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a Feb 08. 2021

사람, 사랑, 상처 그리고 치유에 대한 단상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한 글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 사랑하다 받은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덮는다. 


감상적이고 흔한 문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은 멜로영화가 아니며 사람 사이에는 낭만과 로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 따위. 개나 주라지.


주변에서 예쁘게 연애하는 모습을 보아도, 사람들이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 인연을 맺는 것을 보아도 별로 부럽지 않았고, 늘 사람 사이의 만남보다는 헤어짐을 먼저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삶이 지친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사랑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 언젠가는 닳고, 사라질 허울뿐인 단어야.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결국은 다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에 그녀 스스로를 챙길 건 그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녀 자신을 지켜내야한다고 다짐해 한없이 냉소적으로 굴다가도 그녀의 편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이고 과도한 애정을 퍼부었다. 잘못된 사랑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법이 늘 서툴렀던 탓이다.


그녀가 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릴 적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혹은 자라면서 겪은 성장통 때문이었을까. 혹은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분위기와 에너지에 눈치보는 탓이었을까. 그래서 그녀는 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벽을 치며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스스로 미리 상처를 내기도,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녀는 늘 자존감이 낮았고, 그래서 자존심으로 포장한 오기를 부렸다. 승패가 가려지지 않는 싸움에도 무조건적으로 이기고 싶어했고, 그렇게 혼자만의 승리를 갈취하고 나면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존감이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결국 해결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사람을 믿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사람들을 믿었다. 그녀는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사랑을 원하고 또 사랑을 퍼부었다. 그러다보면 사람을 믿게 될 줄 알았고, 사랑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녀는 사랑과 애정, 관심이 1:1이기를 원했다. 그녀가 무언가를 주는 만큼 사람들에게 그대로, 혹은 더 돌려받기를 갈구했다. 이에 보답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매달리고, 떼쓰다가도 어느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놔 버린 채 그녀 스스로에게 화내고, 욕하고, 자책하며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녀는 사람을 싫어한다면서 모순적이게도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 가장 어려웠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순간을 못 견뎌했고, 그럴 땐 우울이 물밀듯이 밀려와 그녀 전체를 뒤덮고 늪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동화를 믿지 않았고, 혐오했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 늪에서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왕자님은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유니콘을 꿈꿨다. 나에게만 기적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라도 했었나. 어릴 적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이다.


대신 그녀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녀는 이를 쉬이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아마 눈치 챘겠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 벗어나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작 본인의 힘이 필요할 때 본인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 타인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녀는 지쳤다. 이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지,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는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 어떻게 놓아줘야 하는지, 어떻게 붙잡아야 하는지… 그녀는 모든 기억을 버리고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저 포기한 채 파도에 휩쓸리는 자갈처럼 살기로 했다.


처음의 그녀는 그것이 매우 어색하고, 불편했다. 결심을 하고서도 쉬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점차 그녀는 그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포기하는 것만이 감정 소모를 줄이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간이 흐른 후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곁에서 조금씩 맴돌며 눈빛을 보내고, 말을 걸고, 그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의심했다. 그리고 스스로 포기한 감정을 다시 붙잡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친절했을 뿐이라고 답하며 누군가를 거절했다. 아니, 누군가가 그녀를 거절할 수 있도록, 마치 모든 것을 싫어하도록 반대로 행동했다. 그저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은, 진짜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녀가 겉으로 포기했다고 말한 감정이 그녀의 속에서는 너무나도 크게 꿈틀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너무나도 만나고 싶었고, 지키고 싶었고, 또 알아가고 싶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애정하고 또 사랑하고 싶었다. 상처 받은 마음을 누군가가 치유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 치유하면서 나아가고, 그 치유의 과정에서 누군가가 함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제대로 된 표현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는 걸.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모든 것이 처음인데, 처음은 너무 어려워. 



그녀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는 항상 고난과 역경이 가득했다. 그냥 그녀가 그렇게 느낀 까닭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생각은 현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랑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럴 거라 예측했다. 100명을 만나도, 1000명을 만나도 공허했다. 그 중에서 남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해, 상처받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때때로 그녀가 좋아하는 이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어 보여주면, 이를 의심하거나 비난 받는 상황이 생겨났다.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그녀는 다시는, 아주 다시는 마음을 열지 않기로 했다. 꽁꽁 숨기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간과한 것은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점과 감정은 등가교환이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서툰 그녀는 자신만의 유리벽에 갇힌 채 주위를 단단하게 감싸고, 쌓아올리며 꾸준히 그녀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녀 주위에는 그녀가 그렇게 하나 둘 모아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녀는 사람을 놓지 못했다.



그래도 언제나, 희망은 있었다. 그녀는 희망 하나를 믿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세상과 반대될 지라도, 누군가 나 하나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과 열심히 하면 뭐든 잘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리고 모르는 것들을, 간과한 것들을, 하나 둘 배워나가기로 결심했다.


모르면, 배우면 돼. 틀리면, 지우고 다시 풀자.
작가의 이전글 03. 우리의 바다, 나의 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