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들을 향한 모성, 마미
개요 드라마
개봉 2014.12.18
러닝타임 138분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앤 도벌(디안), 안토니 올리버 피론(스티브), 수잔 클레망(카일라)
수상내역 2015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불행은 업보일까, 사고일까
어느 날 아침, 디안은 보호시설에 있는 아들 스티브가 매점에서 불을 냈으니 퇴소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남편이 죽고 난 후 스티브는 심한 충동성과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엄마와의 애착에도 금이 갔다. 스티브를 감당할 수 없었던 디안은 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겼다.
스티브를 데리러 가는 길, 교차로에서 신호를 어긴 차가 디안의 차를 들이받고 만다. 빚만 남긴 남편의 죽음도, 감당할 수 없는 아들의 정서적 문제도 디안에게는 갑자기 일어난 사고 같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사고는 디안의 삶을 박살 내버렸다. 불행은 업보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히 일어난 사고일까.
“디안, S-14 법안에 대해 고려해 본 적 있나요?
잘 생각해 봐요. 사랑과 구원은 별개예요.”
디안이 퇴소 서류에 서명하는 동안, 시설 관계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경고 같은 조언을 내뱉는다. 스티브는 퇴소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직원에게 욕을 하며 난동을 부린다.
영화의 첫 장면, 캐나다 퀘벡 주의 청소년 보호법에서 착안하여 만든 S-14 조항이 나온다. 부모가 더 이상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때 국가가 대신 양육을 맡는 제도다. 원래 아동 학대 등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위한 법안이지만, 청소년의 심각한 행동문제(반복적 폭력, 충동적 공격성, 학교와 사회에서 문제)가 있을 때에도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현재까지는 영화처럼 부모의 결정만으로는 안 되고, 전문가의 평가와 법원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질병과 줄줄이 사탕
주의집중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외부 자극을 감지하고 끌리는 Bottom up 방식과, 목표한 자극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절하는 Top down 방식이다. 두 시스템은 필요에 따라 상호보완하며 균형을 잡는다. 스티브가 앓고 있는 ADHD에서는 전자는 과민해지고 후자는 저하된다.
병명에서 알 수 있듯이 ADHD는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을 특징으로 하며, 충동성이 추가된다. 2013년 개정된 정신의학 진단체계 DSM-5에는 신경발달장애라는 범주가 새로 생겼다. 이전까지는 행동장애 범주에 속했던 ADHD도 신경발달장애 범주로 옮겨 왔다. ADHD는 훈육과 행동 교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처럼 느껴진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특성은 부모와 어른들의 꾸지람으로 이어지고, 반복되는 부정적 피드백은 자존감 저하와 애착 결핍으로 나타난다. 부모와 학교, 사회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는 어른을 신뢰하지 못하고 권위에 반항하게 된다. 겉으로는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으로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내면에는 무기력과 불안을 안고 살게 된다. ADHD의 공존질환은 그야말로 줄줄이 사탕인 것이다.
영화 속 스티브도 공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에는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고, 방금 본 물건을 꼭 사야겠다는 등 충동적이며, 분노가 폭발하면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던진다. 엄마뿐 아니라 이웃 카일라의 가슴까지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그의 행동은 전두엽을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충동이다.
어느 날 스티브가 마트에서 장을 봐 오자, 디안은 훔친 것이라 생각해 화를 낸다. 장바구니에는 디안에게 줄 목걸이도 있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분노한 스티브는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스티브가 목을 조르자 디안은 액자로 스티브를 내려친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폭력이 두려운 디안은 벽 창고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밖이 조용해지자, 슬그머니 거실로 나온 디안은 앞집에 사는 카일라가 스티브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말을 더듬는 카일라는 남편과 어린 딸이 있고, 휴직 중인 교사였다. 모든 것을 드러내고 충동적으로 말하며 행동하는 스티브 모자와는 달리, 카일라는 자신의 사정과 속마음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스티브 덕분에 직장에서 해고된 디안의 통장은 텅 비었고, 어렵게 구한 일에 가불을 요청해야 했다. 디안은 일하는 시간 동안 카일라에게 스티브를 부탁한다. 교사인 카일라는 스티브의 공부를 봐주기로 약속했지만, 스티브가 만만할 리 없었다. 반항하며 폭주하던 스티브는 분노한 카일라의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만다. 극도의 공포로 인한 유뇨증이었다. 카일라는 침착하게 상황을 수습한 뒤 모르는 척해 준다. 이 모든 밑바닥을 겪고 나서도 카일라는 선한 이웃으로 남는다. 카일라의 일관된 친절을 경험한 스티브는 그녀를 믿고 따르며 공부하게 된다.
한편, 카일라의 말 더듬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스티브 모자와 함께 있을 때 완화되며 차츰 회복해 간다. 카일라와 스티브 모자는 서로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였다.
화면에 검은 커튼이 드리워진 이유
영화는 1:1의 화면 비율로 진행된다. 양쪽에 검은 커튼을 동반하는 1:1 비율은 요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스타그램 포맷이다. 이 갑갑한 정사각형이 어쩌면 스티브가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생각한 것을 바로 행동에 옮겨야만 직성이 풀리고, 분노를 폭력으로 쏟아내는 스티브의 태도는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공부든, 외출이든 일단 시작하면 너무 쉽게 모서리에 부딪치고 좌절하는 스티브의 세상은 커튼이 드리워진 좁은 무대 같다.
