내놓았다. 정신분석의 치료 목표는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구조의 갈등으로 인해 생긴 불안을 해소하고, 현실 자아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를 강조했지만,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무의식, 원형, 개별화 등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분석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사비나 슈필라인은 러시아 출생의 유대인 여성으로, 1904년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병원에 입원했을 때 융의 환자였다. 당시 의무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강박적으로 웃고 울었으며, 틱과 더불어 경련, 혀를 내미는 증상이 있었다. 당시에는 성적인 억압과 불안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 히스테리성 신경증이라고 보았지만, 현대의 진단으로 보면 정서의 문제가 감각, 운동 증상으로 나타나는 전환장애, 또는 틱이나 기능성 운동장애라고 볼 수 있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역사적 기록과 감독의 주문에 따라 병적인 증상을 극적으로 연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필라인은 취리히 의과대학에서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고, 분석가로 활동하며 프로이트와도 교류했다. 융의 연구를 도왔고 사적으로도 만났다. 융과 프로이트가 주고받은 편지, 슈필라인의 일기 등을 볼 때 두 사람은 성적인 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가학적, 피학적 관계가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융은 스위스의 명품 시계 제조회사 IWC 소유주의 딸 엠마와 결혼했다. 영화에서 엠마는 융의 진료실에서 단어 연상 테스트에 응하고, 집에서는 융의 진료,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눈다. 엠마 역시 후에 분석가가 되어 <그라일 신화(The Grail Legend)>라는 연구서를 남겼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이트와 융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이론가다.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보았지만, 현대 뇌과학에서 꿈은 기억을 재정비하고 정서를 처리하며 창의적 사고를 발현하는 기능이 있다고 본다. 융의 집단무의식이나 신화, 종교적 상징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어 비난을 받기 쉽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진단체계도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CT나 MRI 같은 영상 검사도 없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은 인간의 욕망과 상징을 이해하려는 당대의 시도이자 최신 과학이었다.
죽음을 향한 파괴적 본능
치료 초기, 사비나와 융은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출장을 가서 치료를 잠시 중단한다는 융의 말에 사비나는 갑자기 흥분하여 외투를 벗어던진다.
정신분석에서는 환자가 치료자에게 '전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치료자의 휴가로 치료가 중단되면 어린 시절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환자는 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받게 될 수 있다. 사비나의 분노는 전이일 확률이 높다.
융이 흙이 묻은 사비나의 옷을 주워 지팡이로 흙먼지를 털어내자, 사비나는 갑자기 그만두라며 더욱 크게 소리친다. 지팡이 소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신체적 학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분석이 진행되자 사비나는 어린 시절 있었던 고통스러운 학대의 장면을 고백한다. 그녀는 신체적, 성적인 학대의 순간에 소변을 보고는 쾌락을 느꼈다고 말한다. 사비나의 뇌에는 극심한 고통과 쾌락이 잘못 연결된 것이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은 성 도착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그는 프랑스의 사드 후작에서 ‘사디즘(sadism)’을,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 마조흐에서 '마조히즘 (masochism)’이라는 용어를 따왔다. 사드 후작은 귀족출신 작가로 <쥐스틴>, <소돔 120일> 등을 썼고, 젊은 시절부터 가혹한 성적 행위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는 지배와 복종을 인간관계의 근본구조로 보았다.
마조흐는 오스트리아의 소설가로 여성을 이상화하여 복종하는 관계를 맺었다. 그의 작품 <모피를 입은 비너스>에는 여성에게 굴복을 통해 사랑을 증명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크라프트에빙은 사디즘을 타인의 고통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성향, 마조히즘을 자신이 고통받을 때 쾌감을 느끼는 성향으로 정의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보았다. 성적인 본능과(Eros) 죽음을 향한 충동(Thanatos)이다. 인간에게 죽음을 향한 파괴적 본능이 있다는 사실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죽음 본능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슈필라인이었다. 1912년 슈필라인은 <파괴를 통한 생성>을 통해 죽음 충동이 긍정적, 창조적인 기능이 있음을 주장했다. 영화에서는 히스테리와 피학적 이미지가 주로 부각되었지만, 슈필라인은 사실 뛰어난 학자였고 러시아 최초의 정신분석가였다.
프로이트는 파괴적 죽음충동을 통해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설명했다. 사디즘은 죽음 충동이 타인에게 향할 때, 마조히즘은 죽음 충동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올 때 생긴다고 보았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사비나의 유혹으로 성적인 관계를 시작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비나는 융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융은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결국 그녀에게 매질을 가하게 된다. 지적이고 학문적인 서사에 걸맞지 않은 원초적인 장면이다.
19세기 서구사회는 과학과 이성을 중시하여 인간을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동기를 원초적 본능이라고 주장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지적이고 학문적인 서사와 성본능에 대한 논쟁,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만나는 장면은 당시 사회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미친 영향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우리 뇌의 보상회로와 통증회로가 동시에 활성화되는 현상이다. 복측피개영역에서 측좌핵으로 이어지는 도파민 경로가 시상에서 섬엽, 전대상피질로 연결되는 통증회로와 동시에 활성화되면, 통증은 피해야 할 신호가 아니라 쾌감의 일부가 된다. 사디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충동 억제와 도덕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약하거나, 도파민 회로와 연결이 강화되어 도덕적 판단보다 쾌락을 우선시할 수 있다.
엠마의 도덕적 마조히즘
영화의 엔딩에는 융과 헤어진 뒤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임신한 슈필라인이 융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융은 프로이트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학문의 길을 모색하며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다. 엠마는 슈필라인이 융의 외도 상대였음을 알면서도 남편을 만나 대화해 달라고 부탁한다. 굳이 두 사람의 대화를 주선한 엠마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슈필라인과 헤어진 뒤, 융에게는 토니 울프라는 연인이 새로 생겼다. 슈필라인처럼 융의 환자였고, 치료를 받으며 연구에 참여했던 지적인 여성이었다. 토니는 남성의 여성성을 의미하는 융의 '아니마' 개념에 영향을 끼쳤고, 융의 학문적 동반자였다.
토니는 취리히 근교의 별채에서 지냈고, 때로는 융과 엠마가 사는 본가에서도 함께 지냈다. 공식적인 자리에 융과 동행했고, 가족 행사에도 참여했다. 엠마는 남편의 둘째 부인을 허용한 셈이다. 이 관계가 엠마에게 고통이 아니었을 리 없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납득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마조히즘을 엠마의 행동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엠마는 고통을 견디는 행위를 통해 사랑을 유지하고 증명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이런 행위를 도덕적 마조히즘이라고 불렀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이고, 희생은 도덕적 우월감이 되는 것이다. 엠마는 한때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융과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죽을 때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융은 엠마의 묘비에 '그녀는 여왕이었다'라고 새겼다.
인간은 고통과 쾌락을 모두 느끼지만, 같은 자극으로부터 동시에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비나처럼 고통을 쾌락과 연결시키는 피학적 성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드 백작의 논리처럼 인간관계의 구조가 지배와 복종이라면, 가학과 피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어린 시절 사비나는 학대하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지는 못해도,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최소한의 내인성 진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서였지만, 반복되는 고통과 쾌락의 회로는 병적인 성도착을 만들 수도 있다. 엠마가 융에게 이중결혼 생활을 눈감아 준 것도 융의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 또 결혼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사비나는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살아남았고, 엠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연인을 곁에 두는 고통을 감내했다.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이고,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적응해 나간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병적인 성도착으로 분류되지만, 결국은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전략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