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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29. 2022

첫 출근의 기억

고로케 1

 수차례의 낙방으로 자존감이 바닥에 가까워질 무렵, 합격 연락이 왔다.

저번 주에 면접을 본 고로케 가게였다.


 원래는 업무에 지원한 거지만 면접 때 주방 업무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어차피 떨어질 줄 알고 해 본 말이었는데 합격해버려서 당황스러웠다. 주방 업무라는 게 워낙 힘들다고 알려져 있어서 그동안 홀 알바에만 지원했는데... 결국 나의 첫 알바는 고로케집 주방이 되었다.


 일하게 될 고로케 가게는 백화점 푸드코트 매장의 일부였다. 주방 직원이 매장 안에서 고로케를 만들면 홀 직원이 매대에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다. 푸드코트 앞에서 파는 간식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요즘은 마트나 백화점 푸드코트에 홍대 쌀국수, 북촌 코다리 냉면 등 프랜차이즈 식당이 각 섹션별로 입점해 있지만, 내가 20살 때까지만 해도 푸드코트는 하나의 업체에서 통합 관리했다. 내가 있던 푸드코트는 '이랜드 식품'의 소유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나의 '원천징수 영수증'의 첫 줄에는 '이랜드'가 박제되어있다.



첫 출근


 오늘은 생에 최초로 노동이란 걸 해보는 날이었다.

인생 첫 출근을 앞둔 전날 밤에 걱정 없이 잠들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결국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흘러넘치는 긴장감 때문에 1월의 아침 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다. 어금니까지 달달달 떨면서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아직 백화점은 오픈하기 전이라 그런지 정문이 잠겨있었다. 때마침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보여서 정신없이 쫓아갔다. 직원 전용 후문이 나왔다. 떨리는 와중에도 오픈 전에 백화점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꽤나 설레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직 작동도 안 하는 무빙워크 위를 걸어서 푸드코트 매장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매니저님과 인사를 나눈 뒤 출퇴근 확인을 위한 지문을 등록했다.

+ 참고로 내가 일한 2015년에 이랜드는 10분 전에 매장에 도착해 유니폼을 다 입은 후에 출근 지문을 등록해야 했고, 퇴근할 때에는 유니폼을 벗기 전에 지문을 등록하는 게 원칙이었다. 더구나 초과근무시간은 15분 단위로 시급에 반영했기 때문에 출근 전후 15분은 급여에 인정되지 않았다. 이랜드는 이러한 15분 임금 '꺾기' 외에도 여러 가지 노동법을 어겼는지, 내가 일하고 1년 뒤인 2016년에 체불된 임금들을 모든 아르바이트생에게 돌려줬다.

 

 지문을 등록한 후 유니폼을 지급받았다. 지급받은 유니폼이 꼬질꼬질했지만, 오늘의 나는 옷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탈의실로 들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사실 옷을 갈아입는다는 표현보다는 집에서 입고 온 옷 위에 유니폼을 얹었다는 표현이 맞을듯하다. 아직 백화점이 오픈하기 전이라 실내가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나는 유니폼을 얹자마자 주방으로 향했다.




반죽의 무게


 주방에 들어가니 상당한 경력자로 보이는 언니가 있었다. 사실 그곳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경력자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들이 1주일 전에 들어왔는지 1년 전에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를 도와서 고로케 반죽을 만드는 게 내 첫 업무였다. 그녀가 반죽을 섞는 기계에 이런저런 가루를 넣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기계를 작동시켜 우당탕탕 재료들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하얀 가루들은 시간이 지나자 내가 아는 반죽의 모양이 되었다. 이대로 끝일 줄 알았는데 그녀는 기계에서 반죽을 꺼내어 손으로 다시 치댔다.

 이번에는 그녀가 나에게도 반죽을 치대 보라고 넘겨주었다. 보기보다  반죽이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

' 이것이 세상의 무게인 것인가...'