어느 날 스티브는 디안, 카일라와 외출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롱 보드를 탄 스티브는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며 커튼을 열어젖히는 몸짓을 보여주고, 1:1의 화면이 넓은 화면으로 전환된다. 감독의 직설적인 표현에 논란이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한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스티브는 확장된 화면 공간에서 달리고, 카일라와 디안도 신나게 웃으며 걷는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디안이 소송장 우편물을 받는 순간, 화면은 다시 정사각형으로 바뀐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있었던 방화 사건으로 스티브는 피해자에게 2억에 가까운 배상금을 물어주게 된 것이다.
디안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변호사 폴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엄마에게 다른 남자가 접근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스티브는 가라오케에서 폭행과 난동을 부린 것도 모자라 폴까지 때리고 만다. 모든 일을 망쳐버린 스티브는 마트에서 칼을 뽑아 자해를 시도한다.
https://www.imdb.com/video/vi954051609/?ref_=tt_vids_vi_2
"엄마, 우리 아직 사랑하는 거 맞지?'
"그럼,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인데."
피가 낭자한 마트에서 스티브는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디안과 애틋한 대사를 나눈다. 두 사람은 곁에 없으면 죽을 것 같지만 끊임없이 상처만 남긴다. 헝가리 출신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마가렛 말러는 신생아가 정상 자폐기를 거쳐 엄마와 공생 관계를 맺는 형태를 정상 발달단계로 제시했다. 아기가 엄마를 'mommy'라고 부르기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스티브와 디안의 공생은 일찌감치 끝났어야 할 병적인 관계다.
스티브의 상처는 병원 치료 후 회복되었지만, 한계점에 다다른 디안은 S-14 조항을 소환한다. 디안은 스티브에게 행선지를 속인 뒤, 어느 공공병원의 주차장에 내린다. 화장실에 간다고 했던 디안은 곧 병원 직원들과 함께 나온다. 낌새를 챈 스티브는 달아나려 하지만, 건장한 남성 3명에게 폭력으로 제압당한다. 아들이 맞는 모습을 본 디안은 결정을 철회하려고 하지만 직원들은 그녀의 절규를 듣지 않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말의 일이다. 어느 날부터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친구와 다투고 난 뒤 화해할 수 없었고, 아무도 사귀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조용한 성격이라 학교에서는 그럭저럭 참고 버텼지만, 집에서는 울음과 분노가 끊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행동을 '애착 결핍으로 인해 생긴 분노'로 보았다. 아이의 기질이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탓이 크다고 했지만, 나의 마음에는 '모성의 실패'라는 죄책감이 떠나지 않았다.
쾌활한 성격의 디안마저도 스티브의 연이은 일탈에 우울과 절망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가슴이 텅 비다 못해 너무 아팠다. MMPI 심리검사는 '심리적 고갈'이라는 용어로 나의 상태를 설명했다. 나의 마음은 디안의 텅 빈 통장과 비슷했던 것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아이를 공들여 치료해 준 선배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회복되니 일을 계속해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 집중했다. 용기를 내어 찾아간 심리상담실에서 3년을 버텼고, 퇴사하기 몇 달 전에 마지막으로 와 준 아이들의 시터는 우연히도 심리 상담사였기에 놀이치료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모두 카일라였다.
이제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강해진 아이는 중학교 1학년, 특수학급 학생과 같은 반이 되었다. 자폐스펙트럼과 유사한 행동을 보이지만 국어, 수학을 빼고는 함께 수업을 듣는 남학생이었다. 체격이 크고 건장한 그 학생은 자기 뜻대로 안 될 때 공격적으로 변했다. 수업시간은 공포와 혼란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담임 선생님은 반복되는 폭력문제에 지친 듯 인사도 없이 병가를 내셨다. 두 번째 담임 선생님은 수업 중 그 학생에게 맞아 각막이 손상되어 그만두셨다. 2학년은 지나갔지만 3학년이 되자 아이는 그 학생과 또 같은 반이 되었고,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학교는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피하기 좋은 곳에 학급을 배치했다. 담임 선생님은 교탁밑에 식당용 콜벨을 설치하고, 벨을 누를 사람과 교무실에 뛰어올 당번까지 정해 놓으셨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기에 공격성이 조절되지 않는 신경발달장애 아동을 수용해야 하지만,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 때는 디안의 처지와 비슷했던 나는, 어느새 디안을 비난하며 소송장을 내밀었던 사람의 입장에 가까워졌다. 2학기가 되자, 학생은 특수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전출했다. 특수 교사와 보조교사 선생님도 수 차례 폭행을 겪은 뒤였다.
신경발달장애와 더불어 폭력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오롯이 모성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일까. 아니면 국가와 사회가 강제로 개입해야 하는 걸까.
피에타가 상징하는 모성은 구원의 모성이다. 그러나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랑과 구원은 별개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89년생 자비에 돌란 감독은 이 영화로 20대에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그러나 예술가는 질문하는 사람이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감독은 그저 문제를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을 뿐, 고민과 해결은 현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