빵 반죽을 하다 말고 갑자기 슬퍼졌다. 앞으로 살아갈 20대가 막막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반죽하는 모양새가 답답했는지 그녀는 다시 반죽을 가져가서 몇 번 더 치댄 후  넓은 트레이에 반죽을 넣었다. 이제는 반죽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되었다. 그녀는 이것을 '휴지'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반죽을 휴지 시키는 동안 필요한 재료를 미리 '소분'하는 작업을 했다. 사실 나는 이때 '소분'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소분은 밀가루나 버터, 설탕 등 대용량을 발주해서 사용하기 좋게 조금씩 나눠 담는 행위였다. 그리고 나 혼자 일하는 업장이 아니다 보니, 다른 직원들이 알 수 있도록 재료를 소분한 용기에는 개봉일과 유통기한을 필수로 적어야 했다. 이렇게 날짜를 표기하는 작업은 위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서 그런지 매니저가 수시로 확인했다. 내가 이곳을 그만둔 후에 일한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요식업에서도 소분을 하는 작업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했다.


 '소분' 작업을 끝낸 다음엔 고로케안에 들어갈 속재료를 준비했다. 고로케의 맛은 크게 팥과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야채가 있었다. 먼저 나는 모차렐라 치즈를 50g 정도 손으로 덜어내 꾹꾹 눌러서 동그랗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 매우 쉬운 일이라서 하루 종일 이것만 하고 싶었지만, 정해진 수량이 있어서 아쉬웠다.


 언니는 휴지가 완료된 반죽을 작게 떼어내어, 속재료를 넣고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녀를 따라 구모양에 가깝게 반죽을 굴렸지만, 계속 속재료가 튀어나왔다. 반죽 밖으로 속재료가 튀어나오면 나중에 고로케를 튀길 때 화상을 입을 수 있어서 다시 만들어야 했다. 몇 번을 만들어도 반죽이 터져서 내가 손재주가 없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다.



뜨거운 기름


 그녀를 따라 정신없이 반죽을 만들다 보니, 고로케를 튀길 시간이 다. 이번에도 그녀는 고로케를 튀기는 시범을 보여줬다. 그런데 특정한 도구 없이 기름에 닿기 직전까지 손으로 반죽을 넣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너무 뜨거워 보이는데? 데이 어쩌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고로케모양이 어떻게 망쳐지든 신경 쓰지 않았다. 최대한 내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넣었다. 하지만 요령이라고 0.1도 없는 스무 살짜리 녀석의 손목에는 결국 뜨거운 기름이 튀었버렸다. 흐르는 물에 손을 넣으며 생각했다.

‘첫날부터 다치다니... 내가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 거지? 아... 좋은 대학 들어갔으면 알바 대신 과외하면서 돈 버는 건데 공부 열심히 할걸 후회된다.’

 싱크대 앞에 서있던 스무 살의 나는 세상의 온갖 서러움과 후회를 수집했다. 아픈 것보다 계속 흉이 남을까 봐 무서웠고, 나중에는 서러운 이유를 망각할 정도로 본인의 처지가 서러웠다. 



 이만하면 흐르는 물에 씻는 건 충분했다 싶어서, 연고를 바르기 위해 사무실에 갔다. 점장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직접 연고를 발라주며,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단순히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니까 말하지 말라고 한 건지, 부모님이 아시면 산재처리를 하거나 그만두라고 할까 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에겐 점장님의 말이 후자와 가깝게 느껴졌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영 찜찜했다.

'내가 엊그제까지 미성년자였으니까 애는 맞는데, 그래도 진짜 애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안 좋네? 흉 지면 어쩌지? 산재처리를 해야 하는 걸까? 산재처리는 어떻게 하는 거지? 무섭다.'


 오만가지 생각과 당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시계를 봤다. 하루 8시간 근무인데 고작 4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고3이 막 끝난 시기라 체력도 같았고, 앉아서 공부나 해봤지 이렇게 오래 일어서 있던 것도 처음이라서 다리가 너무 아팠다.


'아...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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